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정리하는 릴스를 그렇게 좋아했는가
밑줄일기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문득 찾아오는 사소한 편지
#078.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그러안고서
최근 정리정돈하는 릴스를 좋아했는데요, 어떤 문제가 몇 분안에 말끔하게 해결되는 모습을 대리만족하듯 보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은 그에 대한 마음을 다룬 편지입니다.

어쩌면 나는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그 릴스들을 대리만족하듯이 보고 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 엉켜버린 삶을, 정돈되지 않는 문제들을 몇 분 만에 명쾌하게 풀어주길 바라며.

나이가 들면서 길고 지난하거나, 정돈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일이 더 많아졌다. 내가 발벗고 나서면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10월 말까지 시간을 쪼개어 틈틈히 수정해야 할 3000개의 데이터. 언제, 얼마로 날아올지 모를 세금고지서. 언제 나빠질지 몰라 불안한 엄마의 몸 상태, 혹시나 바뀔지도 모르는 업무분장, 이사하고 싶어 갈아타기를 하려면 예산 확정이 되어야 하는데 시점도 금액도 확정짓기 어려운 지금 내 상황.

(...) 

릴스를 보며 누가 내 삶을 좀 정리해주면 좋겠다 생각하니까, 결국 답을 줄 수 있는 건 남이 아닌 나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삶을 구해줄 전문가는 결국 내가 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너무 쉬운 해결책을 찾아 자아를 의탁해버리면 삐끗하기 딱 좋은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오늘 딱 한 바늘만 꿰매기

-출처: 소얀, 오늘 딱 한 바늘만 꿰매기

*지난주 말씀드린 연수때의 힐링캠프 시간에 입직하며 임해야 할 마음가짐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썼던 문장입니다. 영어권 속담에 따르면 한 바늘은 내일 천 바늘을 대신한다고 하지만, 미리 열 바늘을 꿰맬 순 없을 노릇이니까요.

두 번째 문장

삶에 도움이 되는 긍정이란 나는 절대 생로병사의 고통 따위를 겪지 않을 거라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 거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비극적 낙관주의(Tragic Optimism)'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의 유한함과 인간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고통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가 나를 스스로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저는 긍정적인 인간은 아닌지라 저자분과 비슷한 태도를 항상 탑재하고 살고 싶어집니다.
세 번째 문장

그래서 이젠 안다. 어떻게 슬픔이 근육으로 변할 수 있는지

*20년도에 보내드린 편지에서 보내드렸던 문장입니다. 해방촌 책방에서 발굴한 독립출판물에서 발굴한 뒤 종종 인용한 문장인데요, 제 슬픔과 고민도 근육과 유연성으로 탈바꿈되면 좋겠네요..
PS. 날이 좋아 주말에 산책을 자주 가고 밀린 집안일을 하다보니 글을 못 쓴 상태로 밤 열 시를 맞았습니다. 일단 잠들었는데요, 편지 마감도 잠들고 아침에 하면 해내나 봅니다. 그럼 저는 이제 마저 준비하고 월요일 지하철로 저를 던져넣으러 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