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담: 엄살원 주인. 기획, 음식, 편집 등등을 한다.
유리: 엄살원 직원. 손님 섭외, 식사, 편집 등등을 한다.
예인: 연출, 감독. 촬영하다 쉬는 시간에 잠깐씩 식탁에 앉는다.
Guest
준짱: 국회 보좌진. 심상정 의원실의 컨텐츠 노동자. 심상정 인스타그램 스토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접수완료’의 주인공.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영상편집자로 활동했었다. 주말에는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에서 장애인노동자들과 그림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준짱은 참지 않지

유리: 준짱이 의원실 안에 있기 때문에 변화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준짱: 저 엄청 설득했거든요.

담: 고생하셨어요… 이런 걸 보면 급진적이고 화 많은 사람이 집단에 꼭 필요하다니까? 

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현실 정치에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돼, 그리고 설득이 성공하려면 중도적인 입장이 최고야. 근데 그 중도적인 입장, 타협안이라는 게, 사실은 가장 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가장 변화하고 싶은 사람이 신나게 싸워서 찾아진 선인 거잖아요. 그런데도 결과만 보고서 것 봐라, 극단은 안 먹히지? 이런 말 들으면 좀 서운하죠. 누가 싸워서 여기까지 온 건데.

준짱: 사실 싸웠다기보다는 저랑은 연령대가 차이가 다들 많이 나요. 동료 보좌진들은 우리 엄마 아빠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담: 예를 들면요?

준짱: 제가 한 번은 의원실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어요. 아까 말한 그 성폭력 사건 공론화하고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상임위장에서 촬영하다가 진짜 픽- 쓰러졌어요. 의장님이 바로 “(탕탕탕)정회하겠습니다!” 하고 저는 실려 가고... 

담: 그게 나름 화제가 됐다고요. 기사도 나고.

준짱 : 네. 근데 그 일로 의원실에서는 준짱이 혹시나 채식해서 체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바로 이렇게 걱정하시더라고요.

담: 아플 때 피해갈 수가 없는 의심이죠.

준짱: 그리고 제가 그렇게 튼튼해 보이는 체형이 아니다 보니까...너무 말랐다고 많이들 말씀하시고. 그런데 제 몸이 마른 건 사실 채식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바깥에서 채식을 하다 보면 당연히 영양의 불균형이 생길 수 있잖아요.

담: 먹을 게 별로 없으니까요. 

준짱: 국회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 먹게 되면 영양분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업무량이 워낙 많으니까,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는 사람도 2시, 3시 되면 똑같이 배고프거든요. 누구나 항상 배가 고프고 체력이 달릴만한 일이에요. 저는 특히나 서서 촬영하고 카메라를 이고 지고 다니니까 에너지 소모가 더 많아요. 사실 쓰러지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그 날은 딱히 과로를 한 날도 아니다 보니까 동료들이 걱정을 많이 했고요. 자기들끼리 원인을 추론해본 결과...아무래도 채식을 해서 그런 거 같다... 

담: 만병의 근원이에요. (유리:ㅋㅋㅋㅋㅋㅋㅋ악ㄱ학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식이 만병의 근원이야ㅋㅋㅋㅋㅋㅋ

준짱: 그런데 쓰러지고 나니까 저도 정말 비건 지향하는 게 문젠가? 이렇게 계속해도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나중에 병원에서 진료를 봤을 때는 목숨에 위협을 주는 종류의 쓰러짐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담: 미주신경성 실신?

준짱 : 네.

담: 그래도 모르죠. 죽을 건지 안 죽을 건지 모른단 말이야. 걱정해야 된단 말이야.

준짱은 참을 때도 있지

준짱 : 고민은 계속해요. 나도 모르게 쓰러질 수 있는 상태라면 이 일을 해나가는 데도 굉장히 문제잖아요. 민폐가 될 수 있고. 그날 뉴스에도 심상정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을 너무 과로시키는 거 아니냐, 이런 식의 기사가 나가고 그랬거든요. 그거 아니라고 해명해도 누가 믿겠어요.

담: 보좌진들에게 해명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럴 가능성이 크죠.

준짱: 그런 게 아닌데. 참.

