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지금 무엇이 두렵나요?

님은 지금 무엇이 두렵나요?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두려움은 원초적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적대적인 환경과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이끌어내려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죠. 하지만 두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이 강해져 우리를 압도할 경우 두려움은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사회는 두려움의 요인을 제거하고 그 양상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발달해왔습니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불확실성과 복잡성, 그에 따른 다양한 양상의 두려움을 야기합니다. 당장 여러 매체에 ‘두려움’을 검색하면 ‘두려움 극복-제거-해결’ 관련 콘텐츠가 최상단에 노출되죠. 이 콘텐츠들의 수십만 조회수와 ‘좋아요’, 알고리듬 추천 목록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대인들이 몸부림이 집단 데이터 흔적으로 남은 것은 아닐까요? 마치 원시시대의 집단의식 장소와 동굴벽화처럼 말이죠.

이번 호는 두려움에 관한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말테의 수기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현미 옮김, 민음사, 2005)

불안과 고통, 소외와 죽음을 멍에처럼 걸머지고 가야 하는 우리의 삶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유일한 소설.

덴마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안주할 곳 없는 방랑자로 대도시 파리에 내던져진 시인. 그가 낯선 도시에서 하숙을 하며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을 경험하고 대도시의 타락과 암흑, 허상과 참모습을 기록한 『말테의 수기』는 말테의 입을 빌린 릴케 자신의 이야기이자 자전적 소설입니다.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려는 소원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좀더 지나면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삶처럼 흔치 않을 것이다. 맙소사, 여기에는 게 없다. 그저 와서 생을 발견하면 그만이다. 그저 그것을 기성복처럼 입기만 하면 된다. 자기 뜻으로 가거나 가도록 강요를 받는다.(15p.)"

릴케는 이 작품에서 '죽음'에 무섭도록 천착합니다. 그 시선은 개미를 뒤쫓는 돋보기의 치명적인 시선처럼 그 자신은 물론 그가 살아가는 도시 전체의 인상을 음울하게 인화합니다. 이 시선은 삶을 예찬하지도, 삶과 죽음을 분리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라는 불빛에 죽음이라는 그을음을 끈질기게 따라붙게 합니다.

우리는 자주 더 나은, 다양한 삶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죠. 하지만 더 나은, 다양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적은 것 같습니다. 어둑한 저녁에 졸면서 환한 대낮의 무지개를 꿈꾸는 일처럼요. 그것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요?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고독에 갇힌 시간. 빛이 빛을 가리고 어둠이 어둠을 밝히는 시간. 그럼에도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소망을 적어갑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어서 설령 우리가 없어진다 해도 거기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유성이 떨어져도 그것을 보거나 소원을 비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말테야, 너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지 마라.(98p.)"

아래에 옮겨드린 릴케의 시를 읽으며 님이 사로잡힌 두려움을 다른 각도로 밝혀보시면 좋겠습니다.

밤이 되면 서서히

고목의 한 가장자리에 깃든 옷 빛깔이 바뀌어가며

그대 보듯이 그대로부터 땅은 떠나가네.

하늘로 날아가는 땅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땅

그리고 그대를 아무것에도 전혀 소속시키지 않네.

괴괴한 집처럼 그렇듯 어둡지는 않고,

밤마다 뜨는 별처럼

그렇게 확실한 영원을 약속하지는 않네.

그리고 그대에게 (풀기 힘드나)

삶을 두렵고, 거대하고, 성숙한 것으로 만들어줌으로써,

때로는 야금야금 때로는 흠뻑

그대 속에서 돌이 구르고, 또 별이 구른다.

-시 <저녁> 전문, 『검은 고양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주연 옮김, 민음사, 2012)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 에드워드 올비 (강유나 옮김, 민음사, 2010)

누가 환상 따위를 두려워하랴

퓰리처상을 3번이나 받은 미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입니다. 올비의 첫 장편희곡인 이 작품은 196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뒀고, 작가는 같은 해에 토니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받았습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제목은 "누가 환상 따위를 두려워하랴"를 의미합니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모두 환상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현재를 견딜 수 없을 땐,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를 회상하거나 아니면 미래를 바꾸려고 하지. 당신이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다면, 부딪혀! 부딪혀! 부딪혀! 부딪혀! (145p.)"

혹시 눈치채셨나요? 이 작품의 제목은 『아기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동요 <누가 커다란 나쁜 늑대를 두려워하랴>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작중 '커다란 나쁜 늑대'를 언어유희 격으로 '버지니아 울프'로라고 대체한 것, 여러 인물들의 이름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 그리고 부부의 '불임'을 주제로 한 것 등에서 영혼이 메마른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작중 인물인 마사가 매달리는 '아이'의 실체와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반응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명료한데요. 이는 오히려 환상이 현실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작품에서 마사가 아이와 자신의 관계를 어떤 욕망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잊고 그 아이에 대해 말하고 싶어져요... 하지만... 나는 참아요... 나는 참는다구요." 여기서 '나를 잊는다'와 '나를 참는다'는 진술에 드러나는 욕망은 '나'를 지우고 지연시킨 자리에 아이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혹시 마사는 불모의 현실에 몸부림치며 또 다른 주어, 부재로서 실존하는 '소문자 아이(i)'를 고안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우리 자신의 욕망에 덧씌워진 환상을 인정하고 그 감춰진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 주체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끌어가든 끌어당기든, 의자를 책상에 바짝 붙이는 일. 그것은 분명 삶의 지속과 꿈의 가능성을 펼치는 길이라고요.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척 탐구 - 에드먼드 버크(김동훈 옮김, 마티, 2006)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의 이유

서양 미학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두 개념은 ‘숭고’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18세기 이전의 미학자들은 그 둘이 차이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15세의 나이로 영국 최고 명문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신동이자 문필가이며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가 이 두 개념의 차이를 정의합니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신경조직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만족감으로 유도하고 숭고는 인간의 신경조직을 긴장시키고 수축시켜 우리를 공포로 이끈다.”

