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이 궁금한 사람, 준상 이야기 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이것은 서평도 인터뷰도 아니여 북촌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느 겨울, 버스 안 대화에서 시작됐다. 같은 수업 들으며 그냥저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고, 학회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한 사이였다. 외부 강의 일정 때문에 어색한 동행을 하게 되었을 때의 대화였다.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다가 준상은 자신이 루소를 좋아한다며 뜬금없이 ‘사랑’이란 키워드를 꺼냈다. 사랑이란 단어를 일상적으로 꺼내는 사람이라니. 내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언젠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루게 된다면, 준상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때가 왔다. 내 앞에 알랭 드 보통의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나타났다. 이 책 한 권이라면 사랑에 대해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준상과 약속을 잡고 질문지를 작성했지만, 개뿔, 내가 사랑에 대해 무얼 안다고 질문을 던지겠는가. 사랑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건 준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찾기로 했다. 어쩌면 오래 전 시작된 대화, 그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대화를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해요체와 반말이 섞여 있습니다. 사실감을 살리려 그대로 썼습니다. 실제로 들으면 제 존대는 그리 존대 같지 않으니, 부디 편하게 읽어주세요.)
준상: 나도 그 날 기억해. 내가 왜 기억을 하냐면, 그때 고민이 엄청 많았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겠는 거야. 너무 다 좋은데, 집중해서 뭘 좋아하는 게 없는 게 기자가 될 때 도움이 안 되는 거야. 너가 나한테 물어봤던 게 ‘관심 있는 분야가 뭐냐’ 이런 거였어. 노동이면 노동의 뭐, 청년이면 청년의 뭐. 내가 대답을 못하는 거야. 게임, e-스포츠 이런 것만 생각나고. 집에 돌아가서 며칠 동안 고민을 막 했어. 내가 기자가 되려면,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어야 되는데, 뭐가 맞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네럴리스트. 그게 더 유리하다. 그때 그걸로 며칠을 고민했기 때문에 그날이 기억나.
원진: 어쨌거나 저한테도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날이에요. 간단하게 소개부터 해주시죠.
준상: 틀에 박힌 말 하기 싫은데, 그냥 세상이 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랑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는 사람. 주제가 사랑이니까 그렇게 소개해 볼게.
원진: 이 책을 읽고 나서 간단한 소감 한 마디.
준상: 나는 영어 제목이 좀 신기했어. <더 코스 오브 러브(The Course of Love)>, 사랑의 강의 또는 과정이겠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더라고. 든 생각은 역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건 사랑이구나,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삶이 안 돌아가는구나 라는 걸 다시 한 번 체득했지. 일단 이것부터 얘기했으면 좋겠어. 내가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야.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이 있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인간과 인간의 사랑.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고, 다 사랑인데. 사랑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남녀 간의 사랑을 많이 얘기하는 것 같더라고.
원진: 사랑을 거시적으로 보는 차원에서 제가 좋아하는 책이 있어요. 제 인생 책으로 꼽는데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울리히 벡이랑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 부부가 지었는데요.
준상: 두 분이 부부셨구나.
