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여름의 맛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 초록취향 vol.16

- 여름의 맛

- 초록생활자 : 생명과 삶을 일구는 텃밭공동체, 고양찬우물농장 대표 이상린 농부

- 여름의 할 일

- ㅊㄹㅊㅎ action

🍏 여름의 맛

어느 계절을 좋아하세요?

날씨에 민감하면서도 늘 밖으로 나다니며 에너지를 채우는 저의 대답은 오래도록 한결같이 가을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며 온갖 생명들이 움트는 연둣빛 봄도 좋아졌지만, 질색하는 겨울 만큼이나 여름은 늘 논외의 계절이었습니다. 아스팔트의 숨 막히는 열기, 지하철과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과는 친할래야 친해질 수 없었으니까요. 여름이면 주말을 핑계로 여름휴가를 기회로 어떻게든 도시를 벗어나려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기어코, 마침내. 도시를 떠나와 맞이한 네번째 여름. 이토록 여름이 좋아질 줄 몰랐습니다.

울울창창한 산과 숲이 머금은 싱그러운 향기. 여름의 열기로 불끈 달아오르는 바다. 물, 바람, 햇빛, 땅의 영양분만으로도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와 꽃들이 더 생생하게 반짝입니다. 장맛비가 쏟아져 내리는 날에는 걱정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가물었던 대지의 생명들이 흠뻑 비를 맞으며 기뻐하는 모습도 상상해봅니다. 풀 벤 자리, 퍼져나가는 초록의 짙은 풀내음에 마음이 저릿저릿해지는 건 왜일까요.

자그마한 생명들에도 자꾸만 눈이 갑니다. 벌과 나비의 흥겨운 춤을 감상하고, 손톱만한 연둣빛 청개구리의 뜀박질도 훔쳐보고요. 어릴 땐 무섭기만 하던, 사마귀의 세모난 얼굴과 초록의 몸뚱이는 어쩜 이리도 깜찍한가요. 시스루 드레스 마냥 투명하게 비치는 매미 허울에도 오래도록 눈과 마음이 머뭅니다. 애벌레로 땅 속에서 몇 년을 지내다 땅 위로 올라와 겨우 한 달 남짓, 뜨겁게 살다가는 매미. 너의 한 철이 여름이서 다행이라고. 그 짧은 순간에도 맴맴_ 울어가며 부지런히 짝을 찾는 네가 나보다 낫다고 혼잣말도 해봅니다.

하룻밤 새 쑥쑥 자라나는 바질을 돌보며 잘 먹어줄 방법을 궁리합니다. 탱글탱글 영글은 옥수수, 감자, 복숭아를 부지런히 먹으며 "제철과일이 최고고, 제철음식이 약이야." 라던 엄마의 말을 떠올립니다. 엄마의 손맛을 더듬으며 무쳐내는 가지무침은 언제쯤에나 그 때 그 맛이 나려나요.

하루가 멀게 창밖의 노을을 기다립니다. 습기 가득 머금은 하늘이 분홍빛으로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순식간에 내려앉은 해. 그 뒤로 푸르게 번져가는 여름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볼을 스치고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들려옵니다.

생생한 여름을 지나는 중입니다.

🍏 초록생활자 - 생명과 삶을 일구는 텃밭공동체, 고양찬우물농장 대표 이상린 농부

Q. 안녕하세요. 구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생명을 일구는 텃밭공동체, 고양찬우물농장 이상린 농부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농사로는 벌써 반이 지나 가을이 오고 있네요. 거듭 반갑습니다.

Q. 고양찬우물농장, 농장의 이름이 예쁘네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찬우물’은 옛 마을의 이름입니다. 지하철 3호선 화정역의 ‘화정(花井)’은 옛 마을 ‘꽃물골(화수,花水)’과 ‘찬우물말(냉정,冷井)’에서 한 글자씩 따온 명칭이지요. 찬우물말은 제 고향이기도 합니다. 농장의 정확한 지명은 아니지만 인근 마을이었기에 찬우물로 정했습니다.

Q. 도시텃밭을 나눔, 분양하여 함께 운영하는 텃밭공동체를 운영 중이세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농대를 나왔지만 농부의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10여 년 전,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도시농업운동이 한창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한 도시농부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도심 인근에 민간시민농장을 운영해보자 결심하게 되었죠. 부모님의 소유로 다른 친척에게 임차하고 있었던 공간이 있었기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Q. 텃밭공동체에서는 주로 어떤 분들이 농사를 지으시나요? 초보 농부도 가능한가요?

A. 인근의 지역주민들 약 180여 가구와 도시농업 활동가들, 생협 활동 이웃들 등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초보 농부님도 쉽게 참여할 수 있으세요.

