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피와 동백의 땅
성후 샘이 4.3 관련 다큐영화 ‘목소리들’을 보고 나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적으셨네요.
‘우선 먼저 든 생각은 앞으로 제주도에 "관광"하러 가기는 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저토록 피로 범벅된 땅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2만5천여명의 희생자를 낸 무법천지의 4.3.’ (정성후 샘의 페이스북 글 인용)
제주 4.3은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국가폭력이었습니다. 성후 샘이 썼듯이 밝혀진 죽음만도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이었죠. 그러나 빨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피해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할아버지 제삿날에 왜 그 작은 마을에 아홉 집이나 제삿날인지 몰랐으니까요. 1978년 현기영 작가가 <순이삼촌>을 써서 4.3을 알렸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쓰고 끌려가서 고초를 겪기도 했지요.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제주 4.3 특별법’을 제정하고 나서야, 4.3 진상규명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제야 4.3 유족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일 년에 두세 번은 제주도에 갑니다. 제주에 가면 언니들과 올레길을 걷는 걸 좋아합니다. 오름도 자주 올라가죠. 한 번은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걷다가 은희언니가 우묵한 분화구 쪽으로 가리키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다 시체가 그득그득 했던 곳이야. 온통 피가 흘렀겠지… 그 때 은희언니가 그 말을 너무 심상하게 말해서 오히려 아찔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방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들풀이 흔들리던 봄날의 오름에서 내던져진 시체가 켜켜이 쌓이고 그 아래로 피가 흘러내려 땅에 스며들던 시간을 상상했습니다. 그 피를 먹고 피어난 붉은 동백이 77번 피고 지는 세월동안 우리나라는 뭐가 달라졌을까요?
당장 내일 4월 4일은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는 날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파면을 기다리며 안국동에서 광화문 찬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에 국민 앞에 총구를 겨눈 대통령이라는 자를 생각하면, 수많은 제주 도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경찰들과 서북청년단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총구가 우리 할아버지를 죽였고, 아버지를 잃은 우리 아버지는 배고프고 거친 시절을 살았고, 그 아버지의 딸인 저는 되물림 된 상처를 안고 자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