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을 담은 브랜드, <까르띠에>

최근 백화점에 갔다가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을 보고 넋을 놓은 유령이.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을 떼지 못한 브랜드가 있다는데?!
👻 나랑 결혼해줄래령~ 나와 평생을 함께 살래령~ 오늘은 ‘사랑'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까르띠에 이야기를 들려드릴게령!

▲ 까르띠에의 창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
남다른 손재주를 갖고 있었던 아이 👶 
1819년의 프랑스 파리, 화약통을 제조하던 부부의 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요. 투박하고 거친 사람만 살 것 같았던 이 집에서,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정도로 세밀한 손재주를 자랑하며 쑥쑥 자라죠. 그러고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본격적으로 보석 세공을 배우기 시작해요. 이 놀라운 소년이 누구냐고요? 바로 정교한 세공술과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의 창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에요. 어릴 때부터 독보적인 재능을 지녔던 루이는 파리 몽고트로이가 29번지의 아틀리에*에서 견습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그의 스승이자 아틀리에의 주인이었던 아돌프 피카르가 죽게 되자 그 아틀리에를 인수하게 되었죠. 이후 루이는 아틀리에의 이름을 자신의 성을 딴 '종 까르띠에'로 변경했어요. 이 아틀리에가 바로 세계적인 명품 보석 브랜드, 까르띠에의 시작이었다고!

*아틀리에 : 전문가를 중심으로 많은 조수와 제자들이 모인, 그 집단의 공동 작업장.

전 세계를 휘어잡은 고급 브랜드를 창립한 루이 까르띠에는 상냥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였어요. 보석 세공과 디자인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해 천재로 인정받는 동시에, 깐깐하고 엄격한 관리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넘치는 자신감으로 까르띠에를 이끌어 나갔죠. 그래서 까르띠에에서 일했던 보석 세공사들은 “루이 까르띠에는 요구 사항이 많았고, 쉽게 만족하지 않는 보스였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어요. 제품에 대한 그의 기준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은 꾸준히 수정을 요구하면서 세상에 완벽한 제품만을 선보이려 했다고.

👻: 까르띠에는 유명한 가문에서 시작한 브랜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화약통 기술자의 집에서 출발했다니, 자수성가의 상징이 따로 없네령! 그런데 이런 까르띠에는 어떻게 큰 인기를 끌게 된 건가령?

▲ 까르띠에의 주얼리를 착용한 마틸드 공주
왕의 보석, 보석상의 왕 👑 
1847년, 까르띠에가 창립된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매우 안정적이었어요. 이 시기는 혈투가 난무했던 프랑스 혁명*이 끝난 직후였거든요. 거리의 사람들은 평화롭고 잔잔한 일상을 즐겼고, 귀족들이 머무는 대저택가엔 사치와 쾌락이 넘쳐나기 시작했죠. 이 당시의 귀족 사회에서는 호화스러운 파티와 무도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남들보다 눈에 띄는 화려함을 뽐내고 싶었던 귀족들은 치장을 위한 주얼리가 필요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본인을 빛나게 해줄 보석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사교계의 인기 스타,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에 방문하는데요, 까르띠에의 섬세한 주얼리들은 그녀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렸어요. 이에 마틸드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프랑스 왕실의 공식 주얼리 납품 업체로 까르띠에를 선정하기까지 했죠. 이 덕분에 까르띠에는 1859년, 파리 상류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대로 9번가로 매장을 확장했다고. 그뿐만 아니라 1902년 영국의 국왕 에드워는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 보석상의 왕’이라 칭하며 자신의 대관식에 사용할 왕관 27개의 디자인을 맡기기도 했어요. 이렇듯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을 차근차근 사로잡은 까르띠에는 유럽 전역의 귀족 사이에서 까르띠에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 프랑스 혁명 :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이 무능력함과 부조리에 찌든 왕실과 특권 계급에 대해 투쟁하고 승리를 쟁취했던 혁명. 

👻: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공주가 푹 빠질 정도라니, 왕실과 귀족들에게 정말 핫한 브랜드였나 보네령! 그런데 일반 대중에게 이런 사치품은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어떻게 대중들에게까지 사랑받게 된 거예령?

▲ 비행사 산토스 뒤몽과 산토스 워치, 까르띠에
독특하고 과감한 까르띠에만의 도전 🙌🏻 
그 비밀은 바로 시계에 있어요. 이 이야기는 루이 까르띠에의 손자이자 3대 경영자인 루이 조셉의 시대에서 펼쳐지죠. 그리고 여기에는 루이 조셉과 그의 각별한 친구, 알베르 산토스 뒤몽의 우정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요. 뒤몽은 당시 세계 최고의 비행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그는 루이 조셉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해요. 이는 바로 비행을 할 때마다 시간을 확인하기가 너무나도 불편하다는 것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당대의 남성들이 주로 착용했던 시계는, 시간을 보고 싶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넣었다 빼기를 반복해야 하는 회중시계였거든요. 

