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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론 앤 어라운드〉가 보내드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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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시작 전까지 부정기적으로 보내드립니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맛있습니다.

🍲 오늘의 요리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자신감으로 가득 찬답니다

양배추 된장국


오늘은 문득 요리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왜 요리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 요리에 관한 글을 쓸 차례가 된 것이겠지. 시-여행-사랑-음식이라는 소재들이 내 머릿속에 줄을 쭉 서 있었는데, 어느 날 요리라는 소재가 ‘이제 제 차례군요. 오래 기다렸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노트북 앞으로 쓱 다가온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엔 이유가 있지만 굳이 그걸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 


내 요리 실력은, 겸손하게 말하자면, 형편없다. 몇 가지 음식을 겨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수준이다. 겸손을 빼고 말하자면,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요리는 할 수 있다. 요리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을 정도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오늘은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주겠어.” 하며 자신 있게 앞치마를 두를 실력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스스로 한 끼 때울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말이다.


요리를 한 지 오래됐지만, ‘요리를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한 지는 최근이다. ‘내가 요리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 자리에서 장황하게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려고 하니 뭔가 우습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요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해두자. 이런 이야기는 차차 할 기회가 있겠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정색하고 말하는 것보다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냄비에 육수를 끓이는 시간이,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데운 후 그 위에 잘게 썬 마늘을 넣는 순간이 좋아졌다고 해두자. 육수가 보글보글 끓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프라이팬에서 그윽하게 올라오는 마늘 향을 맡고 있노라면 이 세상이 더없이 평화로운 곳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세상의 난폭함과 글쓰기 고단함 같은 걸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해두자. 


자, 아무튼 오늘은 양배추 된장국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 재료 중의 하나는 양배추다. 맞다. 배추가 아닌 양배추. 양배추는 구하기 쉽고, 양배추는 요리하기도 쉬운 데다가, 양배추는 맛없게 요리하기가 힘들고(굴 소스만 넣어도 된다), 양배추는 제철이 따로 없다. 양배추는 가격도 싸다. 게다가 양배추는 위장에도 좋아서 매일 매일 술을 마시는 나 같은 인간에겐 더없이 좋은 재료다. 봐봐, 양배추를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새벽에 일어나 에스프레소에 초콜릿을 먹으며 원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배도 고프다. 자 이제 아침을 먹어볼까. 가운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냉장고로 다가간다. 토스트도 좋고, 오믈렛도 좋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따뜻한 국물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새하얀 양배추 반 덩어리가 있다. 저요, 하고 번쩍 손을 드는 양배추.


오늘은 양배추 된장국이다. 세상 간단한 요리다. 1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다. 요리를 할 때 이 ‘뚝딱’이라는 말처럼 쉽고도 어려운 말이 없다. 해보면 알 거다. (나중에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죠.) 아무튼 양배추 된장국의 재료라고 해봐야 양배추에 된장 한 숟가락 그리고 약간의 물이면 된다. 그거면 대충 먹을 만한 양배추+된장+국이 만들어진다. 캠핑을 갔다면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무렵, 화로에 장작을 피우고 코펠에 된장을 슬슬 풀고 양배추를 몇 조각 뜯어 넣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아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더 맛있게 먹으려면 약간의 준비와 공정이 필요하다. 많이도 아니다. ‘약간’이면 된다. 인생처럼 말이다. 아무렇게나 막살아도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지만, 약간의 준비를 하고, 최소한의 절차를 지키며 일을 하고, 약간의 예의를 지킨다면 훨씬 더 좋은 인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진심 한 큰술. 


먼저 냄비에 물을 붓고 육수를 만든다. 멸치, 다시마, 대파 반 대, 대파 뿌리, 버섯 등등을 넣으면 좋지만 지금은 아침이다. 바쁘다. 그냥 다시용 팩을 넣고 끓인다. 이것도 넣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마트에 파는 찌개용 된장만 풀어도 된다. 양념이 다 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더 맛있게 먹으려면’ 앞에서도 말했듯, 약간의 준비와 공정이 필요하다. 


육수는 되도록 직접 만드는 것이 좋다. 육수용 동전팩을 넣더라고, 그래도 몇 가지 육수 재료는 손으로 직접 냄비에 넣는 것이 좋다. ‘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니까 그렇다. 요리를 하는 데도, 일을 하는 데도, 인생을 사는 데도 이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 만족감이 요리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고,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칭찬은 시작을 스무스하게 하게 해주고,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끝까지 가게 해준다. 메모합시다. 칭찬과 만족감.


