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언의 일기

정부24에서 초중고 시절 생활기록부를 다시 볼 수 있다길래 다운 받아보았다. 다른 것보다도 내가 원한 진로와 엄마, 아빠가 원한 진로가 하나도 겹치지 않았던 게 눈에 들어왔다. ‘진로 희망' 칸에 나는 예술가나 천문학자 같은 직업을 써냈고(심지어 성악가도 있었다.) 부모님은 판사나 의사, 기자를 매해 돌아가며 썼다. 나는 수학은 못하지만 지구과학과 생물을 좋아하는, 사회는 싫어하지만 언어나 예체능은 좋아하는 아이로, 진로 앞에서는 몇몇 직업을 빼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대학교 때 이과, 문과를 막론하고 여러 전공을 기웃거렸다. 결론적으로는 저널리즘과 예술을 공부했다. 저널리즘 스쿨 안에서는 커뮤니케이션학, 광고 등 다양한 갈래의 트랙이 있었는데, 한 교수님이 ‘너는 외국인이라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오기로 기자 트랙에 다녔다. 예술 전공으로 공부를 할 수도, 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나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어서 둘 중 끝까지 하나를 택하지 못하고 엉성하게 발을 걸쳐놓은 채로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부터 좋은 기자가 될 자질이 부족했다. 좋은 기자가 되기에는 너무 내 목소리가 강했고 자기 구현의 욕구가 컸다. 그렇다고 좋은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에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내가 만들어 낸 세상의 그림이나 글인 것이 그때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하나를 쭉 파고들어 공부하기에는 곁눈질을 많이 하는데다 엉덩이가 가벼웠다.

일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앞으로 갈 길이 어딘지 감도 못 잡은 채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취업 준비 생활을 했다. 그 시간은 뻔하게 괴로우면서도 부정할 수 없이 좋았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생산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우습게도 마음만큼은 부지런히 농사 짓는 사람처럼 보람됐다.

매일 아침 4개의 신문을 돌려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구경했고, 스터디원들과 강남역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오후에는 글을 썼다. 때때로 번역 알바나 과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걸었다. 가끔은 TV쇼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이런 걸 만들게 되는 건가 싶어서 기획안을 썼다. (내 기획안은 나한테만 재밌었다.) 이 시기, 꽉 채워 살고 있다는 느낌은 어쩌면 지난한 진로 고민을 풀어갈 힌트였는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좋다. 명상하고, 생각을 골똘히 이어갈 때면 기분이 좋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쓸 때 기분이 좋다. 글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써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내밀한 이야기를 눈을 마주치고 직접 듣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두 번, 세 번, 네 번을 앉은 자리에서 계속 듣고 또 들어도 좋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이 혈색이 좋아져서 자리를 떠나면 기분이 좋다. 이때의 기분 좋음은 감각적인 즐거움이라기보다, 꽤 괜찮은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나에게 생산적인 하루는 쓰고, 듣고, 명상하고, 걷는 날이다. 그런 하루들이 순서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도 좋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만 여겨질지 모를 이 일상이, 부디 반복되면 좋겠다. 반복되면서도 변주되는 것이 성향에 잘 맞다. 지금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더 덜어낼 수만 있다면 더 덜어내고 간결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의 업이 옷이라면(왜 이런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옷은 제일 비싼 옷도, 리셀이 될만한 옷도, 남들이 선망하는 브랜드의 옷도 아니다. 확실한 건 내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옷이라는 거다. 처음부터 이 옷이 내 옷인지 알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 어울리는 불편한 옷을 이것저것 입다보니 이제서야 이게 나한테 맞는 옷이라는 걸 알 것 같다. 불안하지만 자유롭고, 함께이면서도 충분히 혼자일 수 있다. 사람들과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좋고, 그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다. 그걸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고, 글을 쓸 수 있어서, 글을 쓸 소재가 있어서 좋다. 좋은 일을 만났다.


꿈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 선명한 꿈을 꾸게 되면 한동안은 그 꿈을 붙들고 산다. 영화관에 갔는데 내 자리만 없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조금도 공간이 없고, 버스를 타려는데 탈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종일 기다리는 꿈이었다. 사회에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였고, 내가 설 자리는 생활기록부의 네모반듯한 진로 희망 칸처럼 좁아 보였다. 그 칸에 꾸역꾸역 나를 밀어 넣기 위해서는 손에 쥔 것들을 거의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버리기엔 내게 너무 소중한 것들이어서 차라리 나를 버리지 싶었다.

"일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지마." "직장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지마."

그 네모 칸은 어느 아이에게나--저런 말을 나르는 어른들에게도--너무 비좁은 지도 모른다. 20대에도, 30대에도, 어쩌면 그 이후에도 '진로 희망' 칸 앞에서 고민은 이어진다. 그 칸에 무언가를 써내기 위해 나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거나 ‘그런 고민은 사치’라며 스스로 내려놓을 것을 강요하는 일은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네모칸이 너무 좁을 때는 조금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그 칸을 채우기 위해서 수많은 직업 리스트를 뒤져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면, 네모 칸에 '뒷장'이라고 쓴 뒤 뒷장에 긴 글로 풀어쓰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일에 이름을 달아 네모칸을 채우는 건 마지막에서야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절하고 맛있는 연희동 커피집. 개인적으로는 라떼나 아인슈페너가 참 맛있다. 주중 오전-오후 시간을 잘 노리면 간단한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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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일기장, 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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