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작은 차이와 한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전체의 균형이 있습니다. 손에 쥐어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두께와 무게, 앉고 서고 머물며 조금씩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높이와 기울기, 매일 지나다니며 바뀌는 경관과 사물에 의해 조금씩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작은 테이블에 맞붙을 수 있는 이마의 숫자와 길의 높음과 낮음을 배려하며 가로지르는 동선, 한 사람의 생활이 다른 사람의 생활에 닿을 수 있는 크기를 고려한 접점도 있습니다. 디자인에서 말하는 휴먼스케일은 흔히 사람의 몸과 활동에 맞는 크기를 뜻합니다. 너무 빠르지 않으려면, 너무 크지 않으려면. 만져볼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것. 어쩐지 귀해지고 있는 이 미묘함과 측정할 수 있는 것 너머에 펼쳐지는 너른 상상력의 스케일을 커다란 '구'처럼 이고 지고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측정과 진단'에 열을 올리며 새 계절에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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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ppertronics by Robert Fripp, October 5th, 1979, on NBC’s late-night music series 'The Midnight Special'
거창한 결과를 미리 설계하지 않는 방식으로써. 발생하는 소리의 쌓여감을 추적하며 듣는 와중에 변하지 않는 코드의 돌아옴. 곡을 연주하며 도래하는 미묘한 변화와 변함없는 우아함, 이 '되어가는 과정'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모른다는 말' 이 지닌 힘에 대해서. (위 소스의 1979년 TV 속 Fripp의 당시 시공간의 음악에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EGS 110. Let The Power F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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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마지막 호로부터 한 해가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개인적으로는 작년 하반기로부터 시작된 여러가지 일들이 하나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공부방을 도모하기 시작하면서,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 이미 수많은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각성이 있었는데, 주로 공예/ 기술/ 또는 물질에 대한 것이었어요. 특정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지식이 물질의 형태로 드러나는 일, 시간·몸·재료·지식·관계가 한 물질 안에 함께 축적되는 일로써 말이죠. 공예가 특별하고, 때로 신성하게 느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소박한 예쁜 우주론같은 공예론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만듦으로써 추상적인 지식을 구체적인 세계와 다시 만나게 하니까요.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이 손을 거치고, 재료를 만나고, 실패하고, 기다리고, 때로 도망치고, 다시 고쳐지는 동안 비로소 살아 있는 지식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공예작은 하나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지식이 물질 안에 머무는 방식이 아닌가. 무한히 공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우월성(심미적인 공명감을 포함하여) 역시 더 정교하거나 더 희귀한 물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를 알고 다루는 보다 깊고 구체적인 지식의 형태로서의 우월성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애호하는 작가의 궤적을 좇아 나가는 일 안에 구름 낀 하늘을 걷어내며, 때로 물을 튀겨내는 듯한 생생한 즐거움이 늘 함께합니다. 추상적인 것, 흐린 앎을 손에 쥘 수 있으며 몸을 기댈 수 있는 형태의 산물로 세계에 돌려보내는 이 부드러운 연금술이 선사하는 기쁨을 좋은 접점으로부터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더하여, 회사 다니는 사람으로써의 일상(아라비에서는 신규 의류 레이블 런칭과 리뉴얼로부터 식음 브랜드공간 런칭과 리뉴얼, 아이덴티티를 이어가는 크리스마스 키비주얼 제작 등 그리고 쓰고 만드는 일들이 내내 이어지는 중 -- 서울의 각 영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들과 일하느라 실재 아주 먼 은유처럼 보이는 시각물에도 응집된 정보가 많답니다.) 도 시간표가 꽤나 번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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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éopold Poiré, Portrait des frères Mougin, céramistes, vers 1907 (c) Palais des ducs de Lorraine - Musée lorrain
최근 계속된 연결로 간신히 알게 된 무쟁 형제의 사진. 19세기 말~20세기 초 낭시파의 두 '법사 法師(“sorcier du grand feu”)'의 고온의 불, 대상을 만들어내는 힘이 응축된 디자인 언어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난폭하면서 우아한 느낌이랄까요. 작자가 그 지향성이 충분히 공격적이며, 또 과정 중의 무자비한 시련을 넘나들때에, 제대로 된 행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져 제대로의 결과물이 생겨난다면 이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데 있지 않고, 어디까지 통제하고 어디서부터 맡길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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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와 나이아드가 객체표현이 아닌 움직임으로 결합한 피쳐. 헤쳐나가는 것인지 끌어당기는 것인지, 참을성을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
에르네스트 뷔시에르(Ernest Bussière)의 조형 모델을 Mougin 형제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솔리플로르 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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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조셉과 그의 물레공 중 한 사람, 이 사진에 깃든 모든 정보를 힘껏 끌어모아, 당시의 스튜디오 시스템, 당시의 아틀리에 컬쳐, 일의 수주와 완납의 방식, 출품 그리고 전시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가 디자인한다 → 직원이 제작한다 라는 단순한 위계와는 조금 많이 다릅니다. <directeur artistique + directeur d’atelier + éditeur + céramiste>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숙련공이란 중추는 얼마나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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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루베 Victor Prouvé 의 동판화 연작 중 눈에 독이 오르게 하는 탈곡의 일터, 보고있으면 마음이 요동치는. |
Designer of Mougin’s advertising materials - 이런 작가 작업실에서의 아뜰리에 판매전. 최소 20여명은 족히 모여서 불을 피웠다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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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절기에 들어서며 시작된 감기가 꽤나 독해서, 요즘은 집에서 목을 스카프로 촘촘히 칭칭 감고 지냅니다.
아트위크의 즐거운 자리에서 들숨과 날숨이 있는 귀여운 코마이누를 만났습니다. 입을 벌린 것과 다문 것, 아와 운의 호흡을 불어넣은 조각에 대해 설명하는 작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깐 몸에 들어온 불이 색이 되어 빠져나오는 것 같은 환영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내내 감기 기운으로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이것이 쌍화탕과 와인이 만나 벌이는 일인가 싶어 물질적으로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항상 좋은 잠을 이어나가시길. 제철의 재료들로부터 생기 가득한 식사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2026년 9월 13일, 이혜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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