Q. 다품종 소량농사를 짓고 계세요. 주로 어떤 작물들을 재배하나요?

A. 도심 인근에 시민농장을 연 건, 농사를 통해 도심의 먹거리 자급이 가능한가를 실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0여 년의 실험을 통해, 지금은 약 100가지 전후의 작물을 재배하게 되었어요. 다품종 소농은 단위 면적 당 경작효율이 높고, 하나의 작물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작물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어서, 요즘 시대의 농사에 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농부분들 각자의 기호와 실력에 맞춰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고요. 초보농부분들에게는 신규회원 봄농사학교교육에서 몇 가지 작물을 추천해드리기도 합니다.

Q. 계절별로 어떤 작업들을 하시나요?

A. 겨울 농한기 때는 공부와 여행 그리고 몸살림 운동을 주로 하고요. 봄에는 천천히 기운을 모으며 농사를 시작합니다. 여름이 되면 분주하게 움직이며 열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더위의 절정엔 잠시 쉬어가기도 하죠. 가을이 되면 김장농사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갈무리한 작물들로 겨울을 납니다.

Q. 올해도 가뭄으로 고생이 많으셨다고요. 기후변화로 사계절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는데, 농부님은 어떻게 체감하고 계시나요?

A. 기후변화는 농업에 있어 당면한 과제이자, 가장 취약한 현장입니다. 농부들은 악조건의 노동강도를 요구받고 있지요. 봄가뭄은 이제 해마다 예상하며 반복해서 준비하게 되는 것 같네요. 지역의 지하수 수량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유한한 자원이니까요. 극단적인 가뭄이 아니면 대개는 노지농사를 통해 최소한으로 관여하며 하늘의 뜻에 맡기고 있습니다. 가물면 가문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잘되는 작물들이 있으니까요. 가령, 가물면 고추와 토마토가 대박이고요. 비가 많으면 토란, 오크라, 공심채, 오이가 잘 자랍니다. 모든 작물은 아니더라도 어느 한 작물은 기어코 풍년의 기쁨을 줍니다. 소농, 소량다품종 농업은 취약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이전의 소규모 지역전통농업을 복원하는 방식이지요.

Q. 하나의 텃밭 안에서 여러 농부님이 함께 농사를 짓다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들이 부딪히는 일들도 있을 것 같아요.

A. 이견은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죠. 차이는 운동과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공동체가 성장하며 분해되고 결합하는 과정들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텃밭공동체 내 관계 형성을 위한 믿음과 신뢰를 쌓기 위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로 배우는 위치가 되면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게 되니까요. 신규회원들의 첫 만남은 농사학교에서 출발합니다. 배움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내려놓으며 시작하기에 갈등은 적은 편입니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들은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농한기 세미나 등 현안의 고민을 담은 배움의 자리들을 마련하며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Q. 대서도 지나 여름의 끝에 와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작물들을 수확하시나요?

A. '큰더위'라는 대서는 한여름의 가장 마지막 절기로, 장마 후 습기까지 더해 더위가 절정에 이릅니다. 이때는 농부도 태양을 지혜롭게 피하며 일합니다. 30도가 넘는 날에는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쉬다가 해가 질 무렵에는 보통 수확에 집중합니다. 요즘은 하지감자, 가지, 옥수수, 토마토, 호박잎, 공심채, 근대, 단호박 같은 작물을 수확합니다.

Q. 농부님이 최고로 꼽으시는 ‘여름의 맛’은 무엇인가요?

A. 여름은 '화' 기운이지만 절정의 여름은 오행 상 '토' 기운으로 오행오미(五行五味) 중 단맛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다들 단맛에 길들여져 사계절 내내 단 것을 즐기지만 일 년 중 단맛을 가장 제대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때는 여름입니다. 흔히 먹는 토마토, 수박 이외에도 다양한 여름 제철의 과일과 채소들의 진정한 단맛을 음미해보셨으면 합니다.

가을로 향하며 농부는 단맛을 넘어 몸이 원하는 매운맛을 준비하게 됩니다. 알싸하고 맵싸한 무와 배추를 재배하며 제철에 맞는 농사를 짓는 것이 농부의 일입니다.

Q. 농부만이 경험하고 가질 수 있는 혜택, 특권이 있다면요?

A. 농부가 특권층은 아니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특권이라면 특권이랄까요. 농업은 정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한 결과를 얻는 일, 이를 매번 경험하는 일은 땅을 대하는 농부만의 특권인 듯합니다.

Q. 고객분들을 채소이웃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정말 정겨운 이름입니다. 동네 채소장터를 돌며 작물을 팔고 계세요. 유통 과정 없이, 수확한 작물을 직접 소비하는 채소이웃들을 대면하는 즐거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A. 채소이웃은 돈을 내고 농산물을 사는 소비 방식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보려는 언어입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제 생각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시고,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농업의 전 과정에 동참해주고 계신거라 생각해요. 채소이웃들 덕분에 저 역시 작물 수확에 그치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까지 더불어 고민하며, 다양한 장터에 나가 연장된 기회와 경험을 얻고 있습니다.

