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미 가지고 있지만 더 있으면 좋겠고, 배 부르게 먹었어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뭔가를 보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습니다. 끝까지 보고 싶어요. 소유의 대상뿐만 아니라 부와 성취, 인정에 있어서도 욕심을 누르기 어려워요. 지난주 일영모에 담았던 고성에서의 4박 5일 동안 제가 가졌던 것은 챙겨간 옷가지 몇 벌, 운동복, 신발 두 켤래 그리고 배고픔을 적당히 달랠 수 있을 만큼의 먹을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걸로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조금 나가면 무엇이든 살 수 있었지만 원하는 게 있어도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공백을 즐기며 정말 필요할 때 얻었어요.
고성에 다녀온 후 무소유론자가 된 거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소유욕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만 ‘없는 것’이 아닌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운 것 같습니다. 복잡한 생각들이 단순해지고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자극 없애려, 몇 달 째 똑같은 식사를 한다”는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알것도 같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바다 뿐이고 애초에 그 것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니, 오히려 자족하는 마음이 회복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탁해지는 것은 일순간이었어요. 불순물 걷힌 마음을 안고 도착한 서울 버스터미널은 연휴를 앞두고 사람들로 북적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위해 잡아 탄 택시는 도로 위에서 멈췄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짜증스러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유 없이 성급한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조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창 밖을 구경했어요.
지나치게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가지런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번에 생각해 보니 그런 삶은 물질의 풍요에 기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 땐 정렬이 흐트러지기 쉬워요. 뷔폐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수십가지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읽기 쉽거든요. 무턱대고 먹은 뒤 소화가 되지 않아 끙끙 앓고 싶진 않습니다. '소유'와 '대가'는 마치 시소 같아서 갖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지불할 대가도 커지기 마련인데요.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 고민 없이 선택하고 온전히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욕구의 근원을 살피고 앞서간 마음을 제 자리로 당겨오는 의식을 갖는 일도 꽤 즐겁습니다.
“그렇게 나는 적극적인 미니멀리즘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니멀리즘은 아니다. 나의 목적은 물건의 숫자를 줄이거나 욕망을 줄이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지기로 결정한 물건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지기에 그 물건을 통한 나의 욕구가 최대한 충족되길 원한 것이다.” P.36
고성을 여행하면서 선물 받았던 책 <도시인의 월든>을 읽으며 깊이 공감한 문장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미니멀리즘’을 예찬하는 글 중에서 가장 설득적인 문장이었어요. 원하던 것를 마침내 얻게 됐을 때의 첫 마음을 기억하나요? 요즘은 그 가치가 다른 것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첫 마음’의 설렘도 금방 잊혀집니다. 반면 내가 가지기로한 물건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노력이 곧 ‘미니멀리즘’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어요. 이 문장과 비슷한 맥에 닿아있는 성경 구절이 있어요.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7-9]
마음에 욕심이 커질 때 늘 떠올리는 구절이에요. 아름다운 자연을 앞에 두고 걱정과 불안이 눈앞을 가리지 않고 온전히 감사할 줄 아는 여유. 딱 그 정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은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무조건 아끼자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물질, 감정, 관계, 그리고 자극 안에서 생생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작이 길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일영모를 시작해 볼게요. 님 좋은 아침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