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신학자
#93 장 칼뱅, 제네바로 가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94 시몬 베유, 신을 기다리며
#95 로완 윌리엄스, 그의 글쓰기에 관하여
#96 슐라이어마허는 예수를 사랑했다

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편집자 B입니다.

 

시몬 베유는 시 「사랑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을 읽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를 사로잡으셨다”고 합니다. 시를 읽다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경험, 이 경험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독자님은 글을 읽다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글에는 힘이 있어 보입니다. 어떤 글은 사람의 마음에 닿아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성경을 읽을 때, 누군가는 시를 읽을 때, 누군가는 에세이를 읽을 때, 누군가는 소설을 읽을 때 그런 경험을 합니다.

 

오늘 독자님께 소개하는 글은 로완 윌리엄스의 책 『루미나리스』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를 밝게 비춘 등불 같은 사람들을 다룬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등불이라 생각하는 시몬 베유를 소개합니다.

#94 시몬 베유, 신을 기다리며

시몬 베유는 1909년에 태어났고 젊은 나이였던 1943년에 켄트주 애슈퍼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탈출했고 마지막 몇 달을 영국에서 피난민으로 지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부분적으로는 프랑스의 동포 중 가장 가난한 이들보다 더 많이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결과였습니다. 그녀의 외골수적 성향이 전형적으로 드러난 결정이었습니다.

시몬은 유대인이었지만 아주 세속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어떤 유대교 관습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그녀의 가족은 스스로를 평범한 프랑스 국민으로 생각하도록 서로를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의 오빠 앙드레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고, 시몬은 철학과 언어에 조숙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잠시 가르쳤고 공장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는데, 사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 기간에는 짧은 기간 동안 정부군과 함께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짧은 실험의 역사는 그녀가 대부분의 삶을 추상과 무념의 층위에서 보낸, 대단히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녀는 엄밀히 말해 아주 성공적인 교사도, 공장 노동자도 아니었습니다. 스페인 군대에서는 끓는 기름이 든 냄비에 발이 빠져 심한 화상을 입는 바람에 2주 만에 상이병으로 제대하기도 했습니다.

시몬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는 그녀가 쓴 모든 글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녀는 먹을 것과 마실 것보다 사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르노 공장의 힘없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실제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얻은 것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강렬한 지성을 갖춘 그녀는 자신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지성주의는 넓어지고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물의 중심에 있는 일종의 신비주의를 접했습니다. 신비주의는 대체로 안락하고 아주 똑똑한 프랑스의 부르주아적 가족 안에서 자란 그녀에게 전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몬은 피정을 시작했는데, 이십 대에 참석한 한 피정 장소는 솔렘(예전과 그레고리오 성가의 유명한 중심지)의 베네딕트회 대수도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머물던 어느 날 저녁 평소 외우고 있던 조지 허버트의 시 「사랑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을 읊조리고 있을 때를 묘사합니다. 그녀는 그 시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나를 사로잡으셨다”고 썼습니다.

그녀가 이 체험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만,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 시점부터 그녀의 모든 사색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교 신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독특한 그리스도교 신앙이었습니다. 시몬은 엄청난 지적 모험을 멈추지 않았고 전통 가톨릭 신학에 동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존경하던 한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세례 받는 것은 늘 거부했습니다. 그녀가 가톨릭교회에 합류하면 구원의 조건이 가톨릭교회에 합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은 인류 대부분을 배제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시몬은 자신이 교회에 합류하여 구원을 보장받기보다는 인류 대부분과 함께 배제되는 쪽에 머물러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적어도 이는 용감한 결정이고 나름대로 고결한 결정입니다. 하지만 이 결정이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성만찬, 현대 세계에서의 믿음의 역할, 혼란스럽고 경쟁적인 현대 사회에서의 “뿌리의 필요성”(이 표현은 그녀의 책 제목이 되었습니다)에 대한 그녀의 맹렬한 사색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 중인 프랑스의 한복판에서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썼습니다. 그녀가 볼 때 프랑스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이해하는 것, 자연의 질서와 다시 이어지는 것, 그녀가 공장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삶을 지배하는 비인격적인 기술 전제주의—그녀가 볼 때 진정한 인간성을 위협하고 압도했던 권력 체계—에서 돌이켜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비인격적인 기술적 이상에 맞서 자신의 영적 이상을 정의하고 그것을 프랑스어 단어 ‘attente’로 표현했습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하는 것이 까다롭습니다. ‘attente’는 ‘기다림’과 ‘주목’ 모두를 의미합니다. 조류 관찰자가 경험하는 기다림이지요. 조류를 관찰할 때는 가만히 있으면서 긴장을 푸는 일과 집중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매 순간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에너지를 너무 쥐어짜서는 안 됩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일이 벌어질 때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가장 유명한 책은 『신을 기다리며』Attente de Dieu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주목, 기다리는 주목으로 시작되고, 여기에는 모종의 자기 부정selflessness이 포함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불안을 미뤄 놓고, 저기 있는 것에 자신을 열고, 마음이 그것에 영향을 받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시몬의 사상에서 가장 중심되고 중요합니다. 그녀가 전개한 사상의 놀라운 점은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는 경험들을 하나님에 대한 관상 체험과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깊이 집중하고 순수하고 성스러워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관상할 수 있다”는 생각 대신에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법, 실험을 진행하는 법, 심지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때도 모종의 방식으로 이미 실제적인 관상을 하고 있다. 그저 거기 있는 것, 내가 아닌 것의 요구에 반응하며 내 정신과 의지를 외부적 실재에 맞추는 와중에 내 자아의 관심사를 보류하는 경험은 이미 낯설지 않다.”

우리가 이 책[루미나리스]에서 살펴본 많은 작가의 경우처럼, 이런 생각 배후에는 심오한 이론적 배경이 있고 그 배경의 개념들 중 일부는 소화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몬은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내어 주는’ 이런 헌신의 과정이 하나님과의 연합의 근거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친히 자신을 헌신적으로 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존재할 수 있게 하시고자 하나님이 스스로를 지워 버리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시야에 들어오게 하시고자 시야에서 물러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너무나 철저하게 내어 주셔서 자신을 사실상 지워 버리시는 이 선물을 베유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상적 관계는 하나님이 시야에서 물러나심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자신을 ‘지우고’ 그분에게 우리를 단순히 맞출 때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탈창조”de-create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또는 신실한 유대교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 만한 주장이고, 시몬의 유산 중에서 가장 이의 제기가 많고 논쟁을 불러온 주장 중 하나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단순히 창조된 생명을 취소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왜 창조를 하신 걸까요? 그러나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고 되살아나기 위해 자기 이외의 다른 것에 자신을 내어 주는 훈련의 근본 취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힘차고 밀도 있는 시몬의 글은 중독성이 있고 그녀의 정신의 범위는 너무나 넓고 깊습니다. 그녀의 비극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다거나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을 믿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구체적 정체성은 언제나 옆으로 치워야 한다는 확신이 그 부분적인 이유였습니다. 이것은 유대교에 지독히 둔감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이 폐지되어야 할 또 다른 당혹스러운 특수성의 조각인 것처럼, 유대교에 대해 적의와 몰이해를 보여주는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 허버트의 잊지 못할 시구를 묵상할 때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셔서 그녀를 사로잡으셨던”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내 영혼은 뒷걸음쳤다. 먼지와 죄의 허물 때문에.” 어떤 수준에서 시몬은 자신이 깨닫는 것보다 많이 알았고 자신의 지성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에게 깨달음이 주어졌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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