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역에서 15분 정도 꾸준히 걸으면 오무사를 만날 수 있다. 서촌의 고즈넉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 외관에서부터 느껴진다. 흰색 벽과 나무로 된 간판, 앞에 작게 놓인 작은 벤치까지 사진만 봐도 서촌임을 알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진에서 느낀 그대로, 따뜻한 원목이 사방을 에워쌌다. 테이블과 의자까지 나무로 되어있고 테이블마다 은은한 조명이 하나씩 놓여있다. 영화 겨울왕국에서 보던 눈 덮인 산장 내부의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오무사>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전구 가게 이름이다. 전구 가게지만 포근한 공간으로 등장한다고 하는데 다시 공간을 둘러봐도 정말 잘 지은 이름이다.

내부는 4인 테이블 대여섯개와 창가 자리에 놓여있는 테이블까지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다. 주말임에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조용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바를 찾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번 뉴스레터는 쌀쌀한 가을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편이길 바라며 기획되었다. 차가운 겨울에도 눈 속에서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동백뮬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아는 빨간 동백꽃과 다르게 노란 빛깔을 내는 티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향에서부터 꽃내음이 난다.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삼켜보니 티베이스 칵테일 특유의 깔끔함이 느껴진다. 차의 향이 천천히 입 안을 감싸는 것처럼 알코올 향과 단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장미꽃과 오렌지 향이 입안에 살짝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느낌도 난다. 마시기 전 느꼈던 꽃내음이 입 안에서 감도는데 약간 인공적인 향처럼 느껴졌다. 무시하고 마셔도 될 만큼 맛있는 칵테일이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인지하고 마셔봐도 좋을 것 같다.

‘백의 그림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한 술인 *압생트와 샴페인을 섞어서 만든 ‘오후의 죽음’이란 칵테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오무사에선 압생트와 **화이트 헤이븐 와인을 섞었다. 압생트는 녹색의 악마라고 불릴 만큼 도수가 높고 특유의 향이 강해 단독으로는 거의 마시지 않는 술이다. 그래서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이 압생트를 칵테일에 어떻게 녹여내는지가 관건이다. 압생트 칵테일을 모두 마셔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마셔본 것 중에서 가장 압생트다우면서 마시기 쉬운 칵테일이었다.

첫맛은 압생트 특유의 허브향이 담당한다. 이후 화이트 헤이븐의 상큼하고 청량한 과실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 뒤, 삼키고 나선 다시 압생트가 뒤를 채워준다. 일반적인 달콤한 칵테일과는 다르게 감칠맛이 나서 계속 손이 간다. 압생트의 향이 궁금하지만 시도해보기 두려웠던 사람들에게 초보자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칵테일이다. 입문용으로 즐기기에 적절하니 압생트가 궁금하다면 주문해보자.

*압생트 : 스위스에서 유래한 증류주로 허브계 약초를 넣어 초록색 색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도수가 50-70도 정도로 매우 독해 샷으로 마시면 바로 취한다고 해 초록 요정, 초록 악마 등의 별칭이 있다.
**화이트 헤이븐 : 풀네임은 화이트 헤이븐 소비뇽 블랑이다. 열대과일과 다양한 베리 향이 느껴지며 청량함이 특징이다.

*위스키 사워와 **쉬라 와인 종류 중 하나인 데이빗핀레이슨 더 페퍼 팟을 섞었다. 비주얼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단풍 낙엽처럼 위스키 샤워 위에 떠있는 레드와인이 신기함을 더한다.

마셨을 때 ***탄닌감이 약하게 느껴진다.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강하진 않으니 안심하고 마셔도 좋다. 32도라는 도수에 비해 독하지 않고 깔끔하게 넘어간다. 위스키 사워의 상큼함과 레드와인의 과실 향이 서로 조화롭게 맛을 만들어낸다. 아래에 소개할 플레이트와도 조합이 좋다. 단풍이 떨어져 있는 서촌 거리를 걷게 되면 다시 한번 생각날 칵테일이다.

오무사의 시즈널 메뉴로 이번 가을까지는 판매가 확정되었지만 겨울까지 연장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오무사를 방문한다면 시즈널 메뉴를 우선으로 시켜보자

*위스키 사워 :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로 레몬주스와 설탕이 들어가서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 쉬라 : 쉬라즈라고도 불리며 검은색에 가까운 빛깔을 띈다. 풀바디감을 선사하며 산도와 탄닌감도 강한 편이다.
*** 탄닌감 : 와인을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떫은맛. 포도 씨를 씹었을 때 나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드링킷 공식 빵 감별사 디자이너 피노가 인정한 빵이다. 푸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식감에 고소한 맛을 더하고 그 옆에는 통밀 크래커가 특유의 식감으로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함께 나오는 무화과 크림치즈와 럼에 절인 건과일 잼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잼 특유의 설탕 맛이 아닌 과일의 은은한 달콤함으로 승부한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빵과 크래커와 함께 먹었다. 거기에 포갠을 한 잔 더하니, 완벽한 가을맞이가 되었다.

오무사

ᑯ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9길 1

ᑯ 영업시간

   월 - 목 17:00 - 24:00

   금 17:00 - 01:00
   토 14:00 - 01:00
   일 14:00 -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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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의정원

: 오무사에서 걸어서 1분

차분한 분위기가 특징인 이곳은 스콘과 홍차로 대표되는 애프터눈 티 맛집이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티팟에 있는 차를 따라서 마시면 서울스러운 유럽을 만날 수 있다.

ⓒ헤르만의정원

풍류관 커피 클럽 서촌

: 오무사에서 걸어서 4분

무화과, 체리토마토 크로플이 나오는 ‘월광’ 흑임자 초코푸딩 ‘한라산’ 이름도 재밌지만,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디저트를 맛보자.

ⓒ 풍류관 커피 클럽 서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