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쿨한나입니다.
이번 주에는 제가 쓴 글 대신, 며칠 전 혜린이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들려드리려고 해요. 이번 한 주 동안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게 이 대화였거든요.
혜린이는 요즘 부쩍 잘 나가요.
전교회장을 맡고 있고, 인스타에서 아이들이 알아봐 주고, 유튜브에도 나가고, 문체부 인터뷰까지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예뻐해 주시고, 학생 대표로 회의에도 들어가요.
열세 살한테 이만큼의 인정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건, 사실 흔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의 말이 그리고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어요. 아주 대놓고는 아니어도, 약간씩 티가 났어요.
저는 이 아이랑 10년을 부대끼며 살았잖아요. 말끝 하나, 눈빛 한 번이면 지금 이 아이 속이 어떤지 알아채요.
아,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날 저녁, 우리는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먼저 물었어요. 너 요즘 좀 들떠 있는 것 같아. 진짜 해야 할 일에는 집중을 못 하고, 학교나 친구 쪽에만 마음이 온통 가 있잖아. 스스로는 어떻게 느껴?
혜린이는 바로 답을 못 했어요. 마침 그날 아이가 도덕 시간에 '초심'을 배웠다길래, 저는 그 얘기를 꺼냈어요.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 것 같냐고 물으니,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때까지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말해줬어요. 초심은 가장 간절하고, 가장 순수한 마음이라고. 누구나 처음엔 그 마음으로 시작한다고.
성공한 사업가들이 언제 무너지는 줄 아니. 가장 돈이 많을 때도 아니고, 가장 잘 나갈 때도 아니야. 또 운도 아니고, 팔자도 아니야. 딱 "나 이제 뭐 좀 되는데? 나 좀 다른데?"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거기서부터 서서히 내리막이 시작돼.
산을 오를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힘들잖아. 그런데 내려올 때는 반대야. 처음엔 티가 안 나다가, 갈수록 가속이 붙어서 어느 순간 훅 떨어져.
사람도 똑같아. 나 이제 뭐 좀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야.
엄마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요즘 너를 보면서 그 마음이 살짝 비치는 것 같아서 그래.
혜린이가 바로 고개를 툭 떨어뜨렸어요. 자기도 요즘 스스로한테서 그 마음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마음이 들고도 끝까지 겸손한 사람,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 돼.
유재석 얘기를 해줬어요.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사람도 데뷔하고 거의 10년을 아무도 안 알아주는 무명으로 보냈대. 같이 시작한 동료들이 하나둘 먼저 뜨는 걸, 그 긴 시간 옆에서 다 지켜봤겠지.
얼마나 초조했겠어.
그런데 정상에 오르고 나서도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았어.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한테 고마워하고, 성공하고 나서도 겸손했어. 그래서 잠깐 반짝하고 사라진 게 아니라,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거야.
여기까지 듣더니 혜린이 표정이 조금 달라졌어요.
그리고 저는 회장 이야기를 꺼냈어요. 사실 이날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너 지금 전교회장이잖아. 리더야. 리더가 절대 하면 안 되는 게 뭔 줄 아니. 편을 가르는 거야.
나랑 친한 애, 안 친한 애. 내 편, 아닌 편. 리더가 사람을 그렇게 나누기 시작하는 순간, 거기서부터 끝이야.
회장은 너를 좋아하는 애들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야. 너를 안 좋아하는 애, 너랑 한 번도 안 친했던 애, 그런 애들까지 다 챙겨야 하는 자리야. 나랑 친한 애들만 챙기는 건 회장이 아니라 그냥 친구지.
네가 편을 가르는 순간, 어딘가에는 반드시 혼자 남는 애가 생겨. 네가 친구들이랑 웃으며 몰려다니는 그 옆에, 아무도 안 챙기는 애가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진짜 리더는 그 애를 제일 먼저 봐야 해. 혼자 있는 애, 조용한 애, 늘 뒤에 처지는 애. 리더는 그 애 곁에 먼저 가서 서는 사람이야.
그리고 이건 잘나가고 말고랑은 상관없는 건데, 아무리 회장이고 사람들이 알아봐 줘도 선생님께는 늘 공손해야 해. 이건 잘해서 지키는 게 아니라, 학생이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본이고 도리야.
오히려 선생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이 오면, 그게 네가 제일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야. 나 뭐 좀 되는데, 하는 마음은 늘 말투에서 제일 먼저 새어 나오거든. 말은 못 숨겨.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해줬어요.
특히 너는 말을 잘하잖아. 말을 잘하니까, 100% 네 말이 맞는 게 아닐 때도 사람들이 넘어가. 그래서 너는 더 조심해야 돼. 왜냐면 너는 지금 칼을 쥐고 있거든.
말을 잘한다는 게 너한테는 칼이야. 권력이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칼을 함부로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다쳐.
그래서 이 칼은, 너 좋으라고 준 게 아니야. 말로 누굴 이기라고 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 하는 사람, 목소리가 작아서 아무도 안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 대신 목소리를 내주라고 준 거야.
회장이라는 자리도, 말 잘하는 그 재주도, 엄마가 볼 땐 다 그래서 너한테 온 거야. 너 혼자 빛나라고가 아니라, 네 옆에 혼자 있는 사람을 챙기라고.
여기까지가 그날의 대화예요.
혜린이는 이 대화를 하고 나서 한동안 방에 들어가 혼자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생각을 컴퓨터에 가만히 적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이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어요. 이제야 혼자였던 친구들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안 보이던, 도움이 필요했던 애들이 이제 보인다고요.
아이가 정말 달라진 건 행동이 아니라 시선이었어요. 자기밖에 안 보이던 눈에, 이제 옆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들은 이렇게 크나 봐요. 붕 떴다가, 누가 한번 붙잡아주면 다시 옆을 보고. 그렇게 오르내리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거죠.
오늘 우리 아이의 눈에는, 지금 누가 보이고 있을까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