원진: 네, 그분들이 사랑을 사회학적 연구대상으로 삼아요. 그리고 그 사랑을 풀어내는 거예요. 전 그게 너무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그냥 치트키처럼 쓰였잖아요. 사랑이라고 하면 설명할 수가 없어, 그냥 사랑이야, 이렇게 하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잖아요. 그걸 사회학적으로 풀어냈는데, ‘낭만적 사랑’이 근대화, 산업화 시작하면서 생긴 거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생존을 위한 계약에 의해서 결혼이 맺어졌던 건데, 먹고살만한 시대에도 어쨌든 사회 공동체를 유지해야 되니까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걸 덧입혀서 결속해야 하는 이유를 만든 거죠. 그 낭만적 사랑이 현대인들한테 지금 어떤 의미가 됐는지를 잘 다뤄낸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준상: 내가 사랑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어. 내가 루소를 좋아해. 루소의 <사회계약론>를 읽으면 일반 의지라는 단어가 나와. 일반 의지를 통해서 인간이 사회적인 계약을 맺고 국가를 만들었다는 게 루소의 간단한 설명인데, 내용이 엄청 복잡하지. 일반 의지라는 말이 다른 말로 보편적 의지인데, 정말 두루뭉술해. 인간이, 그러니까 우리 둘이 일반 의지라는 걸 가지고 계약을 맺게 되는 거야. 처음엔 그 일반 의지가 뭔지 이해가 안 됐어. 같은 때에 홉스라는 사람은 너무 쉽게 설명을 하거든. <리바이어던>이라는 저서에서 커먼 웰스(Common-Wealth, 공공선), 우리가 자연 상태에서는 위협받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건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돼. 이게 홉스의 얘기야. 물론 그게 변질되면 독재로 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평범하고 쉽게 설명 했거든. 그런데 루소는 두루뭉술하게 우리가 일반 의지로 국가를 형성했대. 처음에는 이 사람이 뭔 개소리를 하나 싶어서 되게 싫어했었어. 어느 날, 교수님이 루소 전문가를 데리고 오셨어. 루소만 평생 연구해 오신 분이야. 그분이 루소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루소가 어렸을 때 별로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고 커서 가정 교사를 했는데, 거기 부인이랑 사랑에 빠진 거야. 그래서 도피를 해. 애를 다섯인가 여섯인가 낳았대. 그 얘기들을 듣는데 사랑꾼인 거야.
원진: 아, 그냥 사랑꾼.
준상: 태초는 그런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었고, 그 사랑의 관념을 가져다 일반 의지까지 정착시킨 거야. 교수님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얘기하시면서, 어떻게 그 조그마한 집단에서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힘이 생겼을까,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래. 그럼 루소의 일반 의지가 뭔지 알 수 있을 거래. 저게 뭔 개소리인가 하고 그날 집에 가서 계속 생각을 한 거야. 도대체 저게 일반 의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했는데,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 광주 시민들은 민주화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주먹밥을 먹고 총을 들고 광주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거지. 또 교수님이 설명해 준 게 연인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래. 연인 사이가 유지될 수 있는 일반적 의지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거야. 공통의 목표, 사랑이잖아. 그럼 결국 국가가 만들어지는 데 공통된 목표가 뭐냐. 공동체에 대한 사랑인 거야. 그래서 내가 그걸로 논문을 썼어. 나는 이제 루소라는 사람이 달라 보이는 거야. 사랑이구나. 그래서 나는 사랑으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 기독교적인 마인드일 수 있는데, 그런 결론에 이어서 신념이 된 거야.
원진: 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 않나요? “사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는 어느 쪽도 다치거나 죽을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49쪽)
원진: 연인과의 섹스를 말하는 부분에서 연인 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결국에는 사랑은 신뢰라는 걸 강조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앞서 말한 일반 의지랑 비슷한 게 아닐까.
준상: 그럴 수 있지. 신뢰라는 거지. 이 의지라는 게.
원진: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을 거란.
준상: 거기서 의지를 윌(Will)이라는 단어로 얘기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믿음인 거지. 빌리프(Belief)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거. 해치지 않는다는 거. 사실 어떤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어. 해치지 않을 거기 때문에 연인이 되는 건지 연인이기 때문에 해치지 않을 건지. 그건 모르겠는데 뭐 비슷한 것 같아. 말은 이렇게 하면서 사랑하는 건 참 어려워. 원진: 그쵸.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모르니까. 첫 만남부터 시작을 하자면, 저는 사실 사랑의 과정 중에 이 순간이 제일 설레는 것 같은데.
준상: 맞아, 썸 탈 때.
