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정원 열세 번째 뉴스레터 2021.09.10 발행 안녕하세요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격주 뉴스레터 <호랑이의 쪽지 13호>입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는 9월이 왔습니다. 어느날은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지고 어느날은 한없이 쓸쓸해지기도 한답니다. 이번호에는 지난 여름방학동안 다녀온 무궁화동산의 무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여름꽃이긴 하지만 피고지고 이어피는 무궁화는 초가을까지 있으니 무궁화를 즐겨보아요! 최대한 내셔널리즘을 지양하며 쓰려고 했는데 무궁화를 찾다가 온갖 애국관련 정보는 다 본것 같네요 ㅋㅋㅋ내 안에 넘치는 이 애국심~ 호랑이의 식물산책 무궁화동산의 무궁화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에는 무궁화가 몇종이나 있을까요? 이번에 작정하고 세어보려했는데 정말 많은 종류의 무궁화가 무궁화동산 안에 있더라구요. 장미 종류가 굉장히 많은것처럼 무궁화도 300여종이 된다고 해요. 무궁화동산에는 새아침, 화랑, 아사달, 선녀 같은 꽃이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프로파간다 느낌의 다양한 무궁화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사실 크게 차이나는 몇종을 제외하고는 식물초보에겐 그것이 그것같은 느낌을 주긴 했지만 아름다운 무궁화를 잔뜩 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원래 이곳은 그 유명한 “궁정동의 안가” 가 있던 곳이랍니다. 안가는 뭔가 안채같은 느낌을 주는 느낌이었는데 안전가옥의 줄임말이라고 하는군요. (오오 미드에서 FBI가 제공하는 세이프 하우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쏜 곳으로도 유명한 궁정동 안가는 중앙정보부장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과 측근들이 술자리를 하던 만찬동(나동) 등 여러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10.26 사건이 벌어진 사건이 일어났던 만찬동은 신군부에 의해 철거가 되지만 나머지 안가들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 어두운 군사정권을 상징했던 남은 안가를 모두 철거하고 무궁화동산으로 조성하였습니다. ![]() 궁정동 안가 피격현장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현장검증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궁정동 안가 철거 출처: 1993.03.12 한겨레 ![]() 무궁화동산 개장일 출처: 1993.07.02 경향신문 무궁화는 꽃 색깔에 따라 단심계(백·홍·자·청), 배달계, 아사달계 등으로 분류됩니다. 무궁화동산의 무궁화 꽃이름은 굉장히 애국심을 떠올리게하는 이름들이 많답니다. 구분이 은근 힘들지만 새로운 무궁화꽃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 ![]() ![]() ![]() 본래 무궁화공원에는 무궁화보다 각종 야생화와 소나무, 느티나무가 많았는데요 2018년 두산그룹과 관리주체인 종로구청이 협약을 맺어 무궁화 14종 3000여 주를 심고 3년간 무상으로 관리해주기로 하면서 현재의 공원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네요. 히비스커스 식구들 무궁화랑 비슷해서 헷갈리는 꽃을 소개합니다. 사실 어찌보면 다 히비스커스 계열의 친척이긴하죠. 따뜻한 지역에 피는 하와이 무궁화(Hibiscus rosa-sinensis)는 말레이시아의 국화입니다. 우리 무궁화와 같은 아욱과 식물이죠. 화려한 꽃이 매력인 하와이 무궁화는 아침에는 꽃색깔이 옅지만 낮이 될수록 색이 진해진다고 해요! 길을 걷다 마주친 부용화는 무궁화랑 정말 비슷하게 생겨서 무궁화인가? 아니면 접시꽃인가? 헷갈리기도 한답니다. 개인적으로 무궁화 보다 좀 더 청초한 매력이 있어서 여름꽃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답니다. 부용꽃을 미녀에 비유한것도 어쩐지 이해가 가는 느낌의 꽃이랍니다. ![]() 하와이 무궁화 출처: 스미소니언 가든 (https://gardens.si.edu) ![]() 서울로7017에 핀 부용꽃 궁정동 무궁화동산 접근성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에서 도보 15~20분 버스: 효자동/통인시장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5분 휠체어 유모차 접근가능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 없음 아욱과 무궁화속 식물인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입니다.