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신학자 #84 상상력이 풍부한 플라톤은 잊으세요
#85 나는 부동의 원동자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86 어긋난 허벅지 관절
#87 제임스 패커,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하다
#88 장 칼뱅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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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편집자 B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속죄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 동안은 이 속죄에 관한 이야기가 기독교의 진리이자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속죄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속죄보다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찾게 되었고 인간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 신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슐라이어마허에 관해 알아보다가 문득 그가 보낸 편지의 글귀가 제 상황을 대변해 주는 듯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분의 죽음이 대리 속죄를 이루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제임스 패커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 때문입니다. 패커는 청교도 신학자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계속해서 ‘속죄’ 개념을 마음 한편에 두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죄에 관한 이야기만 할 수 없겠지만, 이 죄와 속죄에 관한 내용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오랜만에 이달의 신학자, 초심(?)으로 돌아와 독자님께 ‘제임스 패커’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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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이넬 패커James Innell Packer는 1926년 7월 22일 영국의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대서부 철도 사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마터면 역사책이 전혀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될 뻔했다. 7살 되던 해 어린 패커는 학교에서 자기를 쫓는 친구를 피해 학교 앞 복잡한 길로 뛰쳐나오다 그만 빵 배달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이 사고로 머리에 큰 손상을 입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눈에 보일 정도로 움푹 패인 자국이 남아 있다. 그 결과 소년들이 하는 놀이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고, 가뜩이나 내성적이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이 사고로 더욱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그 뒤 11살 생일에 대부분의 소년들이 받는 자전거가 아니라 타자기를 선물로 받았다. 금세 이 타자기는 그의 기쁨과 자랑이 되었고, 그 이후로 내내―심지어 컴퓨터 시대로 들어선 후에도―타자기로 작업을 하곤 했다.
패커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글로스터의 학교에서 옥스퍼드까지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참 기독교’라고 부르던 것과 거의 접합점이 없었다. 조지 윗필드의 이름은 익숙했다. 패커는 윗필드의 이름이 붙여진 집이 딸린 오래된 문법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그러나 패커의 가족은 명목상의 국교도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는 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니테리언파Unitarian 친구와의 대화 중에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고, 그의 할머니의 성경을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어서 대학의 첫 학기 초, 1944년 10월 22일 일요일에 그는 세인트 올데이츠 교회St Aldate’qs Church의 복음 전도 예배에 참석했다. 나이 지긋한 목사의 설교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목사가 자신이 회심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패커는 이제까지 생각해 오던 것과 달리 자신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스도께 ‘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밤 패커는 1735년에 조지 윗필드가 회심했던 장소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렸다.
이후 2년여 동안 학생으로서 패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될 세 가지 신학적 움직임을 보였다. 첫 번째, 자라면서 가지게 된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견해와 결별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는 항상 성경을 종교적 체험과, 유용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인간 저자들의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것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회심한 지 6주 후 성경이 설교되는 것을 들은 그는 놀라움 가운데 성경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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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움직임은 그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방학 때 일어났다. 문법 학교 동문인 조지 윗필드의 전기를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통해 패커는 국교도이면서도 교단에 제한되기를 거부한 청교도의 심장을 가진 복음 전도자 조지 윗필드를 발견했다. 패커는 남은 생애를 지내면서 이런 강조점들을 함께 나누었다.
