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학개론 12강]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강초롱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초롱입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20세기 문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제게 문학은 집을 짓는 일이에요. 작가는 언어라는 철근 위에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요. 독자는 작가가 만든 집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자기만의 인테리어를 더하죠. 문학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집을 짓는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은 자신의 경험과 일상의 벽돌을 날카롭고 생생하게 쌓아 올린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습니다. '본인이 경험한 것만 쓴다'는 그는 독자들에게 어떤 집을 보여주고 싶었을까요? 여러분은 그 안에 어떤 인테리어를 꾸미고 싶으신가요?

2022 노벨 문학상의 의미와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90초 영상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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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재단이 설명한 노벨 문학상 의미 읽기(박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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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은 시대의 가치를 대표하거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에요. 하나의 작품에 주어지기보다 작가의 삶과 작품 전반에 의미를 부여하죠.

배신자의 두 가지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의 한 소도시에서 가난한 상공인의 딸로 태어났어요. 에르노의 부모님은 딸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고, 에르노가 학업을 지속할 수 있게 뒷바라지를 했죠. 덕분에 에르노는 엘리트 교육을 받게 됩니다. 에르노는 교양 있는 부모 밑에서 살아온 학교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깨달아요. 이때 부모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상스러운 그녀의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죠. 대학 졸업 후 에르노는 교수가 되어 신분 상승에 성공합니다. 그 순간 새로운 부끄러움이 찾아왔어요. 배신자로서의 부끄러움이에요. 그녀의 부모와 가난한 노동자 계층을 변절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죠. 에르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써 내려 가며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속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문학을 통해 다뤄진 적 없던 비주류의 삶을 조명합니다.



소설 버린 소설가?

현대 작가 중 에르노만큼 자신의 삶을 사실적으로 들여다보고 파헤친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화려한 문체와 기법을 좋아해서 사실적 표현 방식은 촌스럽다고 여기거든요. 에르노는 꿋꿋이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카데미가 그녀의 이런 용기에 주목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녀의 작품에는 어머니를 죽이려 한 아버지의 모습 <부끄러움>, 연하의 러시아인 유부남과의 불륜 <단순한 열정>, 불법 낙태를 한 작가 본인 <사건>, <빈 옷장>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에르노의 작품이 '자전적 이야기'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모습을 담기도 했어요.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노숙자, 손님에게 모욕당한 계산원의 이야기 <바깥 일기>, <바깥의 삶> 등 인간소외 현상을 다루죠.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사회적 자서전’이라 평가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그녀는 "나는 소설을 버렸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를 소설을 쓴 소설가로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죠.



내 이야기가 친구의 글에 등장한다면?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 새롭고 멋지죠. 그런데 여러분이 에르노의 친구라면 어떨까요? 저도 상상해 보았는데요. 기분이 조금 나쁠 것 같아요.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경험을 글에 담을 거잖아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 만난 친구가 작가로 등단했어요. 부푼 마음을 안고 친구의 첫 작품을 펼쳤죠.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제 이야기가 등장하더군요. 물어보지도 않고 제 이야기를 실었다는 게 기분이 나빴습니다. 방송작가인 다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가 "초롱아 세상 모든 작가는 잡놈 잡년이야. 너의 이야기를 언제든 글쓰기 소재로 삼을 준비가 되어있지! 나만 해도 초롱이가 미친 짓을 하면, 어라 이거 시트콤 소재로 써먹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걸"이라고 하더군요. 재밌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작가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개인 정보와 같은 법적 잣대든 사회적 시선이든 여러 이유로 검열하기 시작하면 작가는 쓸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일침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개인의 기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집단 소외의 경험을 꾸밈없이 날카롭게 드러냈다"며 에르노를 평했어요. 그런데 상을 받기 이전부터 에르노는 제게 최고의 작가였거든요. 에르노를 가볍다고 평가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이며 포장하는 모습을 보고 상이 주는 폭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상이라는 건 마치 공정한 평가를 통해 주는 것 같지만, 주는 사람들만의 논리가 있어요. 스웨덴 한림원은 그런 장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노벨 문학상도 순서가 있어요.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주는데 이번이 유럽권역, 그중에서도 프랑스 차례라는 설이 있었죠. 두 명의 프랑스 작가가 후보에 올랐고, 에르노에게 상이 돌아간 거죠.1) 그래서 저는 노벨 문학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문학을 향한 아니 에르노의 생각으로 오늘의 해설을 마칩니다.

“제게 문학은 싸움의 무기입니다” ― 아니 에르노

1) 2022 노벨 문학상 후보에 미셸 우엘벡과 아니 에르노가 후보에 올랐어요. 재미로 치면 우엘벡이 압도적입니다. 문제는 그의 작품이 인종 차별주적이면서도 성차별적인 내용을 가감 없이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엘벡이 실제로 인종 및 성차별주의자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의 작품에 열패감에 사로잡힌 현대 프랑스 백인 남성의 내면에 대한 자조 섞인 서술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엘벡이 약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는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하죠. 하지만 적어도 겉에서 볼 때 우엘벡이 약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여지가 있는 온갖 발언을 노골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이 점에 미루어, 스웨덴 한림원이 선택의 여지 없이 에르노의 수상을 결정했다는 게 학계 다수의 입장입니다.
오늘의 이론
자전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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