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눈앞이라는 사실에 놀란 구독자분들께… 이번 각주는 늦가을을 채워줄 책과 음악, 대화의 자리를 소개합니다.

새로운 잡지 창간.ᐟ

🔊모베


안녕하세요, 모베입니다.
각주에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잡지 창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듯한데요, 건축 잡지 『미로』입니다. 지난주에 세상에 나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제가 편집장으로 콘텐츠를 책임지고 정림건축문화재단이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마티는 제작과 유통을 대행하고요, 워크룸 김형진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맡아주었습니다.


잡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미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건축은 정말이지 잡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지난 100년간 건축사와 이론, 비평은 잡지를 무대로 펼쳐졌습니다. 건축 역사와 이론이 주전공인 저에게 현장은 Architectural Review, Casabella, ANY, Contropiano, Oppositions, AA files, Perspecta, Assemblage, Grey Room, Log, OASE 같은 잡지였습니다. 건축물 그 자체만큼이나요. 이제 누가 만들어주길 기다릴 나이는 지났기에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잡지 이름을 두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동료들과 나눈 카카오톡을 뒤져보니 올해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네요. ‘건축잡지’, ‘계간건축’, ‘그리드’, ‘도면함’, ‘종이와건축’ 등이 후보로 올랐습니다. 실토하자면, 저는 처음부터 ‘미로’를 제호로 염두에 뒀습니다. 고민을 결정으로 바꾸는 데 몇 달이 걸리긴 했지만요. 작년 겨울부터 꽤 두껍고 뻑뻑한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함께 읽는 세미나를 (역시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그 책의 제목이 『구와 미로』(La sfera e il labirinto)였습니다. 미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죠.


새로운 잡지의 제호를 큰 영향을 받은 책에서 따오는 것도 그럴싸하다 싶었죠. 우리는 건축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말과 글로 배울 테니까요. 건축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정작 실제로 가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직간접적으로 읽고 들은 것을 눈으로 (또는 몸으로) 확인하고 경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신작을 소개하는 잡지가 아니라 건축계에 떠도는 말들을 모으고 정련해 담론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 잡지 이름으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미로』 SNS에 적은 대로, 미로는 출구 없는 상황에 빠져 있는 건축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미로』는 일 년에 세 번 나올 예정입니다. 계간지이긴 하지만 가을/겨울은 묶어서 내려고 합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을 대부분의 각주 구독자님들에게 글이 한가득한 건축 잡지 창간이 반가운 소식이기를 기대합니다.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지는 에세이 『음악의 언어』와 『일요일의 음악실』을 쓴 송은혜 작가님께 오랜만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음악 이론 교양서를 내보자고 이야기 나눈 지 근 1년 만이에요. 프랑스 렌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집필은 어떻게 되고 계신지 여쭤봤어요. “작가님, 책 안 쓰고 뭐 하세요?” 2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에 단어를 붙여보아요.”
🌱죽순의 편지와 송은혜 작가님의 답장



안녕하세요, 송은혜 작가님.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습니다. 서울은 부쩍 날씨가 쌀쌀해지고 해가 일찍 넘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거주하시는 프랑스 렌의 10월 풍경은 어떤가요?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곳의 가을은 길고 아름다워요. 굳이 단풍놀이를 멀리 떠나지 않아도 사방에 색색으로 물든 나무가 가득하죠. 멋진 건물이 쭉쭉 뻗은 도시도 아름답지만, 나무가 많은 도시는 외관을 관리하지 않아도 시간에 따라 무료로 스스로 장식을 바꿔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나무 사이에 빌붙어(?) 살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엊그제 서머타임이 끝났어요. 이제 밤이 급속도로 길어집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금방 어둑해지죠. 동지까지 밤은 계속 길어질 거예요. 길어진 밤을 누리며 원고 마감을 해야죠.


오늘도 음악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오셨겠죠? 수업 내용이 궁금해요! 전반적인 커리큘럼보다는 오늘 하신 바로 그 수업의 내용이요. :-)


이번 주는 방학이라 지난주에 있었던 마지막 대학 수업을 이야기할게요. 수업은 아니고, 중간고사가 있었어요. 실기와 이론의 중간쯤에 서 있는 과목이라 그동안 배운 이론을 실기로 구현해야 하는 시험이었죠. 시험 과제 중 하나가 바흐의 코랄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화성 연결 중 열 가지 예를 외워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었어요. 음악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수많은 작품을 듣고 분석해야 해요. 무엇인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본 틀을 내장하지 않고는 힘들어요. 보편을 알아야 특이성을 잡아낼 수 있잖아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보는 법을 배우는 거죠.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사회가 합의한 부분을 배우고 익혀서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잖아요. 이 바탕이 없으면 아무리 창의적이라 해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지 못해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타인이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기 힘들고요. 거꾸로 타인의 생각을 적절한 맥락에서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대학 수업은 음악원 수업과 달라서 악기를 초보자 수준으로 독학하는 학생부터 전문가의 길을 가는 학생까지 다양하게 섞여 있어요. 다양한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자기 분야와 연결할 만한 주제를 찾게 하고 연습시키는 것이 저의 역할이에요. 시험으로 고생했으니 이번 주는 푹 쉬고 오라 했어요.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연습 과제가 학생들을 기다릴 테니까요.


음악을 가르친다는 건 참 어려울 것 같아요. 음악 분야 책을 몇 종 만들어보니, 음악을 글이나 말로 묘사하고 설명한다는 것이 보통 공력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시다면요?


