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완연한 여름의 물빛이 잔잔하게 흐르는 봄이다. 그리고 봄이 경과하며 활짝 핀 벚꽃과 중간고사도 완전히 저물었다. 이윽고 봄 축제가 시작됐다. 축제니 시험이 끝났느니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무렵, 여기 한 명의 대학생은 안타깝게도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고 교수님이 내주는 방대한 과제와 마주쳐 버렸다. 거기에 우리 학과만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참이나 일찍 시작된 기말고사 발표에 나는 정신없이 주간을 보내야 했다.
순천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엄마가 그리워지곤 한다. 뭐 먹었냐는 질문에 동기가 엄마 집밥을 먹었다는 말을 하면 어찌나 부러운지 가끔은 내가 초라해지곤 한다. 본가에 있을 때는 몰랐던 집안일들이 나를 짓누른다. 밥 한 끼 먹는 데에도 돈이 쪼들려 편의점에 들른다. 강의실 밖 복도에 서서 삼각김밥을 먹을 때면 그것이 내가 원하던 일상이었는지 혼란스럽다. 나의 집 경관이 점점 어질러질수록 나의 마음 또한 어지러워진다.
바쁜 며칠 이후 모처럼 휴일이 찾아왔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겹쳐져 휴강이 제법 길어졌기 때문이다. 어질러진 집을 치우려다 갑작스럽게 KTX 티켓 한 편을 끊었다. 엄마에게 본가에 갈 것이라는 문자를 한 통 보내고 안식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집을 떠나며 보이는 풍경은 빼곡한 도시 숲이다. 배차 간격 30분, 동네에서 동네로 넘어가는 시간 1시간. 매연 가득하고 도로가 가득한 도심이다. 이전에는 어디를 가기 위해 40분 버스를 타는 것도 버거웠는데 이제 40분 이동은 기본이다.
사실 아직도 이 길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면서도 복잡한 경기도 교통과 서울의 풍경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기차에 올라타고 한숨 자기로 했다. 수속을 받고 표를 끊고 올라탄 기차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운 갈대밭의 광경을 떠올리며.
우리 집을 가는 길은 갈대밭이 참으로 빽빽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할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며 항상 듣던 말이 어쩜 저렇게 갈대가 예쁘냐는 말이었다. 물론 봄에는 갈대가 없다. 갈대가 없는 계절이면 대신 푸르른 잔디가 길게 솟아있었다. 낮은 시야에 비치는 잔디는 키가 굉장히 컸다. 그때는 그런 녹음을 보는 것이 지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나도 잔디마저 예뻐 보인다.
잠에서 깨어나자 기차는 종점에 다다랐다. 나는 짐을 들고 허겁지겁 내릴 채비를 했다. 곧 도착한 기차가 서서히 멈췄다. 땅에 발을 딛고 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창문을 보며 집에 가는 길을 멍하니 바라보자, 들풀들이 보인다. 자신의 몸을 좌우로 흔드는 하얀 꽃과 푸른 잔디가 어쩐지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곧 내릴 정류장이 되어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고 내린 뒤에는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집이 정겨웠다. 분명 익숙한 집인데도 어색한 느낌이다. 빌라 입구에 들어가 3층으로 향하여 문을 열자 익숙한 집의 체취가 느껴졌다. 엄마는 외출 중인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놓기 위해 연 방문 안이 깨끗히 정돈되어 있었다. 집의 풍경이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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