어쨌든 그 이후에도 국회에서는 잘 피해 다니면서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은 해남으로 출장을 갔어. 거기가 바닷가 마을이거든요? 식당에 갔는데 모든 게 해산물인 거예요. 게다가 이제 그 식당 주인분이, 나 의원님 지지자잖아~ 이러시면서 내 옆자리에 딱 앉으셨어. 그리고 어머, 언니는 너무 말랐다, 하면서 내 숟가락 위에 게장이랑 생선을 다 얹어주시는 거야. 이거 다 비울 때까지 나 안 일어날 거라면서ㅋㅋㅋㅋㅋㅋ 

유리: 그게 또 사랑해서 주는 거잖아요ㅋㅋㅋㅋ

담: 그러니까요. 안 먹으면 상처를 받으실 수 있어요.

준짱: 그리고 이, 지지자분에게 비건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담: 그쵸.

유리: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조건 속에서 일궈온 생업을 뭔가 납작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오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길고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문장부터가 벌써 길고 구구절절해짐)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준짱 :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채식을 해서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해산물도 안 먹어? 이거 먹어 봐. 하면서 문어나 낙지가 섞여 있는 해초 무침, 그런 음식을 권하시고.

담: 친구들이랑 주로 소주 마실 때 가는 식당이 있는데요. 저랑 한 친구랑 비건이 된 후에, 오랜만에 거기 가서 두부김치를 시켰어요. 원래는 김치를 돼지고기랑 같이 볶아주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모한테 고기 빼고 볶아달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이모가ㅋㅋㅋㅋㅋㅋㅋ접시를 가져오시면서 “소시지로 넣었어~많이 넣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 맞아요. 우리 이모님들이 햄이 고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시죠. 

담 : 너무 자랑스러워하셨어.

유리 : 잘해주려고 한 거니까. 인간 사회에서는 서로에게 고기를 먹이고 밥을 먹이는 게 애정의 표현인 거, 감사한 일이라는 걸 우리도 다 아니까요. 

준짱 : 그걸 안 먹고 그 마음을 거절하는 게… 만약 거기 있던 게 나 혼자면, 혼자 그 식당에 간 거면 그냥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제가 정말 못 먹어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날은 내가 보좌진으로 있는 자리였잖아요. 그래서 먹었어요. 

담: 비건 실천이 제일 어려울 때가 지역 출장 갈 때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준짱: 집에서는 그렇게 안 힘들어요. 낫또 먹으면 돼서. 근데 출장 가면 주로 도시락이 나오거든요. 당연히 비건 아니고. 그럼 도시락에 담긴 닭알말이를 두고 고민을 하는 거죠. 차 안에서 이동 중에 식사할 때가 잦은데 맨밥만 먹어서는 힘이 안 날 거 같을 때가 있어요. 바쁨에 쫓기고, 효율에 치여서 나의 가치를 배반할 때가 슬퍼요.

유리: 공감. 출장 가면 내가 비건지향인 줄 모르는 스태프분이 제육볶음 도시락 이런 걸 주세요. 고기가 이미 있잖아. 거기서 내가 김이랑 밥만 먹으면 고기가 버려지잖아요.

준짱: 맞아.

담: 그거 잘 생각해봐야 돼.

예인: 저는 언니랑 같이 사는데, 언니가 논비건이거든요. 언니가 식사하고 남은 음식을 보면 ‘저걸 저대로 버려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잔반 처리하듯이 먹게 되는 거예요.

준짱: 그쵸. 다 나름의 딜레마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출장을 갔어요. 일정표를 봤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따로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달리는 차 안에서 준비해 둔 도시락을 먹기로 예정되어있었어요. 내가 주문을 했으면 고기를 빼주시라 이런 설명을 했을 텐데. 그 도시락은 다른 활동가분이 직접 시켜주신 도시락인 거야. 또 달리는 자동차에서 도시락 먹을 때는 남기면 안 되거든요. 국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요. 그냥 다 먹는 거죠. 
그럴 때 드는 어떤.... 어렵죠. 왜냐하면 나도…….

유리: 왜냐하면 나도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담: 어느 날 기분이 괜히 그래져서 비건한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

유리: <이유>*를 모르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 뭐가 문제지?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채식이기 때문에. 각주 꼭 읽어주세요.
보좌진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담: 체력이... 남아나시나요? 아까 언급하신 실신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만한 일이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하시는 일이 기본적으로 시간과 힘이 엄청나게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요.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카메라 들고 출장도 다니고. 위기감은 안 느끼세요?

준짱: 작년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다루는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그때 택배 노동자들, 화물 물류 노동자들, 대표적으로 쿠팡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과로사하는 사건을 다뤘고요. 또 IT 업계, 오징어배라고 하나요? 이 업계의 굉장한 업무강도를 그렇게도 표현하잖아요. 

