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지는 우리의 욕심
원시시대에 생존을 위해 가졌던 욕구는 더 많은 사적 소유와 생산이 가능하게 된 농업혁명과 산업화를 거치며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욕구로 발전했고, 현대 사회에 이르러 우리의 욕구는 폭발하고 있어요. 옷장에 입을 옷이 가득하지만 매 계절 유행에 맞춰 새로운 옷을 구매하고,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과식을 하고, 쓰지 않을 수많은 물건들로 집을 꽉 채워놔요. 집은 안전하게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나의 성공을 보여주고 내 부를 증식시켜야 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렇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소유하고 소비하며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해요. 나보다 적게 가진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느끼고,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껴요.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단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혹은 그냥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사는 건 역시 쉽지 않다고 생각하죠.
얼마나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물론 욕심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욕심이 충족되면 잠깐의 만족을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욕심은 우리에게 불만족과 괴로움을 가져다줘요. 내가 원하던 것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때가 오면 비로소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달려가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다시 새로운 욕심이 생겨나고 도돌이표처럼 다시 결핍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거든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상으로는 행복감이 크게 증가하지 않고 물질적 소유가 주는 행복은 일시적이라고 이야기해요. 카너만 뿐 아니라 팀 카서, 줄리엣 쇼어, 마틴 샐리그만 등 다양한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공통적으로 물질적인 욕구의 충족은 진정한 만족으로 연결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죠.
더 갖고 싶다는 욕심이 우리 마음의 기본값이라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결핍의 굴레에서 불만족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더 가져야 만족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서 진짜 삶의 만족을 얻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걸까요?
소유적인 삶에서 존재적인 삶으로 건너가기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삶의 양식에 관해 이야기해요. 소유 지향적 삶이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에 기반한다면 존재 지향적 삶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실현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현재의 순간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데 초점을 맞춰요. 자본주의 사회는 소유 지향적 삶 만이 정답이라며 우리는 무한 경쟁과 비교로 몰고 가지만, 프롬은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존재 지향적 삶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원시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취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협동하며 관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좋은 도구와 옷을 가지고 있더라도 커다란 맹수의 습격이나 자연재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소유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다는 결핍에 시달릴 거예요. 그러니 진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면, 더 많이 갖기보다는 더 충만하게 존재하고 연결되는 걸 목표로 해 보세요. ‘더더더’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 만족이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옆에 있는 걸 그저 발견만 하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