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키류 카즈마라는 가상 캐릭터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카무로쵸라는 가상 거리의 사람들과 서브퀘스트라는 이름 아래에서 연을 맺고 스쳐 지나갑니다. 그것은 SM클럽의 어수룩한 여왕님일 때도 있고, 끼니를 혼자 심야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떼우는 초등학생일 때도 있고, 교통 계수를 재다가 건초염에 걸린 공무원일 때도 있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노숙자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이 끝나면 다시 바로 키류 카즈마라는 캐릭터의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여러 사람과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게임과 다르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영영 다시 나타나지 않는 데이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가끔은 게임 내 미니게임의 조력자로 다시 나타나기는 하지만), 각자 자신에게 하나씩 주어진 인생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특정한 누군가인 '나'를 통해 세계를 보고 경험하고 인생은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세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개인의 단편적인 삶을 살피지 못한다는 방대함과 무의미함마저 여전히 게임만큼 재미있는 삶의 일부분입니다.

서문이 길었지만, 이번 레터에서 소개할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일본에서 전후 오키나와의 노동력 이동과 아이덴티니, 피차별 부록의 구조와 변용, 사회조사 방법론, 생활사 방법론을 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입니다. 작가로도 활동하지만,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구술조사를 해서 생활사라고 일컫는 이야기들을 모은 것들입니다.

오키나와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 사회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기시 마사히코는 오키나와 피차별 부락, 빈곤과 섹슈얼리티 연구 분야에서 여러 소수자를 만나며 다양한 개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는 이런 단편적인 모두의 인생을 계속 관찰해서 기록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황과 행위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인간에 관한 이론'을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시 마사히코씨는 한국에 출간되는 모든 책에 대해 한국 독자들에게 붙이는 말을 실었는데(공저 대담집인 <보통의 행복>을 제외), 그 말들을 빌려 국내에 출간된 저자의 책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