“라비는 즉시 커스틴에게서 자신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심리적·신체적 특징들을 간파해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열두 명이나 되는 근육질의 현장 인부들이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여도 차분하고 즐겁게 응대하는 여유, 여러 가지 항목을 점검표에 체크해나가는 부지런함, 일반적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 자신감, 그리고 살짝 고르지 않은 위쪽 앞니가 내비치는 개성이다.” (20쪽) “창백한 안색과 비스듬한 목의 기울기로는 그녀의 영혼을 쉽게 간파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있었다.” (22쪽)
원진: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이 사람을 알고 싶고 불안할 때, 그때가 제일 설렌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요소들로부터 성격 전체를 알아내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살아가면도 서로를 알아가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고요. 저는 이성애자니까 특히 남성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지 않을까요.
준상: 그런데 그건 있다. 정보화 사회잖아. 이런 거 없이 너무 쉽게 정보를 알 수 있어. 내가 오늘도 느낀 건데. 친구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대. 얘기만 해보고 잘 모르는 상태인데 그 사람 정보를 다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알았냐 했더니. 인스타 뒤져 봤더니 다 나오더래.
원진: 그게 진짜 정보일까요? SNS를 통한 정보가.
준상: 보여지는 정보일 수 있긴 한데, 어쨌든 그 사람의 이름, 나이, 생일 정도는… 책에서는 적어도 상상하잖아.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든가. 그런데 SNS로 다 알고 있는 거야.
원진: 그것도 노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죠.
준상: 살짝 소름 돋았어. 나한테 누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 남자분은 그걸 알았을 때 좋아할까?
원진: 다른 얘기긴 한데 비슷한 기억이랄까. 제 학창시절을 풋풋하게 채워준 기억이에요. 제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짝사랑을 했어요. 중학교 때. 그때가 제일 풋풋할 때잖아요. 그분이랑 안 이루어졌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요소로 알아내려고 노력해서, 내가 만든 그 사람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환상이 깨지지 않아서 지금 나한테 아련하게 남은 것 같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 사람에게 되게 고맙게 생각해요. 어쩌면 퍽퍽할 수 있었던 학창시절에 좋은 추억 하나 남겨준 것 같고. 그 사람은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네요. 아까 말해준 그 분도 짝사랑의 시작이었으니까. 갑자기 떠올랐어요.
준상: 맞다. 그럴 수 있겠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긴 했어. 이어졌는데 나중에는 짝사랑이 됐지.
원진: 짝사랑이었는데 이어졌다가 짝사랑이에요?
준상: 처음에는 이어졌는데 나중에 짝사랑이 된 거지 몇 년 동안. 그때 그 친구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이 풍부했지.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가 떠오르고 막 이런 거 있잖아.
원진: 무슨 노래였어요?
준상: 나는 <속아도 꿈결>, 이런 거. 지금은 그 가수가 불법을 저질러서 그렇지만…
원진: 나도 있었어요. 신승훈 <I Believe> 알아요? 기타 치면서 그거 불렀거든요. 그래서 그게 생각이 나요. 흥미로운 게 보통 짝사랑이라고 하면, 시작 전에 혼자 좋아하던 시간을 말하잖아요. 헤어지고 나서 좋아하는 걸 미련이라고 하거나 못 잊었다고 표현을 하거나. 그런데 그걸 짝사랑으로 표현을 하네요.
준상: 헤어지고 나서 못 잊었다는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해방감 이런 게 있으니까 어린 나이에 막 행복한 거야. 그냥 내 삶을 살아가다 보니까 괜찮았거든.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도 문득문득 파고 들어오는 거, 그런 게 뭔가 애잔하게 남아서. 몇 번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잘 안 됐어. 미련이거나 못 잊었으면 노력을 엄청 했을 것 같은데 노력하지 않았어. 그냥 그 상태가 좋았던 것 같아. 내가 짝사랑하고 있다, 이거 자체만으로도 괜찮았어.
