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전문팩트체커가 사실 검증한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 : 오늘은 탈시설과 관련된 팩트체크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님 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출석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8월 말에 진행된 이 심의에서 정부의 발표 내용을 두고 제대로 된 탈시설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사실인지 궁금해요.
한국 정부는 올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출석해서 2021년 8월 2일에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내용과 유사한 답변을 했는데요. 이 로드맵이 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정부가 발표한 국가보고서와 관련 예산 자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영상회의록, 협약 일반논평 5호 등을 확인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봤어요.
😗 : 한국 정부가 위원회에 출석해서 어떤 내용을 발표했는지부터 살펴봐야겠네요.
이번 심의에서 조지 마틴 위원은 한국 정부에 “탈시설의 정확한 시기와 일정, 그리고 얼마큼의 예산이 투여될 계획인지 일반논평 5호에 기반해 설명해 달라”고 질의했고요. 한국 정부의 담당자인 염민섭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협약 준수를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2021년 8월에 발표한 로드맵 내용을 나열했어요.
주요 내용은 “2022년부터 20년간 지역사회의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충하면서 자립을 희망하는 장애인들부터 우선 지역 사회로의 거주 전환을 지원한다”라는 것이고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시범사업을 실시”, “2022년에는 10개 지역에서 20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2022년 예산은 43억 원”이라는 점도 답변에 포함되어 있어요.
😏 : 내용을 그냥 읽어보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분히 이뤄진 것 같은데 문제가 있나요?
하나씩 살펴보면 무늬만 ‘탈시설’이라 지적할 수 있어서였는데요. 먼저 3년간의 시범사업을 포함해 20년간 탈시설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전체의 시설에 거주 중인 장애인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 : 시설에 거주 중인 장애인을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게 탈시설 정책인데, 어떻게 이런 정책이 나온 거죠?
한국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이 탈시설을 ‘권리’가 아닌 ‘선택’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어요. 한국 정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장애인이 자신의 주거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시설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배제한 ‘수용 공간’이 아닌 ‘거주 공간’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거죠.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국 정부의 로드맵 발표 후 하루 뒤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장애인에게 시설 입소는 선택이 아닌 강요였다. 애초에 선택해서 들어간 게 아닌데 나올 때 욕구를 따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하기도 했고요.
🙄 : 권리를 선택으로 정의한 문제 말고도 다른 원인이 있나요?
한국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은 시설을 소규모화 한다는 방향에서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어요. 그래서 단기‧공동생활가정을 탈시설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고요. 2021년 12월 기준 단기거주시설 164곳에 거주하는 1,792명, 공동생활가정 753곳에 거주하는 2,823명의 장애인은 한국 정부의 탈시설 정책에서 제외된 거죠.
한국 정부 담당자인 한영규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통합돌봄연계TF 팀장은 “탈시설 로드맵에는 거주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 구조를 만드는 것과 현재의 시설을 변환하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현재 운영되는 시설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탈시설 로드맵은 시설을 쪼개어 ‘정상화’해서 단체거주의 틀을 벗어나려는 계획을 제시한다”라며 시설 재편 계획임을 인정했고요.
😦 : 소규모화 재편 계획은 왜 문제가 되나요?
탈시설 정책은 말 그대로 장애인이 사회에서 배제되도록 강요받았던 공간인 시설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본질인데요. 소규모화 재편 정책은 시설을 축소하는 것일 뿐 결국 시설이 가진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와요.
실제로 유사한 정책을 헝가리에서 시도했는데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0년 4월 헝가리의 소규모 시설 전원 정책에 대대적인 개선 권고를 내렸어요. 소규모화 재편 정책을 수정하고 효과적인 탈시설화를 위한 계획 수립을 위해 장애인단체와 협의하라는 내용이었고요.
😟 : 협약 이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권고가 내려졌겠죠?
맞아요. 협약 19조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 이행에 대한 지침과 유권해석을 담은 일반논평 5호에 관련 내용이 있는데요. 위원회는 물리적 건물뿐만 아니라 문화적 요소 등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다양한 원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시설에서 나와 더 작은 시설로 가더라도 장애인이 고립돼 있다면 완전한 자립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래서 ‘시설화의 요소’까지 없애는 게 위원회가 말하는 탈시설이고요. 한국 정부의 로드맵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 :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해외사례와 협약의 쟁점을 함께 확인하니까 왜 협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는지 쉽게 이해가 되네요. 한국 정부가 발표한 예산도 지적받고 있던데 어떤 문제인가요?
한국 정부는 올해 시범사업 예산으로 43억 원이 책정됐다고 발표했어요. 표면상으로는 발표 내용이 사실이죠. 하지만 한국 정부가 발표에서 누락한 내용이 있어요. 바로 국비 비율인데요. 예산에서 정부가 담당하는 국비는 50%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50%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데요.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어떤 비율로 비용을 부담할 건지는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했어요. 이렇게 되면 지자체의 의지와 재정 상태에 따라서 시범사업의 진행이 달라질 수 있어요. 정부의 발표와 달리 시범사업이 충실하게 수행되기 위해선 조건이 따르는 거죠.
😥 : 43억 원이라는 예산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산을 뜯어보면 다른 문제도 있었군요.
한국 정부는 위원회에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을 발표했지만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 예산이 훨씬 큰 규모로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어요. 내년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 예산은 6,290억 원인데요. 내년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이 48억 원 책정됐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죠. 한국 정부가 불리한 내용은 숨기고, 유리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표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 오늘의 결론을 정리해 볼까요? <탈시설로드맵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준수하고 있다?>는 “절반의 사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