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무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꽃들은 미적, 생태학적, 혹은 건강식품 의미가 강조된다면 무궁화는 압도적으로 역사와 상징적 의미가 강조되는 꽃이더라구요. ![]() ![]() 무궁화 꽃은 7월부터 10월까지 꽤 오랜 기간 볼 수 있습니다. 무궁화 꽃은 아침에 피고 저녁이 되면 시들어서 떨어지는데, 다음날에는 이어서 다른가지에서 새 꽃이 핍니다. 무궁화만이 이렇게 이어피기를 하는 식물은 아니지만, 이런 특성 때문인지 일제강점기때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무궁화의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입니다. 여름철에 냉침해서 우려내면 빠알간 예쁜 색깔에 새콤하고 맛있는 그 히비스커스랑 같은 종류여서 무궁화도 차로 마실 수 있다고 해요. 맛은 우리가 아는 히비스커스 차랑 좀 다르게 구수한 맛이 난다고 하네요. 무궁화라는 명칭은 16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고합니다. 한자로 근화(槿花), 목근(木槿)으로 쓰기도 합니다. 몇년전 한 교수님이 낸 칼럼과 책에서 무궁화는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강요한 꽃이라는 의견을 냈는데 이를 반론하는 자료들도 상당합니다. 무궁화가 새삼 이렇게 사랑받는 꽃이었나 싶을정도로 무궁화 하나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정리해 둔 까페도 있더라구요. 무궁화에 관한 역사관련 논쟁이 궁금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무궁화에 대한 논란뿐만 아니라 식물자료를 찾다보면 우리에게 사랑받는 식물 중 일제시대 논란이 있는 것들이 꽤 있는 것이 씁쓸합니다. 많은 식물들이 일제시대에 들여오고, 분류되고 연구되어서인지 이것이 과연 우리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한 미감은 아닐까? 늘 의심하고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무궁화는 일제가 강요한 국화이다 라는 의견 (강효백) 💬 무궁화는 일본꽃이라는 주장을 비판한다는 의견 (조현래) 💬 국가기록원, 국가상징 무궁화의 내력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일제강점기때부터 유행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같은 멜로디의 노래와 규칙이 똑같은 일본의 놀이가 있거든요. 술래가 “다루마상가고론다!” (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오뚝이(달마)가 굴러갑니다? 일까요? 해석이 제각각 ㅠ) 하고 부르고 뒤돌아보면 움직이면 안되는 것도, 술래에게 잡힌 친구를 손으로 끊어서 다같이 도망가는 것도 똑같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무궁화 보급 운동에 힘썼던 남궁억 선생님이 일본놀이 속 노래에 무궁화를 넣었다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서동요 같은것이려나요?) 예전에 저희끼리 고무줄 아카이브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데요. 충격!고무줄 놀이는 이제 더이상 어린이들이 하지 않는 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동네에서 하던 노래랑 동작이랑 아카이브해보자는 거였는데 저도 유정도 어릴때도 현재에도 딱히 고무줄에 능하지 않았던 몸치에다가 늘 말로만 온갖 것들을 기획하는 버릇탓에 까만 고무줄만 인터넷으로 사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요.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지만 많은 어린이 놀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태속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요즘 어린이들에게도 꾸준히 인기가 많더라구요. 같은 동네나 학교에만 통용되는 특이한 변칙이라던가, 말을 빨리했다 느리게 했다하면서 다가가는 아이들에게 혼동을 주는 것까지 제가 어릴때랑 똑같아서 신기하기도 했답니다. 애국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무궁화라는 단어를 일부러 택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 사랑받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놀이는 계속 이어피는 무궁화의 생태와도 비슷한 모양인것 같습니다. 