원진: 그게 짝사랑의 맛이죠. 짝사랑은 혼자만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짝사랑도 사람을 풍족하게 만드는 건 맞는 것 같네요.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22쪽에 ‘냉소주의자는 단지 특별히 높은 기준을 가진 이상주의자일 뿐'이라고 나오거든요. 이걸 보고 알랭드 보통이 사랑의 이면에 대해서 쓴 건, 작가가 사랑에 대해 너무나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안 좋은 것까지도 고려하고 껴안아야 한다는 거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부정적인 단어까지 다 품은 게 사랑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준상: 낭만적인 것만 사랑이 아니지.
원진: 제 인생 드라마가 <괜찮아 사랑이야>거든요. 거기서 그런 대사가 나와요 공효진 배우가 사랑을 안 믿고 조인성 배우가 사랑을 믿는데.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여자와 남자 커플을 보면서 공효진 배우가 ‘사랑이 저들을 구할까?’라고 해요. 그러니 조인성 배우가 ‘아니겠지. 고통과 절망도 같이 주겠지. 그리고 그걸 이겨낼 힘도 주겠지,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되게 인상 깊었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봤던 영화나 드라마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준상: 사랑 얘기 중에는 너무 많은데. 내가 로맨틱 코미디 진짜 좋아하거든. 웬만한 건 다 봤어. 보면서 ‘아 찐사랑이다’ 했던 건, <첫키스만 50번째>. 이 사람이 매일 나를 처음 보는데도 나를 똑같이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결국 이겨내. 방금 말한 조인성 배우의 대사와도 이어질 수 있겠다. 고통의 시간 있어도 사랑으로 극복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큰 사랑이 오고 그런 것 같아.
원진: 궁금한데, 그게 언제까지 갈까요?
준상: 어떤 게? 사랑의 힘이?
원진: <첫키스만 50번째>의 사랑이. 왜냐하면 첫키스 100번째에 싫어질 수도 있잖아요. 끝까지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준상: 아니, 나는 한 600일 정도에 끝날 것 같아. 원진: 하하하, 연애의 유통기한은 900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원진: 알랭 드 보통이 썼듯이 사랑이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죠. 토라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요. “집에 오는 길에 라비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피곤하다고 말하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그 유명한 ”아무것도 아냐”로 대답한다. (…) 토라집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 토라집의 대상자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다.” (86~87쪽)
원진: 토라짐이라는 감정이 되게 묘한 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는데, 내 모습이 되게 미운 거 아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 것까지 알아주길 바라는 거잖아요.
준상: 말하면 찌질해지고.
원진: 네, 사랑하면서 알게 된 나의 못난 모습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준상: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알게 된 건데, 유달리 그 상대에게 화를 많이 내더라고. 그전에는 화를 낸 적이 많이 없어. 어느 날은 내가 소리를 높이고 있는 거야. 그걸 내가 봤는데 너무 보기 싫은 거야. 그냥 내 스스로가 너무 꼴보기 싫은 거야. 엄청 현타가 막 왔었어. 그런 적이 있었어.
원진: 난 내가 싫은 데 맞춰줬던 거, 그 사람의 감정 때문에 내가 나를 통제하고 눈치 봤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킥 하는 그런 거? 어느 정도에 관계에 들어서면, 우리가 이 정도 관계고 이 정도 좋아하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지금 난 그 정도는 아닌데, 나한테 어떤 감정을 요구하거나… 어떤 순간에도 내 주관을 꿋꿋이 지키겠다 이렇게 마음 먹었는데, 그게 연애하면 무력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관계라는 게 그렇잖아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그랬던 상황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싫더라고요. 보통 그러잖아요. 같이 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거기에 저는 되게 동의를 해요.
준상: 아까 너가 말했듯이 살아온 삶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둘이 맞추려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는 자꾸 자기 삶에 맞추려고 하잖아. 그러다 보니까 헤어진다고 내가 수업시간에도 발표했었는데. 나는 그걸 알고도 안 되더라고, 자꾸 상대방을 나한테 맞추려고 하고 있더라고. 그러다 보니까 막 서로 싸우고.