담: 판교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준짱: 네, 판교의 오징어배라고 하거든요. 아무튼 과로사 컨텐츠를 한창 만들던 와중에, 사실 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죠. 근데 이런 문제를 바깥에다 한탄하기가 어려워요. 노동 얘기 많이 하는 진보 정당인데, 정작 거기서 일하는 활동가들과 보좌진들의 노동복지는 어디에 있나? 그런 식의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에. 진보진영 내 여성차별 얘기도 마찬가지고요. 얘기를 못 하니까 오히려 더 울분이 찰 때도 있고요.

유리: 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 그리고 그 가치를 밀어붙이는 입장에 서 있어. 그럴 때 내부 문제를 꺼내는 게 결국 단기적으로는 나의 목표 지향에도 걸림돌이 되잖아. 그게 너무 커서. 

준짱: 맞아. 맞아.

유리: 무슨 마음인지 그냥.... 너무 잘 알겠는 거지.

준짱: 그런 것도 있어요. 기존의 정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팀이 목표하는 결과를 빠르게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 문화가 개선될 필요가 있는 차별적인 문화라고 해도요. 예를 들어 제가 당장 정무 보좌관이 된다면, 기자나 노조를 만나서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울 거예요. 청년여성이 보좌관으로 진지하게 인정받을 가능성이 작으니까요.

지금도 저는 국회 출입할 때마다 항상 출입제지를 당하거든요. 정장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정말 보좌관이어도, 누가 나를 보좌관으로 볼까 싶은거죠. 대부분의 사회적 상황에서 이런 나이, 이런 몸, 이런 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알잖아요. 심지어 국회의원이 되어도, 내 또래 여성 국회의원을 그렇게나 많이들 무시하는데. 보좌관인 나 또한 존중받기 쉽지 않을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협상을 이끌어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여성이라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다든지, 술을 잘 마신다든지, 기존 정치 문화에 녹아들 수 있는 요소를 뭔가 가지고 있어야 하죠. 술을 좀 마실 수 있는 중년 남성이면  할 수 있는 협상이 늘어난다고 여겨요. 그래서 그런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또 필요로 하게 되는 거죠. 이 판 전체를 바꾸지 않는 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거예요.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죠.
국회식당

유리: 나 또 궁금한 거 있어. 국회 식당 있어? 거기에 채식 메뉴 생겼어?

준짱: 생겼어. 국회 식당이 많아요. 국회의 대표적인 건물이 4개가 있어요.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돔  모양의 본관. 그다음에 의원실들이 모여있는 국회 의원회관. 여기가 제가 일하는 곳이에요. 또 도서관 있고요. 마지막으로 소통관이라는 게 새로 생겼어요. 여기는 주로 기자들의 공간, 기자회견 같은 걸 주로 하는 공간이죠. 건물마다 식당이 있어요. 본청에 세 개, 의원 회관에 두 개, 도서관에 한 개, 소통관에는 매점 같은 카페테리아가 하나. 도서관 식당이 맛있다고 하고요. 각 식당마다 메뉴가 다 달라요. 왜냐하면 인원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담: 메뉴 보는 앱 같은 거 없어요?

준짱: 있어요. 있어요.

담: 그래 하나 있어야 돼. 밥 먹는 거 너무 중요해.

준짱 : 진짜. 일반적으로는 자기가 주로 업무를 하는 곳과 가까운 식당에 가는데요. 저는 그 식단표를 보고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은 곳을 찾아서 떠나요. 

예를 들면 뭐, 비빔 메밀국수라든지. 달걀만 빼면 적당히 먹을 수 있는거. 사실 비빔 소스 속에 들어 있는 재료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냥 그 정도로 용인하면서 먹어요. 역설적으로 고기가 많이 나오는 날에 제가 먹을 게 많아요. 왜냐하면 고기가 많이 나오는 날에는 상추와 쌈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담: 저 쌈 진짜 좋아해요.

준짱: 쌈이 있으면 대충 다 먹을 수 있는데 가장 어려운 날이

유리: 볶음밥…….

준짱: 볶음밥! 고기가 이미 섞여 있어.

유리: 내가 골라내고 먹을 수도 없어. 