그의 불만을 귀담아들은 루이 조셉은 곧 산토스 뒤몽만을 위한 시계를 만들었죠. 그렇게 산토스의 이름을 따 탄생한 시계가 바로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까르띠에의 산토스 워치! 원래 손목시계는 1900년대 초반까지도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는데요, 까르띠에가 만들기 시작한 남성용 시계는 이런 패러다임을 깨뜨렸어요. 시계가 화려함의 상징을 넘어 일상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실용적인 도구가 되기 시작했거든요. 까르띠에는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손목시계를 성별에 관계없이 인기 있는 액세서리로 만들었고, 이러한 과감한 도전에 많은 사람들이 까르띠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 손목 시계가 원래 여성용이었다니 몰랐어령!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까르띠에의 시도가 대중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갔나 봐령!

▲ 콜로라투라 컬렉션, 까르띠에
주얼리에 온 세상을 담다 🌎
맞아요. 이처럼 시계를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 루이 조셉은 예술과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주얼리에 접목시키며 독특한 행보를 이어갔는데요, 특히 동아시아부터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까지 전 세계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고유한 디자인을 만들어 나갔죠. 중국에서는 용과 태극 같은 도교의 문양을, 이집트에서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일본에서는 국화나 기모노에 착안한 디자인으로 콜로라투라*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세계 최고인 까르띠에의 세공 기술과 다채로운 문화가 더해지자 전 세계의 소비자들은 이에 열광했죠. 이처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도전을 선보인 까르띠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폭넓은 문화를 자신들의 작품에 적용하며 그들만의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 콜로라투라: 클래식 음악에서 기교가 넘치는 화려함을 노래한 거장의 목소리를 뜻하는 오페라 용어로, 까르띠에에서는 이를 통해  다채로운 색감을 가진 주얼리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표현하고자 함.

👻: 세계 각지의 문화를 융합해 만들어낸 컬렉션이라니, 정말 아름다워령. 앗 그런데 까르띠에는 결혼 예물로도 유명하지 않나령? 이건 이유가 뭔가령? 

▲  영화 <The Proposal> 속 프로포즈 장면, 출처: 까르띠에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다 🤔
까르띠에의 주얼리는 프러포즈 때 받고 싶은 액세서리로 손꼽히며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세공 기술이나 독특한 시도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까르띠에의 제품에는 사랑, 청혼, 결혼'이라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까르띠에의 광고나 매장에는 유독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고. 그래서 10년 전 까르띠에가 공표한 슬로건에서도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헌신할 수 있냐는 질문이 담겨 있었죠.

이런 열풍은 19세기에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요, 19세기 유럽의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반려자가 될 사람에게 까르띠에의 티파니, 목걸이, 반지 등을 선물했어요. 그들은 당시에도 높은 가격을 자랑했던 까르띠에의 보석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까르띠에의 보석이 헌신적인 사랑의 증표를 의미한다는 것! 사랑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표현하기 위해 까르띠에의 주얼리를 선물했던 거예요. 또 까르띠에는 단순히 예쁜 보석을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랑이라는 가치를 주얼리에 더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또, 보석을 전하는 사람이 가진 사랑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죠. 그 결과 까르띠에는 사랑의 상징으로 빛날 수 있게 된 거라고.

👻: 아름다운 보석에서 나아가 사랑 그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로맨틱해령! 전하는 이의 마음을 담고자 하는 까르띠에의 세심함에 감동받았어령.

▲  52년째 사랑받는 까르띠에의 러브 컬렉션
헌신적인 사랑의 상징 💞
까르띠에가 내놓은 다양한 주얼리 중 사랑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은 까르띠에 러브 팔찌에요. 1969년 탄생한 이 팔찌는 ‘진정한 사랑의 봉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죠. 서로를 사랑하며 나누는 행복한 감정을 팔찌에 꾹꾹 눌러 담아, 언제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인데요. 그래서인지 굉장히 독특한 착용 방법으로도 유명해요. 이 팔찌는 한 번 착용하고 나면 특수 제작한 스크루 드라이버로 팔찌를 조여 팔목에서 팔찌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거든요. 이 주얼리를 디자인한 까르띠에 뉴욕의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는 이 팔찌를 통해 사랑에 대한 맹세, 변함없는 헌신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했대요. 

이러한 까르띠에 러브 팔찌의 인기를 증명하는 유명한 사례가 있는데요,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는 이 팔찌를 풀 수 있는 전용 드라이버까지 구비하고 있다는 것!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커플들이 이 팔찌를 착용하길래 병원에 드라이브까지 있는 거예령!) 이처럼 까르띠에 러브 팔찌는 연인 간의 유대감을 독창적으로 표현해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까르띠에는 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공 기술, 문화에 대한 폭넓은 수용을 바탕으로 독보적 디자인을 창조해내고 있다고.

👻: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브랜드네령. 혹시 백화점에서 까르띠에를 마주친다면, 잠시 멈춰 서서 까르띠에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령?
플롯 TMI 💎
TVC : <까르띠에의 모험>

까르띠에의 창조물이자 상징인 표범 팬더(panthere)가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기, <까르띠에의 모험>. 이 영상에는 러시아부터 인도까지, 각 지역의 문화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수많은 상징이 등장해요.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팬더가 거침없이 세계를 활보하듯,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는 까르띠에의 포부를 담고 있는 영상이죠. 플로터 여러분도 팬더와 함께 까르띠에의 모험을 지켜보며, 지금껏 까르띠에가 주얼리에 담으려 한 메시지를 멋진 영상으로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아래 사진을 클릭해 <까르띠에의 모험>을 함께 떠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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