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레퍼런스 #권력 #가스라이팅
[vol.37] 2024-08-02

안녕하세요 님. 턱괴는여자들입니다.


서울은 변덕스러웠던 장마가 잦아드는 8월입니다. 그런데 비가 멈추니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네요. 문득 이 날씨를 뚫고 출퇴근을 하고, 땀을 흘리며 하루의 할 일을 해내는 우리가 정말 대단해요. 어느 곳에서 무얼 하시든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냅니다.   


그나저나 올 해의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벌써 8월인가요🧐? 잠시 프로젝트 기준으로 흘러가는 턱괴는여자들의 타임라인을 차분하게 되짚어보니, 저희에게 상반기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책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의 출간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 책을 손에 쥐고 어느새 첫 번째 독자를 만나는 북토크를 진행했어요(뭉글뭉글 감개무량🫧). 


6개월 넘게 깊이 잠영했던 바다를 처음으로 뭍에서 바라본 느낌이었달까요. 모더레이터로 함께해주신 '한밤의 빛' 김서연 편집자님과 관객분들의 깊고 흥미로운 사전 질문 덕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프로젝트에 대해 새삼스럽고 낯선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실존하는 우리들의 만남을 통과하면서, 턱괴는여자들의 생각과 해석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확장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저희가 왜 '구조적인 외로움' 중에서도 '노년'에 집중하게 되었는지 얘기해보려고 해요. 또 다른 관점과 영감이 자랐거든요. 🌱


☀️ 8월 첫번째 레터에서는- '노년의 이미지'에 대해 다뤄요

  • 인간 욕망으로 바라본 노년의 욕망
    내 욕망들은 나이가 들면 사라질까? 

  • 만들어진 이미지, 이미지 가스라이팅 
    우리가 보아온 이미지는 현실일까? 
  • 현실의 이미지 
    ㅇㅇ만 봐도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른데 
I. 인간의 욕망으로 바라본 노년의 욕망
시작하기 전에 - 
욕구(needs)와 욕망(desire)은 미묘한 차이로 구분되어 쓰입니다. 욕구는 '결핍된 상태'와 '생리적'인 뉘앙스에 방점이 찍히고, 욕망은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선망'과 '정신적'인 뉘앙스에 더 가깝다고 해석되고는 해요.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은 앞서 설명된 정의를 궁극적으로 모두 포괄하므로, '욕구'와 '욕망'이라는 표현이 혼용되어 사용됩니다. 
삶은 욕구와 동기부여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도 각자의 생애 주기,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라 좇고있는 것이 있을거예요. 가고싶은 학교, 하고싶은 일, 사귀고싶은 친구, 얻고싶은 평가와 인정, 나의 안전, 혹은 물질적인 것과 연계된 편의 등 그 카테고리도 내포된 의미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라이브로 흘러가는 시간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회고와 성장을 불러일으켜요. 무엇보다 '행복도'의 기준도 함께 선명해집니다. 

욕구의 힘은 반대로도 작동합니다. "네가 정말 원하는게 뭐야?"라는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을때, 삶은 조금 무기력해지는 것 같거든요. 구체적인 욕구가 구체적인 동기부여를 불러오는 법이니까요. 열망했던 대학에 입학한 후 방황하는 학생들이나, 금메달을 딴 후에 허무감을 느끼는 운동선수들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알고 보면 '욕구'와 '욕망'은 인간의 생애를 구성하고 견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20세기에,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며 인간의 행동 동기와 연관된 '욕구'를 5단계로 명쾌하게 정리한 심리학자가 있어요. '매슬로(Maslow) 욕구 단계설', 혹시 들어보셨나요? 
20세기 행태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이론은 현재 심리학, 경영학 등에서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위의 그림은 '매슬로'가 정리한 인간의 욕구 5단계입니다. 하위 욕구(1단계~)일수록 생존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상위 욕구(~5단계)일수록 정신적인 성취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슬로는 '욕구 단계설'을 확립하며, 하위 욕구가 먼저 충족되어야 다음 욕구로 향할 수 있고 상위 욕구일수록 더 많은 충족방법이 있다고 가정했어요. 각 단계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단계 '생리적 욕구' (식욕, 수면욕 등) : 인간의 신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
  • 2단계 '안전의 욕구' (신체적, 정신적 안정감) : 물리적 안전뿐 아니라, 고용안정 등 경제적, 사회적 안정상태도 포함
  • 3단계 '사회적 욕구' (애정, 공감, 소속감 등) : 대인 상호작용에서 충족되는 요소로, 한 조직을 구성할 때 조직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핵심 욕구
  • 4단계 '존경의 욕구' (가치 인정 등) : 내적으로는 자존감, 자기효능감, 자유와 연관되며 외적으로는 조직 내 지위 확보를 추구하는 욕구
  •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 : 최상의 욕구 단계. 채워야만 하는 결핍이 아닌 스스로 추구하는 생산적 욕구 단계