준짱: 그런 날은 이제 바깥에서도 먹어요. 돌솥밥집 가서. 나물이랑 밥을 먹기도 하고, 비빔밥 먹기도 하고. 유리가 했던 질문 빨리 답변을 해야겠다. 유리가 잠들기 전에...채식 메뉴... 

유리: (소파에 누워서) 나 다 듣구 있어.

준짱: 응. 채식 메뉴가 한 달에 한 번씩 나와. 근데 수량이 굉장히 적어서 보통은 내가 가기 전에 매진이 돼. 그게 뭐 한 세 그릇밖에 없나 봐.

담, 유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식당이 11시 반에 열거든? 45분에 갔는데 이미 매진이야. 이럴거면 도대체 그 메뉴를 왜 개설한 거야. 지금까지 딱 한 번 먹어봤어요. 타코였는데. 맛은 있었어. 좀 여러 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슬픈 청경채를 생각하는 슬픔

담: 매운 걸 잘 드세요? 낫또에 핫소스를 뿌려서 비벼드신다고요. 아니면 괴식에 끌리는 식성?

준짱: 매운 거 좋아해요. 원래 되게 맵찔이였는데. 확실히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게 느껴져요.

담: 스트레스 풀 때 뭐 드세요? 떡볶이?

준짱: 술이요. 최근에 아토피가 엄청 심하게 와서 술을 한동안 피했는데요. 어느 날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맥주를 마셔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카스를 사서, 비건 육포를 샀어요. 아시죠?

담: 저 아직 못 먹어봤어요.

준짱: 너무 맛있어요. 그게 매운 맛이 있거든요. 생각보다 되게 매워서 그거랑 맥주를 딱 마시면, 너무 행복하다...지금도 벌써 행복한 것 같아. 맥주랑 매운 거랑 먹으면 맛있는데...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요.

원래 비건하기 전에 국물닭발집을 좋아했어요. 친구들이랑 거기 가는 게 취미였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그리운데 그 닭발 국물에 말아 먹었던 주먹밥이 너무 생각나요. 스트레스 오지게 받을 때는 그 매운 맛이 그립고. 사실 닭발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 국물의 감칠맛, 이런 게 그리운 거죠. 요즘에는 대체재로 마라탕을 먹어보는데요. 하여간 계속 갈증이 있어서 비슷한 걸 막 해 먹어보기도 했어요. 고추장찌개, 엽떡, 온갖 매운 음식들. 그래도 사실 그 맛을 재현할 수 없죠. 저는 요리사가 아니다 보니까.

담: 그게 또 업소용 캡사이신이나 이런 거 다 있어야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저한테는 순대가 그래요. 너무 좋아했고, 자주 생각나는 음식. 근데 순대는 좀 심하잖아요, 그러니까 육식의 정도로 볼 때요.

준짱: 닭발도 심한 거 같은데? 이게 진짜 예를 들면 사람들이 왜 비건 육류, 대체육 많이 개발하잖아요. 왜 맨날 스테이크나 버거 패티 같은 것만 만들어주고, 비건 닭발은 만들어주지 않는 거지?

담: 신박하다. 비건 닭발은 상상도 못 했어요.

준짱: 아마 수요가 그만큼 있지 않겠죠. 대체육은 주로 서구권에서 개발을 시작했으니까 버거 패티 같은 걸 먼저 만들게 되지 않았나.

담: 그리고 패티는 범용이 가능하잖아요.

준짱: 그렇죠. 그런데 이제 닭발? 어려울 것 같아. 제 생각으로는, 곤약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 그 식품을 개발하시는 분들의 고민은 또 다르겠지만. 좀 너무...그렇네요. 닭발이라니. 죄송해요.

담: 아니에요. 비건들이 다른 비건을 만나면 서로서로 저 사람은 타협없이 철저하게 실천하겠지, 나만 제대로 못 하는 거겠지, 그러는 거 같아요. 저는 처음 유리를 보고 그랬고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유리는 저를 보고 그랬대요. 

유리: 저는 지나치게 빵을 많이 먹는다.

담: 갑자기? 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응...

담: 나중에 이렇게 한 번씩 고백을 하게 돼요. 전 오히려 좋아요. 못 말할 때는 고립감이 있었거든요.

준짱: 그러네요. 이걸 입 밖으로 뱉고 나면 오히려 뭐랄까. 이상하게 들려. 내가… 닭발을 맛있어했다고?

담: 닭의 발인데?

준짱: 그쵸. 닭의 발인데.