10분 정도 육수를 우려낸 후에(저는 불을 끄고 이삼 분 정도 둡니다. 더 우려나거든요), 육수 재료를 건져 내고 된장 한 숟가락을 넣고 다시 끓인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육수 만드는 동안 준비해 둔 양배추를 듬뿍 넣는다. 양배추는 식초를 약간 푼 볼에 3~5분 정도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씻어내면 된다. 아 참, 양배추 심은 버리지 말고 채 썰어서 넣을 것. 이게 식감도 좋고 달다.


양배추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써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양배추 된장국에 들어가는 양배추는 칼로 써는 것보다 손으로 뜯어서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국에 담긴 네모반듯한 양배추는 뭔가 어색하다. 마요네즈를 넣어 양배추샐러드를 만들 때도 채칼로 썬 양배추보다는 칼로 썬 양배추가 더 먹음직스럽고 정감 있다. 언젠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만능 채칼이 보여 산 적이 있어 사서 써 보았는데 신세계였다. 무며 당근, 양배추가 2밀리미터, 3밀리미터, 5밀리미터 두께로 반듯하게 썰려 나왔다. 음, 근데 도마 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같은 크기의 양배추를 보며 뭔가에 진 기분이 들었던 건 왜일까.


자, 이제 슬슬 끓기 시작한다. 구수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를 본다. 오늘은 눈 예보가 있군. 지금 이곳은 영하 7도다. 영하의 날씨에는 역시 된장국이지. 좋은 선택이야. 된장국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어슷하게 썬 대파와 양파를 한 줌 넣는다. 대파 향이 더하면 맛이 더 풍성해진다. 다진 마늘을 반 숟가락 정도 넣으면 더 좋겠지만 넣지 않기로. 아침에는 좀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까. 다진 마늘은 취향껏.  

 

끓기 시작하면 거품을 걷어내고 맛을 본다. 약간 싱거운 것 같지만 지금이 딱 좋다. 소금을 더 넣지 않은 채로 불을 끈다. 사실은 양배추 된장국만 먹어야 하니까 그런 거다. 밥은 따로 먹지 않는다. 커다란 면기에 가득 담은 양배추 된장국 한 그릇으로만 아침 식사를 한다. 그래서 여기에 두부를 듬뿍 넣거나 감자 한 알을 넣기도 한다. 밥 대신 두부 또는 감자인 셈이다. 오늘은 두부 반 모를 넣었다.


먼저 국물만 한 숟가락 먹는다. 뜨끈한 국물이 입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으어,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걸 보니 이제 나도 아저씨인가 보다. 뭐, 어쩌랴. 이미 아저씨가 된 것을. 이번에는 양배추를 젓가락으로 잔뜩 집어 먹는다. 양배추를 씹으니 단맛이 살짝 뿜어져 나온다. 양배추 된장국은 처음 끓여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양배추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배추 된장국은 1인분만 끓인다. 이번에는 국물을 한 모금 마신다. 국물과 함께 약간의 양배추와 두부 한 조각도 같이 들어온다. 좋다. 더할 나위 없는 아침 식사다. 든든하다. 아침으로 오믈렛도 좋지만 이젠 점점 더 양배추 된장국이 좋아지는 나이가 됐다. 양배추는 맛도 좋지만 위장에도 좋다니까, 하고 생각한다. 이건 아저씨가 만드는 양배추 된장국의 알리바이다.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며 양배추 된장국을 먹는다. 와! 모로코가 스페인을 이겼어. 대단해! 역시 모든 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 그래서 스포츠와 인생은 더 짜릿하고 재미있지. 아 참, 고추를 넣는다는 걸 깜빡했군. 그래도 괜찮다. 맛있게 다 먹었으니 됐다. 아무튼 된장국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 좋은 것 같아. 내가 뭘 넣는다고 해도 뭘 빼먹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거든.


양배추 된장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졌다. 영하 7도라지만 뭔가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것 같다. 양배추 된장국의 마법이다. 자, 이제 외투를 입고 나가 보자. 기분 좋은 아침이 시작됐다. 🥢

여행작가가 본업이지만, 지금은 편집자와 기획자의 일을 더 많이 한다.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등을 썼다. @ssuchoi

💬 오랜만에 레터 보내드립니다. 자주 보내드린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시즌 3' 시작 전까지 자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시즌 2'에 연재했던 '맛깊은 인생'이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변종모 작가님의 '밀양 일기' 역시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변종모 작가님 책은 알라딘에서 친필 사인본을 판매 중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 '시즌 3'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콘텐츠로 찾아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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