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하와이


2021년 7월 23일 
이 세상을 밝게 빛내는 라이터(lighter)들에게 보내는
스물세 번째 편지

책만 보는 바보  

 날씨 머선 일이고. 님도 하늘에 펼쳐진 쌍무지개 다리를 보셨나요? 요즘 계속 폭염주의보와 폭우로 습한 날씨입니다. 기운이 빠지는 더위 속에 잠깐의 바람처럼 쌍무지개가 떴어요. SNS와 카톡방에도 무지개가 한가득. 좋은 것을 발견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지잖아요. 오늘의 뉴스레터를 통해 소중한 님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속에 열정과 기쁨이 차오르는 일입니다. 에디터들도 친구들과 함께 크고 작은 일을 벌였던 것이 기억나요. 팝송에 빠져서 친구들과 팝송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돌 그룹 덕질을 하다가 친구와 함께 트위터 계정을 운영한 적도 있죠. 다이어리를 매개로 삶의 목적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탐구해보는 모임도 있었어요. 무언가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 때 친구들의 우정은 더 끈끈해지고 공동체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꿈을 꾸게 됩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나의 벗들
 여기 공통의 관심사로 뭉친 조선의 친구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뉴스레터에 등장하기도 했던 '적는 아씨들'의 추천 책, <책만 보는 바보>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덕무의 시선으로 쓰인 이 소설은 마치 그의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아요. 읽다 보면 이야기 속 인물들과 시대를 초월한 만남을 가지게 된답니다.

🚨스포주의🚨
 이 책의 제목인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 看書痴)는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 이덕무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는데요. 조선 시대 서자 출신의 현실이 담겨 있기도 한 별명이었죠. 아무리 글을 많이 읽어도 과거 시험조차 볼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던 반쪽짜리 양반 이덕무. 그런 그와 함께 한 벗들도 신분 제도의 한계로 인해 품은 뜻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좌절 속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함께 꿈을 꾸던 벗들은 훗날 정조의 부름을 받게 된답니다. 그 과정 가운데 함께 울고 웃으며 격려하고 의지하는 이덕무와 벗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잔잔한 위로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사물뿐이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마음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울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박제가와 나처럼. 우리와 다른 벗들처럼. (p.75) 

 이덕무가 마음을 기울여 벗들을 바라본 탓일까요. 그가 묘사하는 벗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매력적입니다. 말할 때마다 꿈틀거리는 짙은 눈썹을 가진 불같은 성격의 박제가. 신분 제도의 한계 속에서도 언제나 밝은 기운으로 벗들을 유쾌하게 했던 유득공. 벗 중 유일하게 무예에 뜻을 두었던 다부지고 기운이 넘치는 백동수. 어린 나이지만 당당하고 총명했던 이서구. 나이도 성격도 생김새도 너무나 다른 그들이지만 마음에 품은 뜻과 책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달빛 아래 백탑에서 만나요  
 소설 속 백탑은 이덕무와 벗들에게 중요한 장소에요. 이덕무가 백탑 아래 동네로 이사한 뒤에 벗들과 스승들을 만났거든요. 백탑을 중심으로 벗들이 다 모여 읽고, 쓰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추억을 쌓아 갑니다. 훗날 '백탑 아래 맺은 맑은 인연을 기린다'는 뜻의 <백탑청연집>이라는 시문집도 펴내요.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들을 백탑파라 부르기도 하죠.

     나는 한동안 백탑을 홀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를 때에도, 탑을 바라보는 눈길만큼은 가끔씩 밤하늘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탑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을 차례로 백탑 가까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을까. (p.42)

     낮에는 아직도 여름 기운이 많이 남아 있는데, 밤이 되니 온통 가을이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계절을 담아 서늘하고, 높은 음계까지 올라가는 풀벌레 소리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시원스럽게 터져 나오는 우리의 웃음소리가 하늘까지 닿아, 별빛들도 함께 쟁그랑거렸다. (p. 146)  

님에게도 백탑과 같은 공간이 있나요? 전처럼 모임을 하기 어렵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는 이때 <책만 보는 바보>를 함께 읽으며 백탑 아래로 모여보는 건 어떨까요? 


 
"광이 나는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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