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채 잡힌 레거시 언론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오늘의 에디터 Friday입니다.

오늘은 두 달 남짓 남은 대통령 선거, 그 후보들을 심층 인터뷰해서 화제가 되었던 ‘삼프로TV’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  오늘의 에디터 : FRI
  정치색은 없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삼프로가 나라를 구한 사연
2. 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3. 머리채 잡힌 지상파
4. 그럼에도 삼프로가 나라를 구한다고 할 수 없는 이유

👓 삼프로가 나라를 구한 사연

  지난 12월 25일,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이하 삼프로)에서 윤석열, 이재명 두 대선 후보들을 인터뷰한 <삼프로가 묻고 정책이 답한다> 기획영상이 차례로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가족 이슈로 머리 아픈 뉴스만 많고 도통 후보의 자질을 평가할 만한 자리가 없었죠. 더군다나 토론을 거부하는 후보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섭외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에 “뽑을 사람이 없다”, “둘 중에 한 명이 우리 대통령이 된다니 한숨만 나온다” 등 답답한 한탄만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속내를 들어보기 어려웠던 그들이 유튜브의 한 채널에 출연했다니....? 게다가 대박 아니 초대박이 났다뇨. 숏폼이 대세라는 이 시장에 무려 1시간 반짜리 영상 두 개 조회수의 합이 900만회를 훌쩍 넘었습니다. 현재 이재명 후보 편이 604만회, 윤석열 후보 편이 314만회입니다. 두 영상의 성공에 힙입어 지난 2일 업로드되었던 안철수 후보 편 역시 125만회, 심상정 후보 편 44만회로 꾸준히 상승중입니다.  

출처 : 삼프로TV 채널
  뜨거운 건 조회수 뿐만이 아닙니다. “뽑을 사람이 없다”던 대선판이 “누굴 뽑을지 드디어 보인다”는 반응부터 “삼프로가 나라를 구했다”라는 격앙된 감탄까지, 특정 후보를 향한 것뿐만 아니라 영상을 기획한 삼프로에 대한 칭찬 일색입니다. 심지어 정치색을 띈 저급한 욕설이나 조롱 댓글이 가득했던 보통의 정치 컨텐츠와는 달리, 삼프로의 이번 기획 영상에는 댓글창도 문화 시민(?)다운 글로 가득합니다.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려져왔던 이미지와 다르게 후보의 깊은 철학과 정책을 제대로 듣게 돼서 놀랍다”등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성숙한 민주주의 장이 열리나 싶었죠.   
  후보들의 영상을 보고 생각하는 바는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조회수에서 보여주듯, 많은 사람들은 이재명 후보의 인터뷰 영상에 환호했습니다. 현란한 언변과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로 식견을 보여주는 모습을 윤석열 후보와 비교하기도 했죠. 반응은 여론이 되어 실제로 삼프로TV 방송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3-4% 상승했고 권순정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팀장은 “삼프로TV 출연이 중도층에서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앞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방송 이후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도 좋아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죠.

😶  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출처 : 아웃스탠딩(위) / 삼프로TV 채널(아래)
  삼프로TV는 김동환(김프로), 정영진(정프로), 이진우(이프로) 3명이 진행하는 유튜브 경제 방송 채널입니다. 팟캐스트로도 들을 수 있구요. 매일 아침 6시 30분부터 <월스트리트 모닝브리핑>, <오늘 아침 라이브>, 저녁 5시에 <컴퍼니 백브리핑>, <퇴근길 라이브>, <백브리핑> 그리고 밤 9시에 하는 <글로벌 라이브>까지 방송국의 한 채널의 편성표를 보는 것처럼 거의 하루종일 방송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Original 신과 함께>, <김프로의 삼프로 상담소>, <김학주 교수의 투자 바이블>, <신과 대화 시리즈>, <글로벌 머니토크>, <정선생의 구해줘 주린이> 등 경제를 비롯한 교양 프로그램을 다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방송횟수도 잦고 자체 콘텐츠도 많은 만큼 구독자 수도 182만명이나 됩니다.(이번 대선 후보 인터뷰 이후 13만명이 늘었다고 해요)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유튜브 뭐 구독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삼프로TV는 안 빼놓고 얘기하더라구요. 두번째로 많이 구독한다고 들었던 방송은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였는데, 역시 이진우(이프로) 프로그램이네요. 처음 경제 팟캐스트로 시작해 유튜브로 확장하고 점차 방송 프로그램을 늘리면서 이브로드캐스팅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슈카월드’의 슈카(전석재)와 공동대표를 겸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미디어 기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채널의 인기 요인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정보를 쉽고 재밌게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 후보 인터뷰 특집도 ‘삼프로가 대선 후보를 털어보는 시간, 삼대털’이라는 예능적 컨셉으로 각 대선 후보들의 경제 정책을 심도있게 다뤘기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죠. 물론 시끄럽고 난장판인 대선 형국에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진짜 정보가 필요했다는 흐름이 맞아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1시간 30분의 긴 인터뷰 내내 MC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세 명의 프로들은 튀거나 기삿거리가 될만한 질문을 부러 꺼내지 않으면서도 인터뷰이의 대화에 진심으로 몰입한 듯 보였죠. 후보가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으면 추가 질문이나 재질문을 통해 정말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드시 드러나게 구성한 점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또 질문으로 그치지 않고 후보의 대답을 전문적인 경제 지식을 섞어 요약 정리해주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죠.  

