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는 신작 『유산(Inheritance)』에서 상속, 유산, 문화유산 등의 의미를 폭넓게 아우르는 독일어 개념 '에르베(Erbe)'를 렌즈 삼아 후기 현대 사회를 정밀 타격한다.
저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부동산과 같은 물질적·금전적 유산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개인적 트라우마와 세대 간 전승되는 정신적 상흔, 국가적 문화유산과 약탈된 유물, 그리고 현대의 삶이 남긴 지구적 결과물인 쓰레기, 영구 화학물질, 파괴된 열대우림, 기후 변화까지 모두 포함하여 유산의 범주로 확장한다.
유산이라는 개념은 이미 세상을 떠난 자, 현재를 살아가는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사이의 관계를 전제하며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초세대적 축'을 형성한다. 이 책은 후기 현대 사회의 개인, 사회 집단, 국가 공동체, 나아가 인류라는 종 전체가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물려받았고 앞으로도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특히 우리가 물려받는 유산이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순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인 '음의 유산'일 수 있음을 고통스럽게 자각하는 현시대의 특수성을 짚어낸다. 나아가 대중문화적 현상부터 공공 동상 철거 논쟁, 세대 간 정의, 기후 변화 담론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이 유산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쾌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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