무궁화와 남궁억 교정에 무궁화를 심고 민족사상을 고취…. 출처: 1933.12.14 조선일보 오늘날 무궁화가 애국심의 상징이 된 것은 남궁억(1863~1939) 선생님의 무궁화 보급 운동의 영향일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남궁억 선생님은 강원도 홍천에 모곡학교를 세우고 학교안에서 무궁화를 길러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무궁화를 통해 한민족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1932년 동아일보 기사(1932.02.28)에 의하면 모곡학교의 무궁화는 우편으로 30본이상 주문이 가능하고, 묘목은 우편으로 발송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100년전에도 식물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었다니 신기하죠?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원예가의 열두달> 내용중에도 식물 카탈로그를 보고 우편으로 씨앗과 묘목을 주문해서 받았다고 하니 세상은 어쩌면 크게 바뀐것 같으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933년 일제는 남궁억이 교내에 무궁화를 심고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고, 무궁화 묘목을 팔면서 민족주의를 고취시켰다는 죄목으로 검거하고 묘목을 불태우는 사건도 있었다고합니다. 남궁억 선생님의 무궁화사랑은 다방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당시에 한반도 지도그림에 무궁화가 채워진 자수본을 보급하여 애국심을 북돋았다고 알려지고 있어요. 이 자수본은 전국적으로 유행해서 해방이후에도 꽤 오랜기간 수놓아졌습니다. 호랑이의 정원과 가까운 영천시장근처 석교교회 마당에도 남궁억 선생님의 무궁화 묘목을 심은것이라고 전해지는 무궁화 나무가 2그루 있답니다. 1920-30년대 무궁화 자수 출처: 독립기념관 무궁화 자수 (광복이후) 출처: 최용신기념관 생활 속의 무궁화 가만히 둘러보면 무궁화는 정말 많은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일단 국가상징이기때문에 국가 공문서, 대통령 관저, 집무실, 국가 임명장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답니다. 생각해보면 태극기를 꽂는 깃대의 깃봉도 무궁화 꽃봉오리였더라구요. 국회의원 배지의 무궁화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상징도 있지만 어린시절 받았던 상장, 학교 뱃지처럼 우리 곁에 가까운 무궁화를 모아보았습니다. ![]() 국회의원 배지. 구매가격은 35000원이지만 아무나 달 순 없는 배지이죠.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국회 기념품 재떨이 1990년에 제작한 무궁화 문양의 디테일을 살린 재떨이...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궁화호 1977년 신설된 열차 등급인데 무궁화호라고 이름이 붙여진것은 1984년이라고 합니다. 중간 등급정도의 대중적인 열차였지만 이제는 노후화로 인해 통근열차류를 제외하고는 제일 낮은 등급이 되었답니다. 유선형의 파란색을 포인트로 한 KTX 열차를 더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점점 노선이 축소되고 있지만 다홍색과 파랑색의 기차가 더 기억속에 익숙한 열차랍니다. 이름이 무궁화호지만 딱히 무궁화를 테마로 한 디자인은 발견할 수 없었답니다. ![]() 지난 2105년 무사고 100만㎞ 달성한 무궁화호 출처: 미디어펜(사진=뉴시스) ![]() 무궁화 비누 광고 출처: 불명 무궁화 세탁비누 우리나라 최초로 시판 비누로 알려진 비누는 무궁화 비누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집에서 만들어 쓰거나 소규모로 생산하던 것을 1947년 무궁화 문양이 찍힌 비누를 공장에서 제조,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왠지 저도 빨래비누를 택할때는 무궁화비누를 택하게 되더라구요. (역사, 전통 이런데 휘둘리는 편ㅋㅋ) 모든 빨래를 직접 손빨래를 하던 1960-70년대 신문기사는 세탁비누값의 급등에 관한 기사가 많답니다. 무궁화비누가 인기를 얻자 1967년에는 무궁화 마크를 위조한 비누업체가 고발되었다는 기사도 있답니다. 무궁화 기와 국립기상박물관에 가면 기상의 역사를 전시한 것 이외에도 옛 기상청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것들도 볼 수 있답니다. 들어가는 안내데스크앞도 옛 건축부재를 오브제처럼 전시하였습니다. 기상청의 기존 건축자재를 철거한 뒤 전시한 1900년대 후반경으로 추정되는 무궁화 기와를 보는 순간 옛 주택 집집마다 장식되어 있던 무궁화 문양의 기와풍경이 떠올랐답니다. 