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명품 브랜드의 확장형 아카이브

구찌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오프라인에 아카이빙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어 국내 최초 강북에 명품 매장을 오픈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했습니다. 이태원에 오픈한 구찌의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은 기존의 구매층을 넘어 젊은 세대를 끌어모으기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이곳만을 위한 콘셉트, 컬렉션, 공간구성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커진 한국 시장의 명품 수요에 대한 화답이자 한남동, 이태원 상권을 활발히 이용하는 2-30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자 한 마케팅 전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찌는 부티크 구찌 가옥에 이어 동일 건물 루프탑 층에 자체 F&B 브랜드 ‘오스테리아 구찌’를 오픈합니다. 오스테리아 구찌는 예약 오픈과 동시에 1달 치 좌석이 매진되며 소비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5코스 13만 원, 7코스는 17만 원으로 일반 레스토랑 대비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팝업도 아니고 상시 운영할 레스토랑에 예약인원이 이렇게 몰리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넘어 명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비벌리힐즈, 피렌체, 도쿄에 이어 네 번째로 오픈하는 구찌의 레스토랑은 전통 이탈리아 요리에 한국의 문화를 녹여낸 독창적인 메뉴로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합니다. 인테리어, 메뉴 판, 커트러리 등 모든 요소에 구찌의 감성이 하나하나 녹아 있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구찌를 소비하는 것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명품 브랜드의 F&B 사업은 가격 때문에 제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층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기존에 제품을 소비하던 이들에게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브랜드로 채울 수 있는 경험 확장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풀어낸 것은 지난 3월 진행되었던 구찌의 히스토리 전시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展입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지난 6년간의 캠페인을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재해석한 이 전시는 한 공간에서 구찌의 창의적인 비전을 집약해서 풀어 놓습니다. 무료로 진행되어 예약만 하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기존에 브랜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아이덴티티나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해도 브랜드가 만들어 놓은 아카이브를 보고 느끼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스타일과 방향성을 체득할 수 있게 됩니다. 13개의 구찌 캠페인을 상징적인 조형이나 공간으로 구현한 이 전시는 3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안에도 관람이 가능하지만 몇 곳의 사진 찍기 좋은 특징적인 포인트가 SNS에 지속적으로 공유되며 공간을 방문하지 않은 이들까지도 구찌에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이러한 경험은 당장의 구매로 직결되지 않더라도 이후 동일 상품군 내 유사 브랜드들과 비교 시 호감 및 인지 상승의 효과로 이어질 수 있어 플래그십 스토어의 연장선 상에서 경험을 주는 공간이 브랜드에 기여하는 바를 시사합니다. 

구찌의 사례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4월 30일 한국 이화 여자 대학교에서 개최되는 디올의 2022 가을 여성 패션쇼와 함께 오는 5월 오픈하는 디올의 컨셉 스토어는 오픈 전 온라인 어플리케이션으로 선공개되어 AR을 통해 공간을 미리 만나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파리 몽테뉴 30 스토어의 외관을 본 딴 성수 컨셉 스토어에서는 매쉬 구조물 속 한국과 프랑스의 자연을 조화롭게 믹스해 놓은 정원과 함께 디올 부티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픈을 앞두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카페 선 예약을 받아 기대감을 높이고 있으며, 루이비통 또한 이례적으로 성수동에서 팝업 진행, 국내 스텝진과 함께한 서울 컬렉션에 이어 팝업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있어 비슷한 형태로 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오픈 초기 해당 스토어만을 위한 익스클루시브 제품, 패키징 등을 선보인 ‘구찌 가옥’
         (2) 구찌의 철학이 깃든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구찌’ 
         (3)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展

잠들었던 감각을 깨우는

뷰티 브랜드의 체험형 아카이브

명품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이용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유대관계를 지속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시각 외적 요소가 브랜드 가치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뷰티 브랜드들은 제품의 진정성을 전하고 제품력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으로 플래그십을 활용합니다. 

