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호에서 다룰 영화는 <마지막 황제>(1988)입니다.

황제에서 시민으로,

<마지막 황제>

 
#중국사 #현대사 #푸이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사적인 영화관의 에디터 챙구입니다. 지난 2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난 주가 유독 시간이 가지 않아 괴로웠는데, 어느새 벌써 11월 16일이 되었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더 빨라질 인생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의미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려고요.

 

바로 어제 날짜였죠, 11월 15일에 황제로 즉위하여 3년 만에 퇴위한 뒤 시민의 삶을 산 사람이 있는데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입니다. 그가 겪은 삶의 속도는 변화된 지위만큼이나 격렬했을지, 급변하는 당대 세상사만큼이나 빨랐을지 궁금해지네요. 오늘은 그래서 푸이의 삶을 다룬 영화 <마지막 황제>(1988)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마지막 황제> (1988)
  •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출연 : 존 론, 조안 첸 등
  • 장르 : 시대극, 드라마
  • 러닝 타임 : 2시간 43분
  • 스트리밍 : 시리즈온 (1,000원)
  • 수상 : 제60회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수상
  • 원작 : 선통제 푸이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
  • 관람객 평점 ⭐9.24

<마지막 황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9개 부문에서 수상한 손꼽히는 명작입니다. 푸이의 유년 시절부터 신해혁명,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에서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이번 레터에서는 중국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영화에 그려진 푸이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오늘의 이야기

  1. 중국 현대사의 흐름
  2. 마지막 황제
  3. 또 다시 황제로

중국 현대사의 흐름


푸이의 삶에 대해 알아보기 이전에, 당시 중국의 흐름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19세기 말 청나라는 1, 2차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근대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세계의 급물살에 청나라 황실은 발맞추지 못했습니다. 중국 3대 악녀로 유명한 서태후가 황실을 장악하여 사치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급변하는 세상사가 두려웠던 것일까요? 이런 서태후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서신정을 단행하여 당시 황제였던 광서제와 함께 개혁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청 왕조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명목상 개혁에 불과했고, 광서제와 서태후도 갑자기 사망하면서 실패에 그쳤어요. 이후 중국에는 혁명의 분위기가 대두되었고, 신해혁명이 발발하여 청 왕조는 1912년, 역사의 길로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황제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마지막을 보낸 사람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인 ‘푸이’였어요. 푸이는 광서제의 사망으로, 다음날 서태후에 의해 자금성으로 입궁하는데요. 서태후도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3살의 나이로 황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영화에 나오는 푸이의 모습은 용상에 비해 턱없이 작아, 그가 얼마나 어린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즉위식에서도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드넓은 자금성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기만 한 모습을 보여주죠.

앞서 말한 것처럼, 신해혁명이 발발하면서 청나라가 멸망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푸이는 즉위한 지 3년 만에 황제의 지위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푸이는 자금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당장 자리를 잃지는 않았는데요. 신해혁명으로 세워진 중화민국이 청나라 황실의 예전 대우를 약속했기에, 자금성의 소유자로서 성 내부에서 황제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실권을 잃은 자리만 존재하는 황제라는 데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지만요.

그런데 어린 푸이는 황제의 지위를 잃은 후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어요. 성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에 바깥세상의 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에요.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그녀를 만나러 갈 수 없을 정도로, 푸이는 그저 궁궐 안 어린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청나라의 황제였으나, 현실적으로 그는 자신이 사는 공간의 문조차 열지 못하는 신세였던 것이죠.

 

이렇게 자금성 안의 황제로 살던 그는 바깥세상의 일과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청나라의 문화를 개혁해보려고 하는 등 자신만의 꿈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1927년에 중국의 군벌들이 만주에 있는 자신의 무덤을 파헤쳤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 정부에 격노하여 일본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또 다시 황제로


당시 일본은 조선을 넘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요.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동쪽을 점령한 뒤, 1932년에는 ‘만주국’을 세웁니다. 만주국은 사실상 이름만 존재하는 국가였고,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꼭두각시로서 자주권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아무리 꼭두각시 정부라 한들, 국가의 수장은 있어야겠죠? 그게 바로 푸이였습니다.

푸이는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한 뒤 독립국으로서 일제와 동등함을 주장하고, 이런저런 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황제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제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난 황후를 잡지도 못할 정도로, 자금성 문을 열지 못하는 황제였던 그는, 여전히 만주국 궁궐의 문을 열지 못하는 명목상 존재하는 황제였습니다.

이렇게 청 황실에, 그리고 일제에 이용당하며 삶을 살던 그는 일제가 패망한 뒤 소련군에게 붙잡히면서 전범으로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출소한 뒤에는 평범한 시민으로 삶을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다사다난한 푸이의 삶은 일본 영화 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으로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는데요. 곳곳에 사용된 그의 음악은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합니다. 특히나 후궁이 푸이를 떠나는 장면에 사용된 곡 ‘Rain’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받는 명곡입니다. 예전에 <남한산성>을 소개해드렸을 때, 해당 작품의 음악감독이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를 설명하면서 짧게 언급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또, 자금성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만큼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영화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과 배경 이미지를 위주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부쩍 추워졌습니다. 언제나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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