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한 부석에 무더위가 사그라지나 싶더니, 여름은 여름인 모양입니다. 무덥고 끈적이는 이 장마의 계절에 후원독자님도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한창 더위가 시작될 무렵, 아마도 3주 전인 것 같습니다. 장일호 기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선배, 후원독자 편지를 6월말까지 써주세요.”

‘부탁’의 기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없는 후배의 ‘명령’이었습니다만, 사실 편지를 써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 지난 3주 동안이나 뭉개고 있다가 이제야 펜을 들었습니다.

다시 인사드릴게요, 독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시사IN 사진팀 조남진 기자입니다. 3주 전까지 사진팀장 역할을 수행했고, 지금은 다시 취재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767호부터 822호까지 시사IN에 실린 사진 한 장 한 장 빠짐없이 챙기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지나가버렸네요.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은 했는데, 그동안 시사IN에 담긴 사진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온전히 평안을 찾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만, 사진기자로 일하다보니 눈을 감을 수 없고, 카메라를 들어야 하니 귀를 막을 손이 부족하네요. 요즘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로 님도 걱정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2011년 3월11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년도 더 지났네요. 당시만 해도 시사IN의 마감일이 금요일 이었습니다. 다음 날이 둘째아이 백일이어서 가족들이 한데 모여 제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평소보다 조금 빨리 퇴근하라는 팀장의 지시가 있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편집국 한 편에 걸려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영화 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초대형 쓰나미가 일본 해안가를 덮치는 생중계 영상이었습니다. 편집국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오던 중 팀장회의가 긴급하게 소집되었지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고 합니다만, 그때가 그랬습니다. 팀장회의 도중에 사진팀장이 뛰쳐나오더니 “조남진씨, 여권 있지?” “예, 있는데요...”

그때 그냥 만료되었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가방에 취재장비를 챙기고, 머리보호를 위해 헬멧까지 달아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출장가방을 본 적 없던 시골 부모님의 눈은 속일 수 있었겠지만 아내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아내에게 일요일에 울산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며 ‘대충’ 얼버무려 놓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나 일본 갔다 올게... 아이 백일은 알아서 해 줘...”

저를 배웅하던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보면서 서둘러 김포공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임지영 기자와 함께 가까스로 10시 출발 예정이던 후쿠시마행 아시아나 항공권을 구했습니다. 센다이에 거주한다던 한국인 남성의 도움으로 후쿠시마 공항에서 센다이 총영사관까지의 차편도 확보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비행기 출발시간을 기다리던 그때, 텔레비전 화면에서 생전 처음 보는 그 낫선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비행기가 출발하면 2시간도 안되어 착륙하게 될 후쿠시마 공항과 고작 50km 떨어진 해안가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상황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원자로가 연이어 폭발했고, 후쿠시마 행 항공기는 ‘지연’을 반복하다 결국 ‘취소’로 변경되고 말았습니다. 

12년전 일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요. 바로 대항기억(Flashbulb Memory)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격적인 대형 재난을 기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죠.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12년 전 폭발로 멜트다운 되었고, 녹아내린 원자로 노심을 냉각시키기 위해 12년째 물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는데 윤석열정부는 안전하다고 합니다. 세슘, 스트론튬, 아이오딘 등 삼중수소보다 더 강력한 방사성 핵종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염수 130만 톤을 방류한다는데도 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1년 내 핵무장이 가능”하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염원이 미국에 의해 막히자 결국 일본 방사능 오염수로 핵무장을 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 라고 했던가요?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향해서 대통령은 “선동, 조작, 가짜뉴스, 괴담”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12년 전, 우여곡절 끝에 동일본대지진 최대 피해지역 이었던 센다이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입니다. 100km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 방향에서 강력한 남서풍이 불어오고 있었지요. 가장 두려웠던 것은 가끔 흔들리던 땅 바닥이 아니라, 무색·무미·무취의 방사능에 얼마만큼 노출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님, 어쩌다보니 편지가 기행문으로 변하고 말았네요. 거짓이 난무하는 이 말장난 같은 시대를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늘 지지해 주시고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