프랑스의 니치 향수 브랜드 딥티크는 최초엔 세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편집숍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가로수길에 오픈한 딥티크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는 편집숍이었던 시절의 딥티크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유럽의 가정집을 옮겨 놓은 듯한 매장은 전 세계에 운영 중인 단독 매장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국내 실내 공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나선형의 와이드 한 계단은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촬영하고 SNS에 업로드해 공간을 방문했다는 인증으로 바이럴을 불러일으키는 시그니처 스폿입니다. 인원을 많이 배치한 시향 테이블에서는 방문객이 다양한 제품을 자유롭게 보고 1:1 큐레이팅에 가까운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품 판매에 집중하는 일반 매장에서 구매할 제품에 한정해 눈치를 보며 시향을 요청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하는 쇼핑과는 전혀 다른 경험적 가치를 선사합니다. 적재적소에 비치된 딥티크의 제품은 누구의 집이던 꼭 그렇게 있어야 할 것처럼 정확하게 자리 잡고 있어 브랜드에 대한 특별한 선호 없이 공간에 방문한 이들에게도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스토어 자체가 소비자의 경험 집중하기 때문에 구매에 대한 강제성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제대로 갖춰진 공간에서 그에 맞는 응대를 받은 방문객들은 공간을 경험했다는 증표로 제품을 구매합니다. 

최근 북촌에 오픈한 설화수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돋보이는 북촌이라는 지역적 특성은 브랜드가 이어온 아름다움을 향한 설화수의 여정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느껴집니다. ‘Beauty from Culture’라는 문화 메세나(mecenat) 활동을 이어온 설화수의 브랜드 철학과 이를 반영해온 브랜드의 역사는 변화하는 서울에서 전통을 지키면서도 중심이 되어온 북촌과 닮아 있습니다. 다양한 콘셉트의 뷰티 브랜드들이 지속적으로 론칭되고 있는 요즘, 설화수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신생 브랜드들이 가질 수 없는 설화수만의 품격과 오랜 시간 브랜드와 소비자가 쌓아온 신뢰성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한옥 구조물 안에는 제품의 역사에 대한 전시를, 양옥 공간에는 제품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라운지로 구성된 플래그십 스토어는 다소 올드했던 브랜드 이미지는 타파하되 뷰티 브랜드로서 오랜 기간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브랜드의 제품력과 퀄리티는 유지하는 현명한 전략을 펼쳤습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전할 수 있다면 때론 그것이 꼭 플래그십이라는 공간에만 머물며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르 라보의 팝업스토어 ‘르 라보 온 휠’은 부티크를 통째로 실은 트럭에 브랜드의 이념도 함께 담아 지역 곳곳을 여행합니다. 트럭은 르 라보의 철학과 닮은 종로 계동에 첫 터를 잡고 이들이 손으로 직접 꽃을 따고, 조향을 해 온 과정과 같이 사람들과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악수를 나누며 향을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트럭 안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브랜드가 나를 찾아오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런 경험은 브랜드와 내가 결속력 있게 이어져 긴밀한 관계 형성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1) 딥티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구현된 플래그십 스토어 ‘딥티크 가로수길’
         (2) 설화수의 역사와 철학을 아카이빙한 ‘설화수 북촌 스토어’

브랜드의 아카이브가 모인 공간 '플래그십 스토어'는 위치 선정에 있어서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곳을 택합니다. 그래서인지 정신없이 분주하고 역동적인 강남 상권 안에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진 도산공원 일대는 많은 유동인구, 높은 접근성과 함께 감도를 겸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많은 브랜드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나이를 막론하고 누가 방문해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이자 한동안 잠잠했던 상권이 최근 몇 년간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며 이곳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들에도 활기를 찾아주고 있습니다. 이미 니츠에서도 소개했던 하우스 도산, 메종 사우스케이프, 스킨푸드 도산 외에도 이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양한 플래그십스토어들을 둘러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