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승인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가장 큰 문제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상병수당이 없습니다. 질병치료기간 동안 치료비와 임금을 받는 방법은 산재승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은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산재신청 이후 승인까지의 기간이 길수록 노동자들의 불안은 증가하고, 만약 불승인이 된다면 손해는 커집니다. 이것이 노동계가 산재승인까지의 기간단축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산재 결정까지의 기간이 길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현장조사에 소요되는 기간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개선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우선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부담작업으로 파악된 직종에 대해 현장조사를 생략하는 것입니다.
추정의 원칙은 무엇인가?
추정의 원칙은 산재신청부터 승인까지의 기간을 단축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추정의 원칙은 이미 부담작업을 수행하는 직종을 정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소의 용접과 취부 혹은 건설의 형틀목공과 같은 직종은 작업자세, 중량물 취급유무 등 근골격계 부담요인이 회사마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업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현장조사를 생략하여 신청기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추정의 원칙 = 인정기준?
한편 경총과 일부 전문가들은 추정의 원칙을 인정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재승인율이 증가한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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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인정기준? 현장조사 생략기준?
추정의 원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당시, 당연인정기준이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초반에는 실제 추정의 원칙에 포함된 직종은 질판위를 거치지 않고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도도입 과정에서 당연인정기준이 아니라 현장조사 생략기준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따라서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판위의 판정을 거쳐서 승인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추정의 원칙이란 용어보다는 신속처리규정으로 용어변경을 추진 중입니다.
역학적 근거는 직종별이 아니라 부담요인별로 만들어져
"직종 및 작업별로 구체적인 역학적 연구결과도 없이 직종을 중심으로 인정기준을 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직종과 작업에 대해 질병과 부담요인의 관련성을 파악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입니다. 그 동안의 근골격계 질환 연구는 신체부위별 부담요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1998년 NIOSH 연구 등이 있으며, 예를 들어 허리의 경우 전신진동, 자세요인, 중량물취급, 무릎은 쪼그려 앉기, 중량물 취급 등의 요인 등이 작업부담요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이러한 축적된 역학연구결과에 기반하여 관련성을 판정하고 있습니다.
추정의 원칙은 질판위 전문가들의 합의된 결과를 반영
어떤 직종에서 승인율이 80-90% 이상이라면 질판위 전문가들이 그 직종의 부담요인이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즉 추정의 원칙 대상 직종은 질판위의 전문가들이 근골격계 부담업무로 판단한 직종이란 의미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추정의 원칙 적용 시 승인율은 99%이므로 이것이 사실상 인정기준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도 그 직종의 승인율은 이미 90-100%을 보여줍니다.
추정의 원칙적용으로 산재판정이 부실해질까?
지난 오이레터 18호 <업무상 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에서 산재판정의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면 현장조사만 생략하는 것일 뿐, 기본 조사는 모두 이루어집니다. 재해자 및 회사의 서면응답을 통해 작업내용, 노출기간, 생산량 등 작업관련 문진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용접공이면 자동용접인지, 수동용접인지가 구분이 되며, 노출기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정의 원칙 대상직종은 기본적으로 인간공학적 부담요인이 확인된 직종이며, 회사마다 작업형태의 차이가 별로 없는 직종만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제조업은 적용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현재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직종은 총 66개에 불과합니다. 또한 회사의 반론권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산재신청 증가는 노무사와 병원의 카르텔 때문일까?
노무사와 병원의 카르텔로 근골격계 산재신청이 증가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재신청이 증가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최근 산재신청의 증가는 모든 질환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산재보험가입자수가 최근 10년 사이에 5백만명 가까이 증가하여 2000만명에 이르고 있고, 최근 5년 동안 신체부위에 따라서는 70% 이상의 높은 승인율을 유지했던 것도 증가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다만 업무관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승인이 되는 것이 문제일텐데, 만일 이런 문제가 생긴다면 추정의 원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질판위의 판정의 타당성과 신뢰성의 차원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 과도한 수술이나 치료 이후 재활의 부적절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추정의 원칙 적용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여서 다른 차원의 해법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추정의 원칙이 덜 적용되는 것이 문제
2021년 산재자료에서 근골격계 신청자 14,000건 중 추정의 원칙 대상은 330여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주요 원인은 단일 상병으로 신청된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회전근개 파열로만 신청하면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충돌증후군이나 이두박건염과 같은 부상병이 붙으면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위 상병들은 대부분 같은 기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오히려 복합상병 시에도 적용되도록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추정의 원칙 도입의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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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의 원칙은 전문성이 누적된 결과
현재 추정의 원칙이 사실상 인정기준인가? 아니면 현장조사 생략기준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추정의 원칙이 질판위 판정의 누적된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즉 다수의 전문가가 판단을 해도 추정의 원칙 대상 직종이 해당 부위의 부담작업, 그리고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그 동안 판정을 해온 결과를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장조사를 생략한다는 것이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문성이 누적된 결과를 반영한 것입니다.
글쓴이: 김영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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