마지막 움직임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시도록 내려놓는’ 모든 사람에게 죄에 대한 승리와 복을 약속하는 승리주의적 가르침인 ‘케직 신학’Keswick theology과 관련이 있다. 당시 완전한 포기를 통해 완전한 평화를 얻는다는 말은 옥스퍼드의 학생들에게는 막연했지만, 패커에게는 그를 격분시키는 신기루였다. 이 말이 의미하는 구원을 열망했지만, 아무리 여러 번, 아무리 절박하게 자신을 내려놓아도 항상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임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중에 잡동사니가 쌓인 한 지하실에서 그는 도련되지 않은 『존 오웬 전집』Works of John Owen 세트를 발견했다. 6권에서 ‘신자들 안에 내재하는 죄’와 ‘죄 죽임’이라는 제목에 이끌린 그는 그것을 펴서 읽었다. 케직의 가르침과 분명하게 대비되는 이 작품에서 오웬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신자들 안에 지속되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아무리 성숙하다 할지라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힘든 경험은 두 가지 방식으로 패커의 삶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먼저, 케직 신학에 열중했던 그였기에 그는 항상 죄와의 싸움과 성화의 중요성에 특별히 관심하며 이를 강조했을 것이다. 둘째, 오웬에 대한 경험을 통해 청교도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졸업 후, 패커는 1년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기로 하고 런던 북쪽에 자리한 오크 힐Oak Hill 칼리지로 옮겼다. 거기 있는 동안 그는 교수로서의 재능을 발견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갈 수 있었다. 국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이제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일요일 저녁마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 참석하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 ‘청교도 컨퍼런스’The Puritan Conference를 제안했다. 그 뒤로 20년 동안 건강한 신학이 어떻게 영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증거한 이 컨퍼런스는 그 자체로 영국 복음주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온 그는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에서 안수를 위한 훈련을 받았고, 계속해서 박사 학위를 위해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 과정을 마친 그는 논문을 쓰면서 하본에 있는 세인트 존스 교회의 목사보로 섬기기 위해 1952년에 버밍엄 교외로 옮겨갔다. 버밍엄으로 옮겨간 그 달에 패커는 키트 멀릿Kit Mullett이라고 하는 젊은 웨일즈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로부터 19개월 후 둘은 결혼에 이른다.
부목사로 지내면서 그는 자신이 설교보다는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더 맞다고 확신했다. 2년 후 브리스톨에 있는 틴데일 홀의 강사직으로 옮겨갔다. 학생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3년 후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인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를 출판했다. 이 책은 성경의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복음주의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슬로건의 역할을 했고, 미묘함과 정교함을 가지고 성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그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또한 이 책을 힘입어 패커는 복음주의 운동의 신학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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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한 명의 청교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즉 내가 17세기에 대서양 양편에 살았던 위대한 지도자들과 같이 내 자신 안에서 학자, 설교자, 목사의 역할들이 조합되기를 구하고, 바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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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패커의 자기 인식과 자기 안에 깊이 자리한 열망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패커야말로 대서양의 양 진영에 걸쳐서 학자, 설교자, 목사로서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오늘날의 청교도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학부생으로서 처음 오웬의 책을 집어든 이래로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청교도들과의 고마운 만남을 통해 형성된 그의 신학적 확신과 강조점들은 모두 청교도적이다. 그는 철저한 칼뱅주의자다. 신학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신학을 항상 상아탑의 유희로 가두어 놓으려는 생각을 거부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거룩과 교회의 개혁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청교도라는 자기 진술은 또한 그의 섬세하고 넓은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자기 앞서 간 C. S. 루이스와 같이, 패커는 항상 지난날의 지혜에게 묻고자―결코 경시하지 않고―하는 강력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송영 (그리고 청교도) 신학의 정수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 본서가 발하는 초청이다. 간접적으로 들릴 수는 있어도, 이 책은 새로운 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선한 길은 예전에도 여전히 선한 길이었다는 사실에 기반한 단도직입적인 옛 길로의 부름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 있는 학자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적 관심 때문에 패커는 모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경건을 돕는 작품을 쓰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패커를 위대한 신학자라 말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일컬어 위대한 ‘신학 연구가’theologizer―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그러한 열정을 자신의 책을 통해 전달하는 사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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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 대속을 믿는 것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명확히 등장합니다. 제임스 패커와 같은 신학자들은 다른 그 무엇보다 성경의 권위나 형벌 대속에 관한 교리를 가장 앞세워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보며, 놓치면 안 되는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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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적절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정통을 지키며 그것을 현대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에게 아쉬운 점은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정통을 놓쳤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속죄’가 기독교의 전부라고 할 수 없지만 반대로 속죄가 없는 기독교는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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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틴들 하우스에서 행했던 패커의 강연을 아래에 첨부했습니다. 이 글에서 패커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리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이 ‘대리’에 관한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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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 _제임스 I. 패커, 형벌의 대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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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의 대리penal substitution 이론과 관련해 먼저 언급해야 할 내용은 이미 살펴보았다. 이 이론은 성경 주석을 기초로 삼고,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갈보리에서 행한 일에 특별한 강조점으로 두어 다듬어 낸 기독교 신학의 모델이다. 형벌의 대리라는 ‘교리’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모델이 하나님의 행위를 극적이고 케리그마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과, 또 우리가 니케아의 삼위일체 ‘교리’라고 부르고 칼케돈의 그리스도 인격 ‘교리’라고 부르는 방어적인 공식-모델들defensive formula-models보다는 아울렌이 제시한 하나님의 승리(아울렌은 결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라는 ‘고전적 개념’과 훨씬 더 유사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형벌의 대리 모델은 두 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리적인 것이었다고 선언한다. 다음으로, 형벌이라는 단어를 추가함으로써 대리의 특성을 밝히고 특별한 준거틀로 삼는다. 이 두 단계를 하나씩 살펴본다.
