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싶다면
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021.기억 캡쳐해두기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니, 좋은 추억들을 스냅샷처럼 남겨둬야 하는 것 같아요."

   금요일 저녁, 이직한 동료와 만나 근황을 주고받다가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말하자, 그가 전한 말이었습니다.

   이번 1분기는 유난히 정신이 없다 싶었습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눈 감았다 뜨니 벌써 금요일 저녁인 느낌이었습니다. 투두리스트가 끝나지 않아 조바심나는 평일을 보내고 나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합니다. 바쁘게 지내느라 통 펴보지 않았던 다이어리의 빈칸처럼, 기억에도 구멍이 군데군데 나 있습니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음미할 틈 없이 하루하루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료의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생각해보니, 바쁘다 바쁘다 노래를 불렀지만 다시 돌이켜보니 이번주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본가에서 먹은 고소한 고등어구이.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있던 순간.  동네 공원을 걷다 우연히 반가운 얼굴을 만났던 순간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금요일 동료와 나눈 이야기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 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참 즐겁고 좋은 일이야."라고 말했거든요.

   밀렸던 다이어리를 전부 메꿀 순 없지만, 자기 전 다이어리를 꺼내서 이번 주말 있었던 일을 적어야겠습니다. 뿌듯한 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아쉬웠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말이죠. 캡처를 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제 기억에도 스냅샷을 찍어두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현관을 나서기 귀찮을 때 동료의 말을 기억해야겠어요. 망설이지 말고 나가야겠습니다. 몇 없는 걷기 좋은 계절이니까요. 그리고 이제야 좀 마음 편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아늑한 둥지도 좋지만 둥지 바깥 세상에서 좋은 추억을 사냥하러 떠나야겠습니다.



-3월 19일,
다음주도 기억에 남을 순간들이 많기를 바라며
소얀 드림

PS. 편지를 보내던 찰나에 발견한 마지막 문장의 출처가 궁금해 찾아보았습니다. 영미권에서 해당 구절이 굉장히 자주 인용되는 듯 합니다.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진 않은듯 하네요.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순간순간의 경험이 오롯이 살아서, 각자의 이름표를 달고 내게로 다가왔다. ‘버스표를 찾아 헤매던 순간’, ‘베르니니를 처음 만난 순간’, ‘인생 파스타를 만난 순간’, ‘맛있는 아이스크림 찾기에 또 실패한 순간’, ‘시차 적응이 안 돼서 버스 안에서 졸던 순간’ 등.

-출처: 김민철, 하루의 취향

두 번째 문장

간을 모아두려는 것은 인생의 사소한 구석까지 들여다보려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런 순간에 머무르려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알고 나면, 앞으로 나를 좀 더 자주 그런 순간으로 데려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언가를 이뤄야 한다거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삶을 그저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매일에 작은 기쁨들이 숨어 있다는 것. 삶에는 아직 우리가 발견할 구석이 많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꼭 한참 앓고 난 뒤처럼 좀 더 잘 살고 싶어졌다

-출처: 김신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게 취미

세 번째 문장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어느 날이 아니라 어느 순간이다.

-체자레 파베세, This Business of Living

독자님이 건네준 편지
독자님들이 건네주신 따뜻한 글들을 같이 공유해요.
저도 어디서 본 문장인데 "일상을 유지해 온 내 사소한 노력들이 힘든 순간에 날 위로해준다."고 하더라구요. (....) 날 챙길 수 있고 날 온마음으로 대접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어서, 다들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 더 쓸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봄이었음 좋겠어요 :)
->저저번호에 남겨주신 답장이었습니다. 편집하다 생략했지만 중간에 독자님이 스스로를 챙기는 루틴 묘사가 왠지 좋아서 몇 번 읽어봤어요. 지금도 편지 쓰다가 싱크대 물때 한 번 닦고 왔답니다.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여유로운 봄날이길 바라봅니다. 

에궁 주말 동안 아프셨군요. 원래의 컨디션으로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요즘 공기가 건조하더라고요, 뜨신 물 챙겨드시면서 이번 주 잘 보내세요, 소얀 님👋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회복했습니다. 환절기 감기가 많더라고요. 독자님도 감기 조심하셔요.

(...)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뉴스레터 운영하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는데 덕분에 좋은 문장들, 이야기들 보면서 리프레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내 주시는 메일 잘 읽겠습니다. :)
->사연을 남겨주신 독자님과는 사회초년생때 만났지요. 기억하고 있어요. 이제 어느덧 10년차 사회인이 되어 서로 바쁜 현생을 살아가지만, 제가 쓰고 있는 편지가 독자님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잘 보고 있다고 소식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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