유리: 나는 닭발 국물 얘기하자마자 어디 생각났냐면, 은하선 씨가 운영하는 가게 있잖아. 드렁큰비건. 거기서. 고추장 두루치기 먹어봤어?

준짱: 맞아 맞아. 거기 비슷하지. 그런 거 파는 데가 많으면 좋을 텐데.

담: 집에서는 요리 많이 해 드시는 것 같은데, 비건 제품도 사용 많이 해보셨어요?

준짱: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비건 대체품이 많이들 콩과 밀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런데 저는 밀가루나 콩이 잘 안 받아요. 계속 먹으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찬다든가, 아토피가 올라온다거나, 근육이 아파진다거나 하는 증상이 있어요. 소량은 괜찮지만 누적되면 몸이 안 좋아지니까 가급적 피해요.

담: 낫또는요? 낫또도 콩인데 괜찮아요?

준짱: 발효가 되면 괜찮아요!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는 대체품들도 일부러 도전해보고 했어요. 나 맛있는 비건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측면도 있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편한 음식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체품보다 낫또가 더 맛있기 때문에... 

음, 그리고 또 하나는 대체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대체육을 만들고 나서도 이게 얼마나 원래의 육식과 맛이 닮았는지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그럼 이 식품 제작 과정에서도 고기가 사용되는데, 문제가 없을까. 대체육 버거랑 진짜 버거랑 비교하는 실험은 광고로도 볼 수 있고요. 그 광고에서도 어쨌든 진짜 버거를 먹기는 하더라고요. 만드는 과정에서 동물이 또 이용되는 거 아닌가, 그런 고민.

다른 비건 친구들은 육식의 맛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하는 일 자체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나까지 생각하더라고요. 

담: 저는 실은 그런 제품을 대체로 인터넷에서 따로 주문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안 먹는 건데요. 응원은 해요. 그런데 확신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그편이 착취가 덜한 게 맞는지가. 대체품을 개발하는 데 드는 자원, 생산과 유통 라인을 짜고, 사람들이 그걸 소비하는 데에 드는 유무형의 자원이 육가공 제품보다 덜하다 이런 걸 확실히 알고 싶죠. 그냥 제품으로 보기엔 되게 의심스러운 거야.

준짱: 우리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죠.

담: 그리고 비건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제품 봉지 뒷면을 보면서 내가 이걸 먹을 수 있나 없나...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을 더 안 늘리고 싶기도 해요. 왜냐면 점점 동물이 아니라 나한테 초점이 맞더라고요. 내가 고기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에 초점을 좀 맞춰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준짱: 그러게요. 확실히 내가 먹고 안 먹고가 중요한 게 아닌데. 내 입에 안 들어왔다고 안 죽는 게 아닌데. 어려워요.

유리: 처음에는 그런 게 좀 짜증 났거든요. 너 채식해봤자 채소 재배하는 데에 동물이랑 벌레가 얼마나 죽는지 알아?

담: 그놈의 아보카도 진짜ㅋㅋㅋㅋㅋㅋㅋ

준짱: 알았어, 아보카도 안 먹을게ㅋㅋㅋㅋㅋㅋ

유리: 비건 지향인이 아닌 사람이 먹는 아보카도가 더 많다고 쏘아붙이고 싶잖아요.

담: 육식 위주의 삶이 채식 위주의 삶보다 물이든 땅이든 곡식이든 채소든 훨씬 많이 소비한다는 건 통계로도 나오잖아요.

유리: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거니즘을 음식 위주로 덜 생각하게 되면서, 이제는 정말 좀 걱정이 돼요. 헐 맞아… 우리가 먹는 채소 재배 때문에 동물이랑 벌레가 너무 많이 죽어… 너도 걱정돼? 이렇게. 벌레랑 동물들이 청경채를 기르는 데 얼마나 많이 죽는지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거죠.

타인은 오지이다

담: 비건한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채소를 많이들 걱정하잖아. 채소의 고통을.

유리:  2015? 2016년 당시에 페이스북에서 읽었던 진짜 웃긴 글 중에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상추 기르느라 달팽이도 많이 죽는다고ㅋㅋㅋㅋㅋㅋㅋ

준짱: 뒷걸음 동물권ㅋㅋㅋㅋㅋ

담: 그걸 또 어떻게 다 찾아오셨대. 육식을 지속하기 위해서, 채소 기르느라 어느 동물까지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열심히 찾아오더라고. 저러다 안 먹게 되시는 거 아닌지 생각될 정도로.

