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되지도 않는 일로 군부에 약점을 잡히면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은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성폭력 문제를 나중에 해결하자고 하면 그때는 다섯 개가 천 개로 불어나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아시아여성] 시리즈 세번째 기사입니다. 6년째 내전 중인 미얀마를 들여다 봤습니다. 군부 쿠데타 이후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큰 문제는 바로 여성 대상 폭력인데요. 지역에 따라 군부와 반군부 세력의 지배력이 불분명한 곳도 있고, 검문소나 수용시설이 위치한 핵심 거점도 있습니다. 그러한 곳을 중심으로 군부가 자행하는 성폭력이 심각합니다. 초기부터 공포 통치에 나선 군부는 성폭력을 무기로 쓴 지 오래입니다.
가해자의 또 다른 축은 민주진영의 무장세력이나 민간인인데요.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한 총력 투쟁이 6년째 지속되는 상황에서 피해 여성이 민주진영 내 성폭력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미얀마 여성계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이 문제를 공론화했어요.
이 문제에 관해 미얀마 내부 사정을 자세히 듣기 위해 반성폭력 활동가 A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군부가 민주진영 인사와 그 가족에게 극심한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나이 등 신상정보는 가렸습니다.
A씨는 “법까지 약해진 상황이니 누가 피해를 당해도 범인을 찾을 수가 없고, 여성은 약한 존재로 쉽게 간주되고 있다. 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해만 지면 밖으로 아예 못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현지 치안을 설명했습니다. 해외에 망명 중인 임시정부나 군부에게 보호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쿠데타 이후 치안이 극심하게 나빠졌다고 했어요. 성범죄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A씨는 군부가 ‘강간하는 군대’로 불릴 정도로 성폭력을 무기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동시에 민주진영인 시민방위군 쪽에서도 가해자가 종종 나오는데, 이들이 “혁명군으로서 무기를 갖게 되다 보니 그 무기를 가지고 여성을 억압하고 협박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혁명군이라는 이유로 자신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냐’는 식으로 죄책감을 줘서 여성의 복종을 받아내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습니다. 제가 본 보고서에서도 가족의 안위를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식의 성폭력과 가스라이팅이 일어나고 있다고 짚었는데,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A씨는 “국민통합정부나 시민방위군 중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군부에) 약점을 잡히면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러한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나은 나라,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폭력 해결에 관한 논의가 ‘대의’ 뒤로 밀려나는 풍경이 어쩐지 익숙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군부가 생리대와 피임약 등의 유통도 조이고 있다고 A씨는 증언했습니다. 여성 신체·보건에 관한 통제를 무기로 동원한 것인데요. 생리대값이 쌀 2kg 가격에 맞먹을 정도로 치솟고 돈을 주고 구할래야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피임약이 없으니 성폭력 생존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네요. 이러한 현실을 조사하려는 이들조차 신변에 위협을 받게 되니, 미얀마 여성의 목소리가 외부로 알려지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