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는' 데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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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심장혈관육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투병 사실을 알고 있던 많은 패션 사업 관계자들을 포함해, 전 세계 팬들이 애도를 보냈는데요. 이 소식이 한편, 국내외 리셀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한정판'을 둘러싼 마케팅 이야기들, 그리고 '요즘 애들'이 중시하고 있는 소비의 트렌드는 어떤 것인지 알아봅니다. 
👋  오늘의 에디터 : Zoe
사는 데 충실해서 살기가 팍팍해지고 있는 에디터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1. 💸그래서, 운동화 하나가 얼마라고요? 
2. 💎'사는' 데 진심인 요즘 애들 
3. 사기만 하나요? 팔기도 합니다
4. 👀가치와 경험을 삽니다

💸그래서, 운동화 하나가 얼마라고요?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질 아블로의 사망이 알려진 이후 그가 제작한 나이키 오프화이트 에어조던 레트로 하이 오리지널 운동화의 가격이 8,000달러를 넘어선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2017년 출시 당시 이 한정판 운동화의 가격은 190달러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죠. 명품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에서의 거래기록에 따르면 에어조던1X오프화이트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텐 모델은 사망 전인 27일 670만 원에 판매되었는데요. 버질 아블로 사후에는 1,100만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천재 디자이너로 기억되는 버질 아블로가 남긴 ‘유작’을 소장하려는 욕구가 리셀 시장을 뒤흔든 것이죠. 

이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희소한 제품에 대한 열망은 최근 소비 트렌드와 결합하면서 브랜드들에 다양한 시사점을 주고 있는데요. 명품으로 대표되는 값비싼 사치재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도 대중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높은 가격'보다 '얼마나 갖기 어려운지'가 그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버질 아블로가 남긴 다양한 스니커즈들(출처: GQ코리아)
일각에서는 이런 트렌드를 '과시욕'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에 고가의 제품 사진을 찍어 올리고, 한정판을 보유했다는 걸 대놓고 자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하는 시도라는 거죠. 그렇지만 최근의 소비 트렌드는 가격이 아닌 희소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희소한 제품이라면 가격과 상관없이 구매 의사를 가진 팬들이 몰리고, 오히려 그런 인기 때문에 기존 출고가 대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리셀이 되기도 하거든요. 모두가 일정 퀄리티 이상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희소성 있는 제품을 찾고,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수단으로 소비가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 '사는' 데 진심인 요즘 애들

이런 한정판 심리를 저격한 플랫폼들이 대폭 성장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한정판 리셀에 집중한 플랫폼 '크림(Kream)'을 시작으로, '솔드아웃', '번개장터' 등 다양한 스토어들이 한정판에 집중한 플랫폼을 앞다퉈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크림Kream 홈페이지)
크림(Kream)은 스니커즈부터 명품, IT 기기 등 다양한 한정판 상품으로 사업구조를 다변화하면서 시장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중입니다. 출시 1년 9개월 만에 누적 거래엑 8,000억 원, 누적 회원 수 190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죠. 크림의 전체 가입자 중 80%가 2030세대라는 것 역시 앞서 이야기한 젊은 층의 가치 소비 트렌드를 증명하는 수치입니다. 2030세대가 크림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앱을 통해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정판 제품들의 경우 특정 시기에만 판매되기 때문에 해당 기간이 지나면 구매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요, 크림을 통하면 본인이 구매하고 싶은 한정판 제품들을 살 수 있습니다. 

유사한 서비스로는 무신사가 내놓은 ‘솔드아웃’, 번개장터의 ‘브드즈트(BGZT)’ 등이 있습니다. 한정판, 혹은 레어템들을 모아 조금 더 쉽게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갖고 있으며, 이 한정판들이 짝퉁이 아닌 정품이라는 것을 시스템을 통해 검증하는 형태입니다. 무신사가 내놓은 ‘솔드아웃’은 9월 기준 MAU 15만 명을 돌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번개장터는 오프라인 매장의 고급화에 집중,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번개장터 중고거래 서비스와는 또 다른 결의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역삼동에 오픈한 ‘브드즈트 컬렉션’은 명품 컬렉션의 리셀에 집중하는 매장인데요. 샤넬, 롤렉스 등 유명 브랜드의 제품들을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 리셀한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죠. 