Q. 재배한 작물을 팔기도 하시지만, 직접 드시기도 하시죠?

A. 농사를 지으며 정작 자신이 먹지 못한다면 ‘자기소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효율적인 분업을 통해 생산력을 키우는 자본의 방식은 농부조차도 자신의 먹거리를 마트에서 살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농업이라는 긴 역사를 돌아볼 때, 이러한 자본의 방식은 최근의 특별한 경우이고요. 대부분의 시간은 자급을 중심으로 한 농업이 기초였습니다. 이것이 도시농업이 복원하고자 하는 도심 속 자급농사 텃밭자급의 출발일 듯합니다.

Q. 고양찬우물농장만의 운영철학,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A. 도심에서 최소한의 텃밭을 재배하는 삶이 일상이 되고, 자연과 생명, 현장의 이웃들로부터 배움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농장만의 특별함이라기 보다는 텃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당연한 것들이지요. 농사의 원칙이라고 한다면 3무농법으로 농약과 화학비료, 검은 비닐멀칭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Q. 농사를 지으며 가장 즐겁고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A. 최근에야 조금씩 느끼고 있는데요.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웃들, 그리고 자신의 분신 같은 농산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들이 계속 연결될 때, 하나 같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Q. 인생의 마지막 날, 단 하나의 작물을 수확하고 먹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하시겠어요?

A. 그날이 온다면, 여름이면 과일이겠고. 가을이면 무, 배추이겠고요. 겨울이면 시금치된장국, 봄이면 냉잇국을 먹어야겠네요! ㅎㅎㅎ

Q. 텃밭농사를 통해 배운 자연의 섭리, 삶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A. 자연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시작 후 최고의 한계에 도달하면 하강을 시작하고, 쉼을 통해 또 다른 출발을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죠. 자신의 한계를 알고서 분명한 때에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삶의 철학입니다.

Q. 초록취향 구독자분들에게 마지막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모두가 농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집에서, 작은 텃밭에서 뭐라도 심고 키워보셨으면 합니다. 먹거리뿐 아니라 화훼 정원수도 좋고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생명을 대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멀리 있는 대상이나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일상 안에서 ‘먹고 사는’ 의미를 발견하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 고양찬우물농장 인스타그램 / 블로그

🍏 여름의 할 일

🌽 도시텃밭, 도시농부 교육

> 각 지자체/기관에서 운영하는 도시텃밭/농부 교육을 들어보아요! 동네 구청/시청/도청에 문의

서울도시농업 :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도시농업 플랫폼. 텃밭분양, 학습과체험
서울시농업기술센터 : 2022 하반기 도시농업전문가 양성교육 교육생 모집
관악도시농업공원 : 8월 프로그램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과천도시농업지원센터, 부평도시농부학교, 김포도시농부학교 등
전국귀농운동본부 : 생태귀농학교, 소농학교, 청년귀농지원, 도시농부학교 등 다양한 교육 운영
농협창업농지원센터 : 청년농부사관학교
서울시 시민텃밭농장(주말농장) 리스트
농촌진흥청 : 생활원예(원예특작물, 텃밭가꾸기, 실내정원, 옥상정원, 치유농업, 공기정화식물, 오늘의 꽃 등) 관련 정보 제공

🍆 작은 농장들에서 수확한 싱싱한 제철 농작물!

> 동네 파머스 마켓, 장터를 방문해요.

- 서울

농부의 시장 : 서울시 운영 장터. 60여개 지자체 추천 농가 농산물. 마포구 DMC/여의도공원/만리동광장 내 운영. 하반기 9월 7일, 8일 개장 예정
농부시장 마르쉐@ :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관계/대화가 있는 시장. 서교동 채소시장, 인사동 농부시장, 성수동 작은시장
마들장 : 노원 에코센터에서 열리는 생태나눔장터
얼굴있는 농부시장 : 동대문 두타몰 광장에서 열리는 도심 속 식문화 공유마켓
강동 도토리장터 : 도시농부의 토요일 이야기가 있는 친환경 장터
우리농 명동보름장 : 명동 가톨릭회관 마당에서 열리는 생명공동체 우리농 장터
화들장 : 금천구 우리동네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밥상이 건강해지는 장터
서초장날 : 농수축산물 직거래 장터, 매달 마지막주 목,금 서초구청 광장 내 개장

- 서울 외 지역

🍅 로컬 그로서리 스토어

> 로컬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식료품점 & 마켓

- 서울

지구샵 그로서리점 : 포장 없는 제철농산물과 식료품 리필스테이션을 만나는 지구를 위한 식료품점. 비건 카페, 베이커리, 브런치 운영
슈퍼스티치 : 동네 생활밀착형 그로서리 마켓. 매월 마르쉐@ 채소시장, 비건을 위한 홀리마켓 등 행사/팝업 운영
큔 : 자연주의 발효카페. 매주 수요일, 고양찬우물농장/자란팜이 참여하는 작은 채소가게 오픈
흠마켓 : 판매가 어렵거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흠'있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식료품점이자 브런치 카페. 모든 과일과 채소를 1개씩 소량 구매 가능
보틀 앤 스쿱 :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숍. 유기농 먹거리를 소분 형태로 판매, 용기 지참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