준짱: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모순을 발견해.

담: 그러니까 우리가 진지하게 상추의 고통, 청경채의 고통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할 때 어려운 점은,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다른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도 깻잎이 걱정돼. 깻잎이 고통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이렇게 편하게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고민스러울 수 있잖아요. 어떤 착취가 이 편함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런데 만약 그런 질문을 나를 상처주거나 조롱하려고 던지는 경우에는 고민은 싹 날아가고, 아 물으시는 분은 상추 안 드시나 봐요? 이렇게 비꼬고 싶은 마음만 남아요. 진짜 죄송합니다. 제가 쌈싸는 거 너무 기분 나쁘셨겠어요...

나는 속 편하게 이런저런 내부자의 질문을 하고 싶은데, 외부의 차별에 대응하는 버전의 언어를 따로 만든다는 게... 

준짱: 따로 재야 되는 거지.

담: 네. 그 과정이 사람을 좀 찢어지게 만들죠. 어떤 운동이 안 그렇겠냐마는. 

준짱: 예전에 어떤 분이, 내가 처음에 비건이라고 하니까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 준짱 씨는 몽골 꼭대기에 가서 먹을 게 없으면, 어떻게 뭐, 굶어요?”

아니 대뜸 날 몽골에 보내ㅋㅋㅋㅋ

담: 여행 보내주고 싶나보다.

준짱: 그건 내가 몽골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볼게. 

유리: 난 그런 말 들으면….”당신이 있잖아요?”

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왜 굶어요 당신이 있는데 ^^ 왜 걱정이지?ㅋㅋㅋ

준짱: 그런 가정이 나를 난감하게 하는 데만 목적이 있잖아요. 내가 먼저 가겠다고 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실제 몽골 사람들이 뭘 먹는지 그 분이 어떻게 알아요. 몽골 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실천들이 또 있을텐데, 그건 알아보지 않고 하는 소리인 거잖아요. 무례한 질문인데 거기다 대고 내가 이걸 참, 적당히 위트있게 받아쳐야 되는 건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얼마나 귀찮을까. 이 사람은 사실 나랑 논쟁이 하고 싶은 거 아닐까.

담: 맨날 논쟁하면 일상이 유지가 안 되잖아요.

준짱: 네. 그 패턴이 내내 반복돼요.

담: 준짱 보낼 국가가 많아. 오지가 많아.

준짱: 네. 자꾸 나를 오지로 보내는 상상을 하시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국회 놔두고, 왜. 일단 국회 식당부터 어떻게 해봅시다.

담: 저는 그런 상황 생기면 다 먹는다고 그래요. 지금만 안 먹을게~

준짱: 다행히 여긴 몽골이 아니네~? 그래서 참...너무 공감해요. 대답을 두 개씩 준비한다는 거. 가비지테리언 이런 형태도, 우리끼리 있을 때는 가능한 실천으로 진지하게 논의될 수도 있는데, 밖에서 말했다가는 바로 이런 반응이 돌아오죠. 너 남으면 먹는다고 했지? 남았어, 먹어 봐.

담: 그리고 방어적인 사람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유머라든지 너스레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근데 농담도 죽이 맞아야 잘 나오죠. 상대는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어서 수세에 몰린 듯한 연출이 하고 싶은 거잖아요. 

준짱: 맞아요. 깍쟁이처럼 만들어요. 저는 가리는 음식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엄청 웃어요.네가 무슨 가리는 게 없냐고. 근데 나는 내가 먹는 거 안에서는 가리는 게 없어요, 정말. 나는 먹지 않기로 한 거지만, 사람들한테는 음식을 가려 먹는 게 돼요. 

나 달리는 차 안에서는 계란말이 먹는다니까. 식당 주인분이 내 숟가락에 얹어준 낙지도 먹는다니까.

그래서 아저씨들은 내가 몽골에 가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우리가 겪는 난감한 상황은 오히려 가까운 곳에서… 굳이 오지에 안 보내셔도 돼.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

유리: 당신이 이미 내곁에 있는데, 뭘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지. 당신이 평창입니다. 

담: 당신이 나의 히말라야입니다. 당신이 나의 에베레스트입니다.

준짱: 당신이 나의 오지입니다.

담: 유 몽골 미.