(출처: 솔드아웃 홈페이지)
이런 플랫폼들을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한정판 제품들은 대부분 수량이 아주 소수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그 제품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죠. 플랫폼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원하는 상품을 발견할 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사는 데 진심’인 사람만 그 상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트렌드코리아 2022>에서 김난도 교수는 이런 능력을 득템력(Gotcha Power)이라고 묘사하는데요. 득템력은 정보·시간·정성·인맥·운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희소한 상품을 ‘구매’가 아닌 ‘획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물건 그 자체라기보다는, 해당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들어가는 모든 노력과 시간, 그리고 재화를 발견하는 안목 그 자체를 모두 통칭하는 말이죠. 김난도 교수는 한정판 제품을 득템하기 위한 노력과 정보력이 있어야만 트렌드세터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될 거로 예측합니다. 뒤집으면, 이런 득템력을 장착한 ‘요즘 애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이들의 소비 욕구를 제대로 저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기만 하나요? 팔기도 합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런 한정판 소비가 단순히 명품 소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흔히들 프로슈머 (Prosumer)라는 단어를 사용하죠. 판매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이 단어는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는데요. 명칭에 걸맞게 2030세대들은 최근 자신들만의 가치를 더한 커스텀 제품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이디어스에서 ‘신발 커스텀’을 검색하면 다양한 작가들이 만든 커스텀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부터 아디다스, 컨버스 등 갖가지 브랜드의 신발을 직접 페인팅해서 만든 제품들인데요, 실제 판매되는 제품의 카피부터, 아예 처음 보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스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커스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인 제품들도 제법 많습니다. 
(출처: 아이디어스 '신발 커스텀' 검색 자료)
명품 빈티지 제품들을 커스텀해서 만들어진 가방, 의류, 액세서리 등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1인 디자이너가 커스텀한 빈티지 명품들에 대한 관심도도 높은데요. 대표적인 것이 WHLE라는 브랜드입니다. WHLE는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의 빈티지 제품을 구입해, 아예 처음 보는 형태의 가방으로 리메이크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번 레터를 작성하며 WHLE 대표님과 간략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구매하기엔 금전적인 부분이 있는 10~20대부터, 기존 명품 디자인에 싫증이 나서 ‘나만의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30~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약 2년 전쯤 빈티지 커스텀 전문 스토어를 처음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욱 관심도가 높아진 걸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고 하니 최근 이 트렌드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의류 쪽에 치우쳐 있던 커스텀 시장이 최근에는 명품 의류 단추를 이용한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상품들로 확장되어 가는 걸 실제로 확인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WHLE와 같은 스토어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었기도 하고요. 

리메이크되어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제품들 (출처: WHLE 인스타그램)
인터뷰를 통해 대표님이 강조한 것 역시 ‘가치’와 ‘희소성’, 그리고 취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해외 빈티지 커스텀 브랜드에 대한 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시작된 이 브랜드는, 희소성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더 슈 서전’과 같이 세컨핸드 커스텀 브랜드가 '브랜드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가치와 경험을 삽니다

한정판 마케팅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선호하는 전략입니다. 특히 주문 가능한 시간대가 정해진 라이브커머스와 같은 세팅에서는 '지금만 살 수 있는' 제품을 소개할 때 판매 효과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상 필요 없는 제품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시간과 수량에 제한을 두고 이 시간이 끝나면 구매를 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한정판의 마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죠. 

실제로 삼양과 함께 진행했던 불닭볶음면 판매방송에서 주걱, 라면기 등 불닭 굿즈들을 한정판으로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굿즈들은 별매품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라서, 방송 때만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한정판 사은품'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라이브방송 시작 직후 준비했던 몇천 개의 수량이 모두 완판되면서 급하게 수량을 추가하여 방송을 진행해야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에서 내놓은 ‘값비싼’ 기성품을 갖고 싶어 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정말 가격과는 관계없이 ‘나 혼자만 가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혹은 ‘세상에 몇 개밖에 되지 않는’ 제품을 원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경험이었습니다. 

한정판+커스텀 모두를 보여주고 있는 권지용의 인스타그램. 사고 싶어 안달난 팬들을 대거 양산하고 남을 전략인 것 만은 틀림 없습니다. (출처: 권지용 인스타그램)
누군가는 명품, 한정판, 과시 소비 등으로 이 트렌드에 대해 묘사하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비싼 제품에만 국한되어 이 트렌드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가치’에 충실한 소비를 하는 트렌드라는 느낌입니다. 소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맞닿아 있는 행위니까요.

브랜드 마케터의 입장에서 이런 가치 소비의 대중화는 사실 기분 좋으면서도 참 어려운 지점입니다. 더 좋고 더 비싼 상품을 기획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우리의 상품을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느냐를 숙제로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웬만한 제품들이 다 평균 이상의 성능을 갖게 되면서, 상품 그 자체의 성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재화가 그야말로 범람하는 시대,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한정판에 대한 2030세대의 열망은 어쩌면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는 트렌드는 아닐까요. 조금 더 소비자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러면서도 브랜드의 전체적 아이덴티티는 지켜가는 것 - 많은 브랜드가 시도하고 있지만,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는 그 전략에 대한 고민 해결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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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내가 돈 많이 쓰는 걸 왜 비난하나요?
에디터 ‹Zoe›의 코멘트
사실…저는 엄청난 소비요정인데요(실제로 주변에 소비 조장을 무지하게 하는 마케터이기도 하고요). 월급은 통장을 스쳐간다는 문장이 이렇게 찰떡같이 맞아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갖고 싶은 한정판은 많고 그렇다고 비어가는 통장이 고민되는 모든 분들께, 디에디트 언니들이 들려주는 이 영상을 추천합니다. 1년 전 영상이지만 여전히 마음에 울림을 주는 영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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