최대한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거예요.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도, 각자의 성격과 감성이 다르고, 가진 음악 지식 수준도 달라서 손쉽게 전문용어를 쓰다가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제가 만나는 학생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전공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아이들에게 부속화음이 어쩌고, 위종지가 어쩌고, 모방기법이 어쩌고 하는 순간 눈빛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죠. 최대한 생활에서 음악 현상을 느낄 수 있는 예를 찾아요. 어차피 음악은 자연법칙이나 인간의 움직임, 심리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 부지런히 고민한다면 어디에서든 설명 방법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에서 음악 이론 기초 수업인 ‘한여름 밤의 음악실’을 진행하셨고, 언젠가 트위터(현 엑스)에서도 짧은 이론 강의를 여신 적이 있어요. 서양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데에 음악 이론 한 스푼을 아는 것은 필수일까요? 필수는 아니더라도, 다른 깊이와 차원으로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줄까요?


네! 그림과 다르게 음악은 스쳐 지나가면 끝입니다. 남는 것이 없어요. 기억력이 너무나 좋아서 내가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조차도 작품의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너무나 파편적이고 추상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 있잖아, 그 작곡가의 그 작품에서 거기. 조용하고 느린 거기… 아, 뭐였지?”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상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힘들죠. 그나마 선율이라도 기억한다면 노래라도 흥얼거려볼 텐데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하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섬세하게 구별하고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이론 공부로 할 수 있어요. 이론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에 모두가 합의한 단어를 찾아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외국어처럼 느껴지던 클래식 용어를 자연스레 이해하기를 넘어, 자기 스스로 그 용어를 활용해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실 거예요. 삶이 풍성해집니다. 어느 날, 피아노 앞에서 5도권 화성 연결을 외워서 자연스럽게 즉흥 연주하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어요.


마티는 클래식 음악 입문의 다음 단계인 음악 책들을 기획하고 출간하려고 애써왔어요. 『교향곡』 『감정, 이미지, 수사로 읽는 클래식』로 ‘듣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라는 시리즈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뭐랄까요, ‘중급’으로 넘어가고 싶은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을 콕 짚어 기획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작가님을 발견한 거죠! 대중교양서로 음악 이론 책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요. … 집필은 어떻게 되어가고 계신가요?


열심히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사랑하는 주제지만, 훌륭한 음악 듣기만으로 만족하셨던 분에게 음악의 속살을 들여다보시라고 권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자칫하면 너무 어렵게 설명하게 되고 금방 따분해질 수 있어서요. 하지만,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음악에 발끝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맛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체 마감일을 언제로 잡으셨어요?


12월 중순에 한국에 갑니다. 강의도 있고, 강의 연주도 있고요. 그 전까지 마무리하고 가려고요. 책이 있으면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범위가 넓어져서 좋아요. 이번에 마티와 함께 쓰는 책으로 만날 분들이 기대됩니다.

선생님께서 요즘 푹 빠져 있는 곡이 있으신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에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포레가 연주했던 오르간으로 연주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악기에서 포레의 강력함과 부드러움이 그대로 살아났어요. 뾰족해지기 쉬운 시기, 부드럽게 안아주는 음악이 계속 끌리네요.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건 고대 그리스의 에토스 이론에서 나오는 이야기예요. 음악이 인간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힘이 있으니 좋은 음악만 들으라고 했죠. 좋다, 나쁘다는 누구를,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는데, 들어보시면 알 거예요. 시끄러운 이승에 귀를 닫고 싶으시다면 저와 함께 천상 세계로 올라가시죠.


이 곡의 음원이나 연주 동영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레퀴엠 중 제일 마지막 곡인 「In Paradisum」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포레의 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음반이에요. 파보 예르비가 지휘한 파리 시립 관현악단과 합창단 연주입니다.


가끔 트위터(현 엑스)에 마음을 두드린 책의 문장을 올려주시곤 하시죠. 마티 뉴스레터 구독자들에게 전하고픈 한 구절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이언 보스트리지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읽는 중입니다. 겨울이 다가오기도 하고, 요즘에 ‘나그네’라는 주제에 꽂혀서이기도 하죠. 첫 장을 넘기면 슈베르트의 글이 직접 인용되어 있습니다.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 먼 길을 돌아다녔다. 여러 해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삶과 예술 사이에 딱 떨어지는 관계는 없지만, 예술은 인간의 모든 것 속에 존재한다고 보스트리지는 말합니다. 얼마 전 쇼츠 영상에서 봤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상대를 보면서 멀리서 감상하듯 쳐다본대요. 삶이 지겨울 때,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감상하듯 우리를 바라보면 짧디짧은 삭막한 가을과 역대급으로 추우리라는 올겨울을 사랑하며 감사로 지날 수 있지 않을까요?

중쇄 기념 북콘서트
『죽음의 바느질 클럽: 모쪼록 살려내도록』 출간과 중쇄를 함께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립니다. 책을 쓴 복태와 한군이 ‘선과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인 것, 아시죠? 북토크와 더불어 올해 첫 선과영 단독 공연도 준비했습니다. 책과 바느질 작업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두 저자의 음악을 밴드셋으로 들으며, 아름답고 느긋하게 수선하고 되살리는 생활의 기쁨과 치열함을 나눠보아요.



✔️ 일시 2024년 11월 10일(일) 19:00-21:00
✔️ 장소 스페이스 소다 2002 (서울시 마포구 희우정로5길 29 1층)
▪️ 프로그램
- 1부 복태와 한군, 『죽음의 바느질 클럽』 북토크
        진행: 서한영교
        여는 음악: 장들레
- 2부 선과영 단독 공연

▪️ 안내
- 신청 폼을 작성하시면 ‘신청 완료’ 및 참가비 입금 안내 문자를 드립니다.
- 입금 확인 후 최종 ‘참여 확정’ 문자를 발송할 예정입니다.

▪️ 문의
DM: @da_jojin_da
도서출판 마티
matibook@naver.com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01, 2층 (04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