원진: 아, 생각났다. 우리 같은 수업 들었을 때, 그때도 헤어진 얘기, 실연 얘기 하지 않았어요?
준상: 헤어진 지 딱 얼마 안 됐을 때, 일부러 이별 주제를 잡아서 했지.
원진: 그때 뭐라고 했었죠?
준상: 주제가 그거였어.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헤어지는지’. 나중에 글 쓸 때 많이 써먹었는데, 알프레드 슈츠가 ‘사랑은 인간이 살아온 삶,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거다’라는 말을 했고. 거기서 내가 생각한 게, 그럼 서로 다른 세계를 함께 합으로 만들어갈 생각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안 헤어질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은 헤어졌지.
원진: 남녀가 헤어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한 쪽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사랑에 동반되는 모든 고통을 이겨낼 노력을 하지 않는 거겠죠. 짧은 경험이지만 전 여태까지 ‘이 사람은 아니구나, 굳이 노력하고 싶지 않다’, 제가 깨달아서 헤어졌거든요.
준상: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뭐라고 생각하냐면, 좋아해도 헤어질 수 있다 생각해. 안 좋아해도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헤어짐과 만남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
원진: 오오… 주변 애들이 저한테 했던 말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 그 말을 듣고 몇 번 노력 해봤지만, 아니더라고요. 아닌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부분도 되게 흥미롭네요.
준상: 좋아하고도 헤어질 수 있어.
원진: 그러니까 나는 그게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것 같아요.
준상: 경험담인데, 둘 다 좋아하고 있었어. 근데 너무 많이 싸우는 거야. 왜냐 못 봤거든.
원진: 장거리…
준상: 사랑이라는 게 참 이렇게 하나로 이렇게 운명이 달라지는구나.
원진: 그들이 나를 전여친의 범주에 껴줄지 안 껴줄지 모르겠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관계의 책임이 그들에겐 없었어요. 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 헤어진 거기 때문에 아련한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끝이 깔끔하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너 혼자 깔끔한 거겠지, 끝이 깔끔하면 좋아한 거 아니야’, 이러는데… 거기서 저는 뒷통수를 확 맞았어요.
준상: 이별은 원래 구질구질하지. 깔끔할 수는 없어.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원진: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도 해요. 내가 감정적인 면에서 약간 어린 게 아닐까.
준상: 아마 감정을 파도 치게 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난 걸 수도 있지.
원진: 그러니까요. 어디 있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언젠간 만나게 되겠죠. 그 날을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자기 삶을 스스로 돌볼 줄 아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요. 제가 4년 동안 혼자 살면서 겪어보고 느낀 건, 본인이 먹는 거 생활하는 거 돌볼 줄 알아야 되고 본인의 감정을 돌볼 줄 알아야 해요. 그게 외로움이든 뭐든. 나는 내 시간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 없는 자기의 시간을 잘 돌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이상형이에요.
준상: 나도 완전 공감하거든. 나도 내 삶이 필요한 거잖아. 나를 위한 연애를 하는 거지. 솔직히 남을 위한 연애는 힘든 거잖아. 나를 위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시간이 필요한 거고. 둘이 만났을 때 행복하면 되는 건데. 반대인 사람들은 내가 나를 위한 연애를 하려고 하면은 별로 안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감정이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물론 그 말도 틀리지는 않을 수도 있어. 어렸을 때는 내가 좋으면 그냥 좋은 대로 물불 안 가리고 막 돌진하는데,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내가 해야 할 것들도 많고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쨌든 인간관계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 아니어도 우리는 누구한테나 사랑받고 싶어 하잖아. 옛날에 싸이가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가지고 그런 말을 했어. 자기는 모든 여자한테 사랑받고 싶다고. 나도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고 싶어. 그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밉보이는 것보다는 사랑받는 게 나으니까. 그래서 또 결국 사랑이라는 게 진짜 우리 삶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
원진: 저도 당연히 사랑받고 싶죠. 글 쓸 때도 그래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