이 두 가지 개념을 예술이라는 액자에서 떼어 내 일상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고등학생 시절 비 내리던 봄날의 아침이 떠오릅니다. 등교 시간에 쫓겨 담장을 넘던 제 앞에 갑자기 노란 고양이가 튀어나와 종아리에 머리를 비벼댄 적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털의 부드럽고 서늘한 감촉, 가늘게 뜬 고양이의 노란 눈, 검은 아스팔트에 수놓인 벚꽃잎, 담장 사이로 불던 바람과 익숙한 학교 종소리... 고양이와 저 사이에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물감처럼 풀어져 한 폭의 인상화로 남아 있습니다.

숭고를 생각하면, 몇달 전 저녁 무렵의 한강 산책로가 떠오릅니다. 그날 저는 빛바랜 커튼을 뒤집어 쓴 유령처럼 우울했습니다. 늘 걷던 산책로에서 벗어나 인적 드문 한강변의 돌무더기 위에 앉았습니다. 뒤엉킨 날파리들처럼 잡념이 활개치는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었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바로 앞에서 "첨벙!" 하고 큰 물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하루의 마지막 햇빛에 모여든 날파리들을 향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물에서 걸어나온 커다란 어둠이 노을과 저를 집어 삼킬 때까지, 뭐라 설명하기 힘든 전율을 느끼며, 저는 낚시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제 잡념에 모여든 그 생생하고 두려운 날것의 이미지들로 밤새 원고를 완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님이 일상에서 느낀 아름다움과 숭고의 이야기가 궁급합니다.

"개인의 보존과 관련된 감정들은 주로 고통이나 위험이 있을 때 생겨나며 모든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한 감정이다. 어떤 형태로든 고통이나 위험의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인 숭고의 원천이다.(84p.)"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 정신과 박사 이근후 l 신사임당 (30분)

인정하고 분별하고 성장하라.

"우선 포장을 벗기는 일부터 해야 해요. 내 포장을 내가 뜯어야 해요. 나의 주인은 나에요."

📺여러분의 두려움을 마주하세요 - 조던 피터슨 l 조던 피터슨 공식채널 (10분)

두려움이 있는 곳에 성배가 있다.

"혼돈이 궁극적 현실이라면,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신화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정말로 방해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직면한다면 당신은 결국 그 안에서 질서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음보다 두려워해야할 것 - 강신주 철학자 l 마이크임팩트 (5분)

고개 돌리지 말고 죽음에 직면하라.

"꽃은 무엇을 무서워한다고요? 안 핀 것을 무서워한다고요. 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 모두 나의 일부" (제주 고려진 해녀) <IPKU> 2022.5.11.

*이번 주 Pick은 '더 나은 세상과 의미 있는 삶의 입구' <IPKU> 매거진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의 상황은 우리가 회피하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걸까요?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 감정은 불안과 걱정을 불러와 내적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이질적이지만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녀 고려진은 이 공포심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불안을 극복했습니다. 갑작스런 이혼으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 고려진 해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숨어지냈죠. 체육학 전공 후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활발하고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대인기피증과 만성 불안에 떨며 정신과 약에 취해 달라진 외모에 거울조차 보기 두려웠죠.

어린 시절부터 ‘물 공포증’이 심했던 그녀는 대학에서도 물 관련 과목을 이수하지 못해 학사경고까지 받았습니다. 그랬던 고 해녀가 시커멓고 드넓은 바다 한 가운에 홀로 남겨진 적이 있습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물’ 그리고 ‘바다’에 몸을 맡기며 공포심 역시 나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이제 당당히 해녀(海女)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 [칼럼] 두려움을 이기는 길- 강우일 베드로 주교 (한겨레 2021.01.07)

🎟 [칼럼] 죽음 공포, 참회의 단초 되다- 문현공 (현대불교 2022.04.25)

🎟 [기사] 마피아 전쟁의 공포에 카메라로 맞선 저널리스트 (한국일보 2022.05.16)

🎟 [전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서울미술관 2022.04.08)

✍️맺는 말

이번 호를 준비하며 살펴본 바, 두려움 관련 콘텐츠들은 두려움의 ‘극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대면하는 일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발걸음이라는 것이 공통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직관과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두려움 자체의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긴장 상태에서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멈춰 서서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렇게 각자의 두려움을 통과한 용기 있는 개인들은 또 다른 위협에 대한 대비를 하게끔 스스로를 추동하고, 소속된 공동체에 그 위협을 알려 두려움에 대한 면역력을 형성하게끔 돕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두려움이 없으면 어땠을까요? 안전벨트, 낙하산, 소화전, 들끓는 세계 여론과 전쟁 중 협상 테이블, 난민보호소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또 인문학적 연구와 미학적 탐구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아무것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어떤 마비 상태가 아닐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과도한 반응으로 제가 제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가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 호는 《위클리 지관》을 새로 맡게 된 제 자신에게 했던 말로 끝맺겠습니다.

‘그래,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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