유리: 아이 서울 유.
혐오하지 않고 저항하기

준짱: 맨날 싸우는 건 너무 힘드니까, 타협을 할 때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여성 문제. 여성혐오적인 말이나 행동을 만났을 때 그냥 수용할 때도 있어요. 그때 내 마음가짐은 이런거죠. 여기서 좀 참고 다른 데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지.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여성 당사자니까.

그런데 이게 육식을 수용해야 되는 순간이 오면 정말 마음이 힘들어요. 나는 내가 다 먹어야만 하는 이 계란말이의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걸 먹고 나면 내가 나중에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죠.

담: 누가 누굴 용서하는 건가 그런 자괴가 있죠.

준짱: 내가 물론 모든 운동의 당사자일 수는 없겠지만...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양보해서는 안되는 일도 분명 있는데. 그런 원칙을 삶이랑 어떻게 좀 어우러지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정신이 고통스러워서 정신과에 가면 선생님이 그래요. 준짱.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요. 집에 가는 길에 육개장 한 그릇 사드세요.

유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선생님은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그냥 진짜 참을 수 없는 순간도 있잖아요. 그냥 그날 따라.... 저는 어느 날 택시를 딱 탔어요.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바로 뭐라고 했냐면...아, 말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왜냐하면 그 아저씨의 대사가 너무 나쁜 말이었는데. 순화하면 그 아저씨가 나한테 성매매 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준짱: 헥?

유리: 너무 놀랐어. 나는 택시에 타면서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한 게 다거든요. 안녕하세요. 어디로 가주세요. 거기다 대고 그 아저씨가 그렇게 대답을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근데 무섭잖아요. 택시에 단둘이 있고. 일단 택시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내려서 그 택시를 신고 했어요. 근데 그 택시회사에서 신고를 계속 안 받으려고 전화를 계속 다른 부서로 돌리는 거예요. 블랙박스가 지워졌다, 어쩐다 거짓말 하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아저씨가 진짜 어려운 사람이다. 나이도 많고, 빈곤한 사람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너무 알 것 같아요. 실제로 어려운 사람이었겠죠. 그렇지만 불쌍한 사람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이러기에는 내가 참을 수 없이 비참한 그런 순간이 있는 거죠. 남자들이 가난하고 힘들다고 해서 동료 시민인 여성을 대뜸 그렇게 대해도 돼? (인간들이 가난하고 힘들다고 해서 동물들을...?) 

담: 너무 알아. 저도 택시에서 비슷한 일 있었어요. 재작년 겨울인가. 그 날은 정말, 우주가 한 2-3시간 정도만 나를 중심으로 굴러가줬으면 좋겠는 날이었어. 왜냐면 좋아하는 사람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었거든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러 가자, 그런 날. 그래서 과한 걸 아는데도 엄청 꾸미고 기분을 냈어요. 눈도 내리고, 예감이 괜찮았어.

택시도 불렀죠. 택시기사 아저씨도 나쁘지 않았어. 일상적인 말을 살짝 능글맞게 하는 정도. 근데 잘 가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어디 업소에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알려주면 자기도 들르겠다고. 뭐...모든 사고가 정지가 됐죠. 화를 낼지 말지, 화를 낸다면 또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돼. 그러니까 나는 나를 창녀로 보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내가 만약에 창녀라도, 그렇게 해도 되냐고, 어?

준짱: 여기도 오지야 ㅋㅋㅋㅋㅋㅋ

담: 그러게나 말이에요. 즉각적으로 화를 안 내는 데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 거죠. 무서운 것도 있고, 화를 내는 내 쪽에 권력이 있는 건 아닌지 검열해보고, 내가 화 내기 위해서 다른 존재에 빚지는 결과를 만들고 싶지도 않고.

준짱: 아, 너무너무 공감해요. 아까 얘기했던 청년예술청 예술감독이 나를 성희롱하는 과정에서 슬슬 빌드업을 했거든요? 이런 이야기였어. 자기는 퀴어 문화 이런 걸 너무 알고 싶대. 

담: 퀴어 문화를 알려달래요?ㅋㅋㅋㅋㅋㅋ

유리: 아 퀴어 문화 모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그래서 자기는 젊은 친구들, 퀴어 당사자들과 굉장히 섹스를 하고 싶었고, 다자 간 섹스도 궁금하고, 그래서 너랑 어떤 다른 누군가랑 섹스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

일단 제가 이걸 성희롱이라고 판단한 거는, 이 이야기를 하게 된 자리가 나를 청년예술청에 섭외하는 만남이었다는 점에서, 일과의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이걸 거절하면 일을 거절하는 게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근데 이걸 공론화 했을 때, 사람들이 내가 다자연애나 퀴어들의 성적 실천에 거부감을 느껴서 공론화했다고 생각할까봐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이 나한테 요구하는 게 BDSM 이었거든요. 자기가 너를 위해서 촛농이나, 기구 그런 걸 준비하겠다.