'매슬로의 욕구 단계'는 한 조직이 조직구성원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기준으로 삼는 지표이기 때문에 경영학에서도 필수로 배우는 이론입니다. 직원이 기업을 평가하는 성적표인 '복지혜택'도 결국 이중 어떤 단계의 욕구까지 커버하느냐가 관건으로 작용하죠. 더 큰 단위의 조직으로 확장하면 '사회' 혹은 '국가'가 있습니다. 후진국과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도, 사회 구성원에게 보장하는 욕구의 단계(생존, 안전, 교육, 공정한 보상 시스템 등)로 구분할 수 있고요. 

자, 이제 이 질문을 던져볼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한국 사회에서 몇 단계를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보다 긴 세월을 산 부모님은 어떤 단계에 있을까요? 우리와 부모님을 모두 포괄할 공통 질문으로 이렇게 묻는게 맞겠어요. 현재 한국 사회의 노년은 평균적으로 어떤 단계까지 보장받고 있나요? 
여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인천공항에 모이는 노인들 (출처 : JTBC News) (링크)
한국 뉴스에서 접하는 '노년' 관련 뉴스들의 주제는 대개 '고독사' '노인 자살율' 등입니다. 그만큼 보편적인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죠. 이 키워드를 '매슬로 욕구 이론'에 접목해 추측하면, 평균적인 한국의 노년은 2단계 '안전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노년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해, 3단계 '사회적 욕구'를 욕망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죠. '인천공항을 찾는 노인들'을 취재한 위의 뉴스를 보면, 은퇴 후 자유 시간은 많아진 데에 비해 이들을 환대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인식해 일종의 피신 장소로 인천공항을 선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욕구 이론'의 순차성으로 인해, 사실 생애 주기로 보면 노년이야말로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열망하고 이에 집중할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에게 욕망이 없는 노년의 모습이 익숙한 이유는 왜일까요? 그 힌트가 이어집니다. 
II. 만들어진 이미지, 이미지 가스라이팅
이미지 레퍼런스의 권력은 생각보다 더 엄청납니다. 우리는 보아온 것 안에서 상상하고 꿈을 꾸니까요. 이미지와 연관된 콘텐츠들-사진, 드라마, 영화, 광고 등-은 환상과 상상의 나래로 인도할 때엔 가장 파격적이고 효과적인 요소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가스라이팅에 최적화된 매체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힘을 모두 잘 보여준 사례가 있어요. 바로 배우 '김해숙'님입니다. 자, 일반적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는 노년들을 생각해볼게요.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역할은 대부분 은퇴 후 무기력한 가장, 까다로운 시어머니 혹은 한없이 자애로운 친정엄마입니다. 김해숙 배우도 이런 역할을 피할 수 없었고요.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연기력이 익히 알려진 그이지만, 스크린에서는 '어머님' 혹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누구를 수식하는 말일까? (확인하러 가기)
그런데 그가 조금 색다르게 등장한 광고가 있습니다. 작년에 등장한 BMW의 'Born BOLD' 캠페인이에요. 광고는 "우아함과 강렬함, 모든 것은 이미 당신 안에"라는 문구와 함께 김해숙 배우가 연기 인생 50년을 이끌어온 '열망과 에너지'에 주목합니다. 50분의 드라마에서 '어머니'가 되었던 그가 30초만에 '성취하고, 추구하고, 타오르는 여성'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미지의 힘을 더없이 크게 실감할 수 있는 대비이지요. 이 광고 이후에 40대 이상 여성의 BMW 세단 구매율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노년의 배우를 다루는 이미지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BMW 광고만 해도, 당시에 '파격 광고' '이색 광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으니까요. 만약 이런 이미지의 예시와 주인공이 수없이 늘어나고 다양해진다면, 과연 우리는 60대 여성을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로 떠올릴까요? 그리고 나아가, 60대 여성들은 자신의 올바른 모습이 '이타적이고 겸손한 모습'뿐이라고 생각할까요? 
III. 현실의 이미지
유튜브와 각종 SNS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중에 'What's in my bag'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 들어있는 소지품들을 스스로 소개하는 콘텐츠예요. 자연스럽게(물론 몇몇은 연출할 수도 있겠지요?) 즐겨쓰는 소지품과 구겨진 영수증 등이 공개되기 때문에, 가방 주인의 취향과 성격,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는 콘텐츠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보세요👀) 주로 2030 인플루언서들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해 소개하지요.
<Russian women's bag series> ©Sergei Stroitelev
여기 조금은 특별한 'What's in my bag'이 있습니다. 러시아 사진작가 Sergei Stroitelev가 찍은 '러시아 여성들의 가방 시리즈(Russian women's bag series)'예요. 그중 50대 여성들의 사진 4개를 소개합니다. 같은 50대의 여성이지만 그들의 소지품이 말해주는 성격과 배경 그리고 가치관은 모두 제각각이지요. 그들이 모두 '어머니'라고 할지라도요. 아니, 모두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 콘텐츠의 문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현실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당연한 다양성에 놀라곤 합니다. 스크린은 우리의 상상력을 얼마나 납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각자의 가방에서 하나의 아이템만 꼽더라도, 가방의 주인과 나눌 이야기들은 '가정' 외에도 무궁무진할 겁니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공개한 이후에, 주인공과 그들의 배경에 대한 질문을 여러차례 받았다고 해요.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어떤 질문으로 이어지는지의 연결고리도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이중 두 여성의 이야기를 공유할게요. 여러분은 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나요?
Natalia (58세, 경비원) 