최근 북간도 명동촌(윤동주가 태어난 곳)에 남은 20세기초 한옥 기와를 조사해보니 십자가와 태극무늬 그리고 무궁화 문양을 장식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배꽃무늬 같은데…) 옛 기상청의 무궁화 기와장식 100년전 북간도의 무궁화 장식기와 출처: 중앙일보(사진: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 아래부터는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입니다. 세 명의 친구가 각자 다른 주제를 대상으로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란과 생활 : 차를 마시는 경험 소재의 확대를 위해 <먹는 얘기>라는 제목에서 <란과 생활> 로 에세이 제목을 바꿉니다. 물론 여전히 먹는 얘기가 많을 듯 하긴합니다. 란은 제 이름의 한 글자이기도 하고 (머쓱) 동일한 제목의 난 전문잡지명(蘭과生活) 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조사했던 재개발 동네에 이 출판사가 이사간 후의 간판이 남아있었는데 자기애가 넘치는 제가 이걸 모티브삼아 제 활동명으로 삼기로 한거죠. ㅋㅋㅋ (예: 란과유정) 얼마전 인스타그램에 최지웅 디자이너님의 호돌이 수집품을 전시한 것을 소개하며 수많은 자잘한 것들을 모으다가 포기한 저의 인생에 관한 감정이 스쳐갔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수집품만이 아니라 호기심은 많지만 모든 것을 금방 질려하는 성격이라 오랜기간 꾸준히 해온 취미생활이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수많은 원데이클래스, 문화센터 수업, 여러 시도중에 저의 가장 오래된 취미는 차를 즐기는 것이더라구요.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차를 마시지 않겠냐는 거에요. 당시에는 보통 친구집에 가면 깎은 사과나 단감, 과자나 빵 같은것이 대접되곤 했는데 차는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 이외에는 잘 본 적이 없었답니다. 온갖 다구를 꺼내와 차를 우리며 어떻게 찻잔을 잡아야하는지, 차를 마실때는 어떤 점을 느끼며 마셔야하는지 등 다도를 가볍게 알려주며 어른들과 같이 둘러앉아 차를 마셨답니다.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처음보는 대나무 모양의 다식포크로 다과도 콕 찍어 먹고 차선으로 곱게 거품을 낸 말차도 그때 처음 마셔보았답니다. 처음보는 찻잔과 다관, 숙우의 신기한 기형들과 따뜻한 물로 찻잔을 데워주던 친구 엄마의 조용한 움직임, 맛있는 다과, 우리를 티타임 멤버로 끼워준 다정함까지 그때의 경험은 왠지 저를 차의 세계로 인도했고, 처음 맛본 어른의 차는 일본식 녹차였지만 이것저것 다양한 음미끝에 서양식 홍차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몇십년간 차를 즐긴 것 치고는 이것저것 많이 아는 전문가가 되진 못했지만 매번 따뜻한 차를 마시는 순간의 여유와 티푸드의 달콤함은 언제나 제 인생에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어흥> TV보는 이야기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하면 왠지 웃음거리가 되어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쉬는 시간에 혼자 문제집 폈을 때처럼 어딘지 모르게 쿨해보이지 않는다. 사실, 챙피해하지 않고 어디서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도 왠지 (나는) 창피하다. 그러면서도 인기있다는 자기계발서는 들여다보고 훑게 된다. 지금의 내가 맘에 들지 않고, 현실의 당면한 고통을 멋들어지게 이겨내고 싶고, 뭐 성공도 하고 싶고.
또, 심리학 또는 뇌과학에 기반한 자기계발서는 단순하고 대책없는 희망을 쏘아주는 게 아니라 좀더 스스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서 실행하는 부분에 목적을 두어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의지를 다시 불태우는 효과도 있다. 전자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뒤적인 자기계발서 중 작년 (내가 선정한, 출간 시기와 상관 없이 내가 읽은 시기 기준으로) 최고의 자기계발서는 'HABIT(습관)'이었다. 삶에 적용하고자 희망하는 규칙이 있다면 그걸 의지로 지키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이도 스스로 작동하는 습관으로 만들라는 얘기였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니 심상하게 들리지만 책으로 사례들을 읽으면 정말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게 하는 책이었다. 