유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근데 나는 BDSM을 혐오하는 게 아니야.

유리: 알아알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그 사람에게 퀴어한 속성이 있다면, 나는 그걸 의심하거나 싫어하는 게 아닌데. 그걸 거절하는 거랑, 그 사람과의 섹스를 거절하는 거랑, 또 그게 일과의 연관성을 가지는 거랑...이 구분이 모호해진 상황이 난 너무 혼란스러웠던 거지. 그래서 공론화가 너무 힘들었어. 내 공론화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했어. 네가 공론화 글에서 BDSM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밝히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해할 수도 있다고.
근데 아니거든. 나는 분명히 아, 그렇군요. 근데 저는 당신과 섹스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얘기했는데 이것보다 선명한 대답을 어떻게 하나. 난 너랑 이성애 섹스도 안하고싶고, BDSM 섹스도 안 하고 싶고, 다자연애 섹스도 안 하고 싶다, 이렇게 말했어야 되나? 

담: 그렇게 말 하지 않았으면 나는 너랑 이성애 섹스는 하기 싫은데 BDSM은 오케이다, 이렇게 말한 게 되나?ㅋㅋㅋㅋㅋㅋㅋㅋ

준짱: 그러니까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참... 

공론화의 의도를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가뜩이나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소수자 문화에 대한 혐오로 비춰지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곡된 이미지가 덧씌워지지는 않을까. 공론화 과정에서 이런 고민하느라 갑자기 쓰러진 거에요. 당시 면접 자리에서도 그래서 한마디로 대답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담: 그리고 그 가해자도 바로 그 지점으로 도망가겠죠. 일탈적 섹슈얼리티를 혐오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려고 했겠죠. 하지만 퀴어 당사자들도 분노하고 준짱에게 힘을 주지 않았을까요? 위계 권력을 이용해서 성희롱을 해놓고, 감히 우리 커뮤니티에 대한 혐오를 방패삼아서 면피하려고 할 수가 있느냐. 또 변태들이 얼마나 말을 잘해요. 

그래도 너무 이해가 돼요. 대답하기 어려우셨을 거라는 것도. 그러니까 어떤 혐오는 되게 풍성하기도 하잖아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맥락이 중첩이 되어 있어요. 

준짱: 똥 싸는 건 너무 쉬운데 치우는 건 생각 많이 해야 돼요. 어디에 똥을 안 묻히고 이걸 쓸어담을지.

담: 그리고 정말로 안 묻히는 게 윤리적인 일인지. 다 묻혀야 되는 거 아닐지?
*
이 각주를 쓰는 유리는 2015년에 페이스북으로 만난 비건 김지나 씨를 통해 “우리가 아는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 동물에게 임신과 출산을 강제로 반복시키고 있다. 젖소라고 해서 젖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후 소현을 통해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저서와 여러 글을 접했고, 육식을 계속하고픈 맘에 어떻게든 반박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잘 안돼서,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반박하기 어려운 죽음과 고통에 관한 인정의 퍼포먼스 정도로 비건지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안담, 리타, 유리가 함께 만든 OFF magazine 특집호 <친구의 표정>을 읽어보세요. https://off-magazine.net/ 

엄살원을 보면서 비거니즘에 새롭게 관심이 생긴 분이 계신다면, 아래 링크도 한번 살펴보세요. 유리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추천하는 콘텐츠입니다. (지지님, 장민욱님, Joyce Park님, 이동현님, 마마품님, 홍산님, 김대연님, 섬나리님, 김헵시바님 감사해요!) 

넷플릭스 아이디가 있다면 더게임체인저스(The Game Changers), 카우스피라시(Cowspiracy)와 씨스피라시(Seaspiracy)를 추천합니다.


누군가 아예 동물권, 축산업 관련 다큐 재생목록을 만들어 두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없다면 5분 안쪽으로 볼 수 있는 Dairy is scaryCasa de carne가 있습니다. 

 책으로는 <고기로 태어나서>, <나의 비거니즘 만화>, <아무튼 비건> 등이 쉽고 강렬한 경험을 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