"코약은 알레르기를 위한 약입니다. 하루 종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제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향수나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려서 코가 막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매니큐어 세트도 가지고 다니죠. 3일 근무하고 3일 쉬는데, 가끔 저녁이나 밤에 할 일이 없어서 앉아서 네일을 해요. 어릴 적 공장에서 일할 때 손가락 두 개가 심하게 다쳤지만 괜찮아요. 중성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매니큐어를 칠하면 아무도 제 구부러진 손톱을 알아채지 못하죠.
공장에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이제 40년 넘게 피우고 있습니다. 저렴한 담배를 선호해요, 월급이 적기 때문에요. 하지만 연금이 있어 나쁘진 않습니다.
저는 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성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는 전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Elena (56세, 회사원)

"미니 태블릿, 명함 홀더, 가방 깊숙한 곳에서도 바로 찾을 수 있는 분홍색 지갑, 샤넬 커버에 담긴 여권, 전화기-이 모든 것이 일하는 데에 필요해요.
화장품, 소분해서 가지고 다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 여행용 병, 빗, 치실, 가글, 여분의 스타킹도 필요해서 항상 늘 무장하고 다닙니다. 비즈니스 미팅이 자주, 가끔은 완전 예상치 못하게 잡히거든요. 치마를 입고 있는데 갑자기 스타킹 올이 나간다면 어떻게 협상에 참석할 수 있겠어요? 비즈니스 현장에 여성이 많지 않아요. 10% 정도죠. 그래서 우리는 (감시에 가까운)시선을 많이 받는 편이고 항상 흠 잡을 데 없이 보여야합니다.
성모마리아 카드는 제가 매년 찾아가는 발람 수도의 수도 원장이 주신거예요. 이건 매우 개인적인 거네요."

"보이는 만큼 존재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만큼 외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163 페이지 중 
🧐 💭

보이는 것의 힘, 여러분은 얼마나 실감하시나요? 이미지가 인간의 상상력과 욕구를 제한할 만큼 강력한 매체라는 것, 이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날 한국 노년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떤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았어요. 

장르를 막론하고 한국의 콘텐츠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고, 계속 보여주고자 하는지, 그 너머에 내포된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여정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뉴스레터를 읽고난 후에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해요. 익명게시판에 자유로운 의견 기다릴게요!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 참여 방법 :
    (1) 턱괴는여자들 인스타 팔로우하고 
    (2) 아래 링크에 댓글로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장소'를 남겨주세요!
  • 발표 : 8월 8일 (목), 인스타그램 DM 개별 안내
  • 활동 내용 : 
    도서 수령 후 15일 이내, 개인 SNS와 온라인 서점에 서평 각 1건 작성 (내용 중복 가능)

✳︎ 턱괴녀의 개인 메시지가 적힌 책을 보내드립니다.
✳︎ 베스트 서평을 써주신 두 분께는 작은 선물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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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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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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