요새는 책으로 안보고 유튜브에서 해결하는데, '이리앨(이상한 리뷰의 앨리스)'이 몇달간 내가 의욕 없을 때마다 켜서 기독교 용어로(?) '은혜받고' 가는 채널이다. 온갖 종류와 심리상담과 자기계발과 성공신화담이 몇 분의 동영상으로 요약되는데, 오늘도 재택하다 지쳐서 멘탈 회복을 위해 잠깐 이리앨에 들어갔다 나왔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질문할게 아니라, 당신의 삶이 그 질문에 답하는 거'라는 류의 내용을 보고 왔는데, 이렇게 쓰니까 또 심상하지만 볼 때는 심쿵했다. 마치, 국가를 위해 뭘 할지나 생각하라는 케네디의 말처럼 사람 정신을 번쩍 뜨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남의 시선이라는 강압 없이 스스로 집안에서 하루의 일을 빨리 끝내야 하는 요새의 재택 일상에 이리앨이 주는 자극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어느 순간 이리앨도 물려서 먹히지 않기 전에 코로나가 끝나야 할텐데. <미돌> 꽃을 기다리는 마음 ![]() 천연동에서 호랑이의 정원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마당앞 작은 텃밭상자에 여러가지 꽃씨를 뿌렸습니다. 여름꽃인 글라디올러스도 심고 저희가 자주 나눔하는 봉선화도 심었지요. 언젠가 긴긴 덩굴을 펼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울 나팔꽃도 심었답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잘자라는가 싶던 글라디올러스는 잠깐의 꽃을 보여주더니 그 후로 감감 무소식이 되었고 봉선화는 줄기만 쭉쭉 뻗더니 흰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그나마 자라던 나팔꽃은 누군가에 의해 뽑혀지기 일쑤였지요. 그렇게 여름이 흘러 가을이 왔고 기다리던 봉선화의 꽃이 피었습니다. 풍성한 꽃은 아니었지만 그게 얼마나 기쁘던지 봉선화의 팔이 있다면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고싶은 심정이에요. 가끔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삶에 식물을 대입하여 꽃을 피우지 못해도 괜찮을걸까 하구요. 여전히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봉선화가 피운 꽃을 떠올리며 잠깐 기분전환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유정> 후기🍀 어흥: 이 쪽지를 받아볼 때쯤 저는 백신을 맞으러!
유정: 오늘부터 무궁화를 미워하지 말아야지 호랑이의 쪽지 13호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개인적으로 무궁화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국가주의적이고 과도한 애국심 자극에 활용되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뉴스레터를 찬찬히 읽어보니 무궁화는 조금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궁화는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죠 ㅎㅎ 주제가 무궁화인지라 최대한 애국적인(?) 내용은 빼려고 노력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지난호의 후기 중에 재미난 질문들이 있어 답변하려고 해요. 뉴스레터의 접근방식이 역사 계열이나 미술사쪽 전공사인것 같다고 질문주셨는데요 뉴스레터를 찬찬히 읽어주시고 정확히 짚어보시는 분들이 계신것 같아 감탄했습니다. 그럼 다음 14호도 기대해주세요. 독자 분들의 후기와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 호랑이의 쪽지 소개 동네의 식물탐험을 중심으로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쪽지형식이며 웹으로는 뉴스레터로 오프라인에서는 조그만 손바닥 책으로 발행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받아보던 쪽지처럼 별 내용이 없더라도 받아보는 순간에 살며시 지어지는 웃음처럼 삶에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랑이의 정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의 식물경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식물을 중심으로 환경과 마을을 연결하고 아카이브와 역사를 활용한 다양한 워크숍과 실험을 연구하고 진행합니다. 인스타그램: @tygertyger2020 tiger_garden@naver.com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