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셨어요.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큰 부족함 없이 자랐어요. 저희 집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서적인 학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주 평범했어요. 그런데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싶으신가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특별한 사건이나 떠오르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말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덮어왔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단어가 없었다고 느끼셨을지도 몰라요. 그건 이제까지 ‘방임 Neglect’이라는 개념 자체가 방임되어왔기 때문일지도요.
이제껏 학대Abuse는 방임Neglect과 늘 같은 카테고리로 묶여 있었어요. 그래서 ‘방임neglect’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고, 학대와 다르게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충분하지 않았죠. 이제는 방임을 겪은 사람들이 그들 자체로 구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고, 학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답니다.
방임이 뭘까?
1
아주 어린 아기가 우는데, 엄마가 젖병을 가져와 아이에게 물렸습니다. 아이는 젖병을 입에 문 채 울었어요.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안아주고 달래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울면서 젖병을 뱉어내자, 엄마는 한참 뒤에 또다시 젖병을 아이에게 물립니다. “얘는 또 배고프다고 하네.” 아기는 말을 할 수 없으니 항의 수단은 울음뿐입니다. 아기가 울고도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니 좌절감을 느끼고 더 크게 울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니 포기하고, 이내 배가 고팠는지 젖병을 받아 물었습니다. 그 채로 결국 잠에 빠집니다. “역시 배가 고팠던 거야.”
2
아이와 같이 카페에 왔는데,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아빠가 계속 핸드폰을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어요. 온전하게 아이 곁에 있어주지는 못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온전한 주의를 바라면서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시도해보지만, 아빠가 계속해서 핸드폰을 보고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으니, 카페에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결국 아빠는 아이를 끌고 밖으로 나갑니다.
3
하루는 동네 공원에 앉아있는데 너덧살 정도 되어보이는 딸과 엄마가 하는 대화를 엿들었어요. 딸이 엄마에게 “배고파”라고 칭얼거리는데, 엄마는 빠르게 딸의 팔을 잡고 “너 배 안 고파. 이제 가자. 너는 항상 배고프다고 하잖아.” 하고 한 마디로 딱 잘라 거절하더라고요. 곧바로 딸의 팔을 끌고 공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죠. 아이의 욕구가 양육자로부터 제대로 인지, 이해되지 못하고, 충분히 관심을 갖고 적절하게 충족되지 못했다는 거예요. 심리학 용어로는 misattunement라고 합니다.
아이의 신체적, 정서적 욕구가 충분히 존중받고 이해되지 못하고, 엄마, 아빠와 빈번하게 정서적으로 조율attune되지 못한 경우 방임의 위험을 갖고 있지요. 방임은 불운한 아동기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중 하나입니다. 불운한 아동기 경험이 한 사람의 신체, 정신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히는 ACE 연구에서 특히 정서적 방임은 가족 내에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중요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주 느끼거나, 가족 간에 서로 돌보거나 가깝게 느끼거나 서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방임은 많은 경우 언어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이전에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억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특별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욕구와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정서와 욕구를 쉽게 지나쳐버리고, 그것이 방임으로 이어집니다.
방임은 부재입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학대와의 차이죠. 방임을 경험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방임은 있어야 할 것이 부재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로 인지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들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는 뭐가 문제지? 하고요. 방임을 겪은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삶에 무엇이 부재한지를 알지 못하니까요.
방임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그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채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반응으로 어딘가 불편하고 공허한 느낌을 경험하죠. 마음 한켠에 채워지지 않는 깊은 구멍이 있다는 느낌으로 경험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방임을 겪은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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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도 그다지 환영받는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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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양육자가 자신의 욕구를 예민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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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정신적으로) 안전하게 느끼게 해줄 신뢰할만한 양육자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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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느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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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손을 뻗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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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혼자서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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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 ‘어른스럽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들 자신의 부모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부모의 부모가 되어 그들을 이해해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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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나쁜 일이 있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 자신 외에는 탓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늘 ‘나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방임을 겪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 정서적 방임을 겪은 사람들은 대개 이런 특징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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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조용하고, 내향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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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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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친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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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신체 감각이나 느낌에 둔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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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며 여러 어려움을 거칠 때면 굉장히 쉽게 소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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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함을 주는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특히 사회적인 관계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연결에 대한 결핍 때문에 연결을 무엇보다 애타게 바라면서도,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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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증후군(임포스터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경우도 매우 흔합니다. 그들 자신을 부적절하고 무가치하게 느끼고, 머지 않아 타인이 자신의 실체를 알아볼 거라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경험은 수치심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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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아무도 그에 응하지 않는 경험은 수치심으로 이어집니다. 불안과 우울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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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을 수 없고, 그들 스스로에게만 의지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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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문제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불안정 애착 혹은 회피형 애착을 갖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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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굉장히 어른스러워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린 아이의 미성숙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책임져줬으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방임을 겪은 아이들의 생존 전략
"내가 그 일을 도와줄게."
"너가 편한 대로 해도 돼. 난 괜찮아."
"내가 포기할게."
지속적으로 방임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것, 자신의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관철하기를 포기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자신의 욕구를 단절, 포기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게 되고,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구를 거부하며, 그 후로 자신의 욕구와 정서적인 어려움을 잘 인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특징이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미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불쾌한 대우를 받아도 자신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면서 그들은 자신이 사라져 있고 텅 빈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는 건, 우리 자신에게 부모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내 욕구가 제대로 인지, 이해되지 못하고, 충분히 관심을 갖고 적절하게 충족되지 못하는 거죠. 필요할 때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의 욕구에 충분히 귀기울이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그는 이러한 충족되지 않은 신체적, 정서적 필요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는 타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도우면서 스스로에게는 매우 적은 것을 필요로 하는 생존 전략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우선시하여 직업적으로 도움을 주는 분야로 커리어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내 모습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전까지 계속해서 어린 시절의 습관이 이어집니다. 과거의 모습이 나도 모르는 새 반복되지요. 아는 것만으로 특성이 사라지거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 방임에서 비롯된 나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변화의 시작점이 됩니다.
"나는 갇혔다" “깊은 심연으로 빠지는 것 같다”는 느낌의 실제 의미는 "도움이 필요하다" 또는 "돌봄이 필요하다"라는 것일 수 있어요. 늘상 익숙하게 느껴오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언어로 표현해보세요. 이를테면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정확히 ‘수치심’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중요해요.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해도 좋고, 일기를 써봐도 좋아요.
방임을 겪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허용하는 일입니다. 신체적,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스스로 찾아나서보세요. 처음에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 마음에 속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희생시키지 않고 조율하고 타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운한 사람을 서운하게 내버려두는 일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욕구와 감정을 포착하는데는 몸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 신체의 감각에 기민해지는 일련의 활동도 도움이 됩니다. 이를테면 감각 명상이나 요가 같은 수련을 시도해볼 수 있어요. 명상은 스스로 심리적인 안전감 safety을 회복하는 활동이기도 해요.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전을 회복하는 방법을 연습해보세요. 필요하다면 이 모든 과정에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변화는 너무나 더뎌서 중간 중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몰라요. 포기하지 마세요.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온 습관인 만큼 오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요.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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