첫 단계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리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대리substitution를 “어떤 사람이나 물건으로 다른 것을 대신하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현대 기독교의 담화에서 한 가지 기이한 점은, 예수의 죽음이 대신하고vicarious 대표하는representative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이 대리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두 단어를 모두 대리적이라는 의미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대표한다는 말은 “어떤 일이나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의 권위나 힘을 위임받아 그들을 대신하거나 대변하는 행위, 또는 어떤 사람이나 일이 다른 것을 대리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대신한다는 말은 “다른 일이나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대행하는 것, 적합한 일이나 사람을 대리하여 맡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이렇게 볼 때, 두 말의 차이는 없고 구분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리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거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행동하고, 따라서 그 사람은 더 이상 스스로 그 짐을 지지 않게 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판넨베르크의 말대로, “사회생활에서 대리하는 일은 일반적인 현상이다.……직업의 구조, 노동의 부문까지도 대리적인 특성을 지닌다.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봉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직능을 수행한다.” 모든 봉사는 특성상 그 봉사를 받는 사람에게 자기 스스로 해결할 일 외에도 감당할 일이 있음을 알고서 그 일을 대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넒은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을 본받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huper-우리를 위하여, 우리 유익을 위해, 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여기서도 huper가 쓰인다(롬 5:8, 갈 3:13)라는 말이 참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anti, 이 말은 정확히 ‘-를 대신하여’, ‘대리하여’라는 뜻이다는 그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주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리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정말이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켜 대신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면, 실제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복음주의적인 형벌의 대리 모델은] 십자가와 관련해 인격적인 종교의 기본을 이루는 통찰들을 구체화하여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런 통찰들을 아래와 같이 인격적인 용어들로 제시한다.
- 데니James Denney의 표현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묵과하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있는 그대로 심판하신다. 이 점이 옳다는 것을 성경이 확증하며 또 내 양심이 인정한다.
- 나는 최고 형벌로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도 마땅한 죄인이며(이 역시 내 양심이 인정한다), 내가 이 일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죄에 대한 형벌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 대신 담당하셨다.
- 그러므로 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다시 말해 나는 의롭게 되었으며, 내게 용서와 용납과 아들 됨이 허락되었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일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토대다. “그분이 의로움을 성취하지 않았다면 내가 의로움을 이루어야 하며, 그분이 진노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내가 영원토록 그 진노를 감당해야 한다.”
- 그리스도를 믿는 내 신앙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허락된 것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로 인해 허락된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일은 나를 보존하여 영광에 이르게 한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일은 나를 향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척도이며 약속이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일은 나로 하여금 신뢰하고 예배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헌신하게 한다.
따라서 이 모델에서 우리는 십자가가 성취했고 지금도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생각해 볼 물음들
➊ 패커는 ‘형벌의 대리’를 교리로 보는가, 아니면 신학적 모델로 보는가?
➋ 여러분은 이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아홉 가지 진술 가운데 어떤 것이 패커의 이론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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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과 소통하며 함께 <이달의 신학자>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독자님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보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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