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늙은 것도 아닌데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전화번호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전 남친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제대로 못 누렸다고 말할 만한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듯 얼 타는 사이에 지나가 버려서 아쉽다. 종종 아쉬워서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있는 그대로 눈 부신 (그때는 그걸 몰랐던) 나의 20대 말이다.
이제 와서 이럴 줄 알았다면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하는 게 아니었는데. 반년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반 년 세계 여행하기로 결심했던 그 포부를 고집스럽게 고수할걸. 지나가다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내가 일하고 싶었던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을걸. “어. 나 그 잡지 좋아하는데!” 같은 말은 하지 말걸. 그 말을 들은 걔가 “그래? 다른 팀에서 어시스턴트 에디터 구하는데. 지원해 볼래? 내가 물어봐 줄게”라고 했을 때 “아니야. 직업 갖기 전에 1년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시간 보낼 거야. 갭이어 같은 거.” 하고 대답할걸. 그 대화를 나눈 뒤 정확히 이틀 후부터 지금까지 잡지를 만들며 산다.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소가 달구지를 끌듯 묵묵히 (사실은 처절하게, 국정원 직원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기세로) 일만 했다.
아. 이런 구리구리한 옛날 얘길 하려던 건 아니다. 지난 발리 여행 이후 혼자 하는 여행에 완전히 심취해서, 또 가고 싶은 여행 얘길 하려던 참이었다. 지금 내 나이의 앞자리가 2라면(이런 하등 쓸모없는 가정을 틈날 때마다 한다. 좋아서), 루앙프라방에 진을 치고 두 달쯤 살았을 것 같다. 그 시절에 나는 내내 루앙프라방에 가고 싶었다. 거기가 어떤 데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아주 가난한 주머니로도 궁색하지 않게 머물 수 있으며 할 일 다 마친 소처럼 느릿느릿 게으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정도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여행하며 쓴 글로 돈(최소한의 생활비)을 버는 직업을 가진 덕에 별의별 곳을 다 떠돌았는데 루앙프라방에 갈 기회는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생겼다. 별 다섯 개짜리 럭셔리 리조트의 초대를 받았다. 프랑스 군의 막사를 개조한 그 리조트는 니스의 대저택 못지않게 아름답고, 낭만적이며, 대단히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머무는 내내 ‘오성’의 격에 맞는 일정을 보냈다. 야시장의 1만 4,000낍짜리 뷔페 대신 호텔 레스토랑에서 로컬 식재료로 만든 버팔로 버거를, 루앙프라방의 하이엔드 리조트 GM들이 사랑한다는 르 베네통 베이커리에서 13만낍짜리 브런치를 즐겼다. 자전거를 빌려 먼지 뒤집어쓰며 마을을 누비는 대신 레몬그라스를 우린 물에 적신 물수건과 카나페, 프렌치 정찬, 돔페리뇽을 내는 최고급 선셋 크루즈를 탔다. 배 위에서 메콩강의 어부들이 수풀 사이로 장대를 쑤셔 넣으며 물고기를 낚는 모습, 강을 수영장 삼아 발가벗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 강물을 금빛으로 뜨겁게 적시는 노을을 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감탄하는 대신 ‘저건 어떻게 찍지? 망원 렌즈를 가져올 걸 그랬나? 돌아가면 카메라를 새로 사야겠다.’ 같은 생각만 했다.
이렇게 멋지고 낯선 땅에서 감성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지 않아 슬펐다. 안그래도 ‘오그라든다’는 말, 체면, 나잇값, ‘쿨’ 따위의 그럴듯한 단어 때문에 표현하지 않은 마음, 놓친 감정, 지나친 경험들이 너무 많은데, 제일 큰 후회는 기사에 쓰기 좋거나 SNS에 있는 척하고 올릴 만한 사진만 찍어 대느라 거기 사람들이랑 제대로 된 눈인사도, 이야기도 못 하고 돌아온 것이다. 실은 그때 뷰파인더 말고 눈에 담은 기억이 너무 흐릿해서, 1,650원을 내고 어떤 배우들의 라오스 여행기를 다운로드 받아 봤다. 그들이 걸었던 거리, 잘생긴 얼굴 뒤로 흩어진 풍경들이 어렴풋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하다.
그 여행은 오래전에 끝났는데 뒤늦게 아쉬워서 주섬주섬 외장하드를 찾아 뒤졌다. 빨리 빨리 다니느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셔터를 눌러 대며 얻은 장면 속에서 뒤늦게 그 도시의 사랑스러운 맨얼굴을 본다. 그땐 루앙프라방이 밍숭맹숭, 밥은 있는데 반찬은 하나도 없는 밥상 같아서 ‘여기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헸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뭐 놓고 온 거 없나?’ 따위의 기분이 드는 나이가 되니 다시 가고 싶어서 자꾸 생각난다.
다음 루앙프라방에선 꼭 촌스럽고 쓸모 없는 코끼리 바지랑 맥주 로고가 그려진 싸구려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사입어야지. 시사방봉 대로의 노천카페에 앉아서 10대 때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온갖 궁상을 떨어야지. 바이크 한 대 빌려 꽝시 폭포에 가서 신나게 물질도 해야지. 비포장도로 위를 질주하느라 얼얼해진 엉덩이를 달래며 덜 말라 꿉꿉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라오 비어 한 캔과 지루한 책 한 권으로 밤을 보내야지. 이런 유치한 욕망은 어느 누구에게도 특히 그걸 알면 사는 내내 날 놀려먹을 친구들에겐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으므로 꼭 혼자서 가야지. 그 시절 나한테 실컷 해주지 못한 것들이 이제 와서 생각날 때, 부질없는 거 다 알면서도 끝끝내 아쉬울 때 여행만 한 게 없다. 이런 감정과 감성도 유효 기간이 있어서 더는 그립지도, 입맛을 다시지도 않을 때가 오겠지. 아. 영영 안 오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