  💦 머리채잡힌 지상파

 삼프로, 이번 기획 잘 돼서 좋습니다.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네거티브 공세나 여타 잡음보다 후보의 자질 그리고 정책에 귀기울이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런데 이 바닥 종사자로서 제 심장을 콱 움켜쥐었던 댓글도 많았습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죽었다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메이저 언론들의 토론 진행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대한민국 언론개혁이 시급하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죠. 지상파의 위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쳐오던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공적인 영역’에서의 설 자리도 잃어버리다뇨. 이건 단순히 넷플릭스에 시청자 뺏기고 메타버스를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랑은 다릅니다. 그나마 저널리즘의 기준이 될 수 있었던 마지막 보루까지 탈탈 털린 상황이에요. 예능도 드라마도 아니고 ‘선거 방송’까지 잃다니!

언론, 왜 이렇게 되었나요?

 지상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직된 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의미로 하나의 방송국 채널에 프로그램별 할당된 편성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각 프로그램의 진행순서를 뜻하기도 합니다. 꽉 차있는 편성표가 PD, 작가, 엔지니어 등 많은 사람들의 일처리 프로세스를 간소화해주기도 하지만, 유연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TV는 그래도 드라마 연속 방영이나 결방, 확대 편성, 특별 편성 등 변화의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빅 이벤트가 없는 이상 무난하게 편성대로 흘러갑니다. 라디오의 경우 더더욱 큰 특집이 없는 이상 프로그램을 확대 편성한다거나,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며 편성을 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가능하지만 그런 시도가 많지 않았습니다. 라디오는 무엇보다 ‘같은 시간 항상 그 자리에’라는 감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미디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라디오에 대해서 좀 더 할 말이 많은게, 저는 이번 삼프로 영상을 보고 나서 TV 대선 토론의 부재가 안타깝기 보다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이 할 일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C의 <김종배의 시선집중>,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 등 역사도 길고 인터뷰 경험도 풍부한 디제이가 있는 시사 라디오가 많은데, 이런 퀄리티의 인터뷰를 뽑아내지 못한건 생방 프로그램의 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디오는 소리로만 이루어진 매체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 묵음(대략 5초)이 방송에 나가면 방송사고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라디오 프로그램은 1분 1초가 바쁘게 짜여진 코너가 착착 진행되어야 하고, 중간 중간 광고 듣는 시간을 PD 스스로 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관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원고에 예비 질문을 여러 개 넣어놓고 생방송 도중 오디오가 비지 않게 프롬프터로 실시간 문자나 지시 사항들을 디제이에게 써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작진이 상황을 인지하고 디제이에게 새로운 디렉션을 주기 까지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작진 판단 하에 더 나은 진행 방향으로 바꾸려고 해도 그 타이밍을 놓쳐버리거나, 디제이가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면 생방송 도중 방송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전에 모든 가능성을 인지하고 출연진과의 상의를 통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데일리로 진행되는 시사 라디오의 경우, 매일 뉴스와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해당 사안을 다루는 농도가 응축되지 않고 점차 희석됩니다. 의도치 않게 타성에 젖게 되는 거죠. 하루하루 주어진 뉴스를 빡빡한 코너 속에 욱여넣으려니 삼프로가 했던 퀄리티의 방송이 나오지 않고 뭐가 바뀌었는지 모를 지겨운 뉴스들만 반복되었던 겁니다.
 다른 하나는 전문성의 부재입니다. 방송국에서 경제 방송을 한다고 진행자, PD, 작가가 모두 그 분야에 능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두가 프로페셔널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같지만 그렇습니다. 대신 제작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그들의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배치하는 일, 그리고 그들의 작업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하는 것, 그게 제작진의 일일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중의 눈높이’라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층위가 다양하고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올드’한 방송을 만들어내는 거죠. 판을 깔아주는 작업이 현 콘텐츠 산업에서 반드시 실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번 삼프로 영상의 반응을 보았을때 사람들은 진짜 전문가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기가 없습니다.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국 정규직 직원은 그냥 이대로 방송하다가 은퇴해도 됩니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인센티브, 돈과 명예 등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괴로워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아, 욕심 많은 그들이 행복해지려면 회사 내 정치를 잘하면 됩니다. 많은 경우에 결정을 내리는 부장급 인사들은 조금만 버티면 은퇴를 하기에, 자꾸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는 직원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에 반해 삼프로는 스타트업입니다. 조회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합니다. 하루종일 일하지 않으면 레드오션에서 도태됩니다. 애초에 절박함에서부터 차이가 나는거죠. 지금까지 그래서 망하고 있었고, 이대로 아무 자극도 받지 못하면 진짜 망합니다.
  지금까지 삼프로를 찬양하고 지상파를 비판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지상파는 잘못하고 있는게 맞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절대적인 것은 절대 없습니다. 사람들이 삼프로 영상에서 간과하고 있는건 뭘까요? 일단, 그 영상들은 녹화방송입니다. 후보자 스스로 연출이 가능합니다. 물론 모든 후보들의 영상이 같은 환경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그들의 자질을 판단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 자질이라는 것이, 소위 ‘말을 잘한다’는 것으로만 평가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삼프로의 이런 좋은 기획 콘텐츠가 일회성으로 그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또 경제방송이니만큼 ‘경제 정책’에 어젠다가 치우쳐있었죠. 지금 가장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이슈라는 것은 알지만, 경제방송인 삼프로는 제 몫을 했고 이제 다른 영역에서의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 무엇도, 하나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지상파, 뉴스채널 등 레거시 미디어도 나설 때입니다. 삼프로가 판을 깔아주었으니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이제 우리 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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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Friday • 구운김 •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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