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호주 대사가 끝내 '도주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야권에서 '도주 대사'라는 말까지 만들어 '도주 공세'를 폈는데요, 이 대사와 여권이 반박했지만 여론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여권에서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 남편에 대해 '전관예우 프레임'으로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조국이 말하는 검찰개혁이 22억 땡기는 거냐?"고 몰아붙이고 있는데요, 박 후보와 조국 대표는 이 프레임을 깰 수 있을까요?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아온 이종섭 호주 대사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거취를 정리했습니다. 

이 대사는 "오늘 외교부 장관께 주호주 대사직을 면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요청했다"고 변호사를 통해 밝혔는데요, 외교부는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사가 임명된 지 25일 만의 사의 표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난 것은 '도주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데다, 총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여권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채상병 사건 관련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민주당 등에 의해 고발됐습니다. 지난 4일 출국 금지 상태에서 호주 대사로 임명되면서 '도주 프레임'이 강하게 형성됐습니다.

반면 대통령실이나 여당은 고발 이후 6개월 동안 조사를 안 하고 시간만 보낸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문제라며 '도주 프레임'을 반박했습니다.

이 대사가 부임하기 전에 공수처를 직접 찾아가 조사받고, 소환하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받겠다고도 했는데 어떻게 '도주'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습니다. '직권 남용'이라는 고발 혐의에 대해서도 군에 수사권이 없으므로 법리적으로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한 번 형성된 프레임은 쉽사리 깨지지 않았고,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계속 '도주 아니다'라고 반박만 할 수는 없어 거취를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사는 사임한 상태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이 대사 변호인은 SBS 기자와 통화에서 "(이 대사가) 계급장 뗐으니까 공수처도 문제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계급장 떼고 조사받겠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이 대사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합니다. "저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이 대사가 말했다고 변호인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도주 프레임'이 자리잡은 상태에서 여론을 돌리기 어려운 현실은 받아들이되, 개인적인 명예는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국민의힘은 '이종섭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반응입니다. 박정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논평을 내고 "국민의힘은 민심에 순응하며 민심을 따르고 변화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 단장은 공수처와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민주당을 향해 "대사직을 수행하던 공직자에게 도피 프레임을 씌우며 기어이 외교 결례까지 무릅쓰게 했다"며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국민의 회초리를 겸허히 받아들였고, 잘못하고 있다는 꾸짖음은 더욱 낮은 자세로 받들었다"고 '겸허', '낮은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선거운동 현장에서 표심을 체감하는 후보들은 '이종섭·황상무 리스크'가 해소돼 다행이라는 반응입니다. 서울 용산에 출마한 권영세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의대 정원 문제로 야기된 '의·정 갈등'만 부담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이 대사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민주당 강민석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사는 사의 표명을 통한 사퇴 수순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도주 대사' 파문과 외교 결례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개혁신당 정인성 선대위 대변인은 "사퇴한 피의자 이종섭, 주범은 용산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 대변인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마치 혈중 알코올 농도 떨어지듯 제정신이 드나 보다"라고 비꼬은 뒤 "개혁신당은 용산에 숨은 주범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대통령실을 압박했습니다.

야권이 이종섭 대사에게 '도주 프레임'으로 공세를 폈다면, 여권은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후보의 남편에 대해 '전관예우 프레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 후보의 남편은 이종근 전 검사장인데요, 지난해 퇴직한 뒤 변호사로 다단계 업체 변론을 맡아 거액을 수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논란이 일자 이 변호사는 관련 사건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후보 지원을 위한 릴레이 유세에 나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러분 22억 원 며칠 만에 버는 방법을 아시나. 조국혁신당 비례 1번 박은정 부부처럼 하면 된다"고 공세를 폈습니다. 유세할 때마다 '전관예우 거액 수임' 논란을 직격했습니다.

조국 대표가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조국 대표가 수임계약서 썼으니 괜찮다고 했다"면서 "장난하나? 요즘 전관예우하면서 수임계약서 안 쓰는 경우가 어디 있나?"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언론 보도처럼 그분들(박은정 후보 부부)이 특별히 윤석열 검찰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박 후보 부부를 감쌌습니다.

전관예우가 아니라고 반박도 했는데요, "전직 고위 검사장인 변호사가 수임 계약서도 쓰지 않고 자기가 알던 네트워크의 사람들에게 전화해 사건 처리를 하고 돈은 이미 받고 계약서는 안 써 세금도 안 내는 것이 전관예우의 전형적 모습"이라면서 "내가 아는 바로는 수임 계약서는 다 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전형적인 '전관예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박 후보는 어제(28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 나와 직접 해명했습니다. "통상 검사장 출신 전관은 착수금을 5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안다"며 "남편은 (변호사 개업 후 약 1년간) 160건을 수임했기 때문에 전관예우가 있었다면 160억 원은 벌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보협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당 후보는 박은정이지, 그 남편인 이 변호사가 출마한 게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프레임 이론의 선구자인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프레임을 정의했습니다.

이번 총선의 경우 유권자들이 '이재명·조국 심판 선거'로 보느냐, '정권 심판 선거'로 보느냐 하는 것들이 프레임이죠. 여야가 이런 프레임으로 총선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유권자들이 어떤 프레임에 많이 동의하느냐가 총선 승패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프레임은 상대를 어떤 틀에 가두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종섭 대사의 '도주 프레임'만 봐도 그런 효과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할 때 잘 먹히는 '프레임'을 짜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재명·조국 심판론'이나 '정권 심판론'처럼 큰 프레임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하위 프레임이 존재하는데요, 유권자에 어떤 인식의 틀을 만들기 위해, 즉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프레임은 진실과 무관합니다. 어떤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사실과 다른 주장도 난무하는 만큼 유권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려내고, 이를 바탕으로 투표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