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는 이미 시장에 정착한 기업이다. 매출도 20여 년간 큰 부침 없이 우상향했다. 왜 리브랜딩을 시작했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본격적인 리브랜딩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새로 정의한 모나미의 본질은 무엇인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메모하기 위해 펜촉과 잉크를 들고 다녔다. 잉크를 엎질러 원고가 훼손되기도 하고, 휴대하기도 좋지 않았다. 모나미는 14.5센치미터의 플라스틱 통에 펜대와 잉크, 펜촉을 넣어 그러한 불편을 해결했다. 그런 점에서 모나미는 대중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DNA를 갖고 있다. 그 본질을 표현하는 도구가 필기구였을 뿐이다. 모나미는 펜에 다양한 가치를 담아도 결국 문제를 해결한다는 본질은 유지한다. 그래서 나는 모나미가 ‘화려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특별함’을 갖고 있다고 본다.

디자이너적인 새로운 접근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수치가 아닌, 감정으로 접근해 보자고 생각했다. 데이터를 통해 브랜딩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정량화하기 어려운 지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를 떠올려 보면 쉽다.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옷을 선택하고, 단어를 선택하지 않나.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나미 제품은 목적을 갖고 사는 물건이라기보다는, 집에 하나쯤은 있는 공기와 같은 물건에 가까웠다. 그 고착된 이미지를 깨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역사가 있는 브랜드는 그 브랜드에 대한 인식도 단단하다. 리브랜딩 이후 사람들이 브랜드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는 건 언제부터라고 생각하나?

인식의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다. 완성은 없다. 그리고 그 ~ing 속에서 고객의 변화가 일어난다고도 생각한다. 모나미가 계속 변화한다면, 고객들은 자연스레 모나미를 새롭게 인식할 것이다. 누군가는 모나미를 “꼰대인데 멋있게 늙어 가는 기업”이라고 표현하더라. 문구는 우리가 60년 동안 계속 이야기해 온 것이다. 이제는 새로움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다.

새로움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주는 데 있어, 모나미의 컨셉 스토어가 주축이 된 것 같다. 왜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시도였다. 제조사와 도매상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유통을 책임지는 도매상으로서는 신제품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네임펜이나 플러스펜 같은 스테디셀러가 아닌 신제품은 몇 개 팔릴지 모르니 많이 사가지 않는다. 상품개발팀에서 실제로 근무하며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이렇게나 제품이 좋은데 잘 팔리지도, 알려지지도 않더라. 모나미의 좋은 제품을 갖고 고객과 직접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장이 들어설 자리와 최선의 비용까지 알아보면서 회사에 컨셉 스토어를 열자고 직접 제안했다.

시작은 도매상이었지만, 소비자로부터의 반응도 뜨거웠다.

컨셉 스토어는 일종의 공간 매체다. 소비자와 제품이 직접 만나고 소통해 나가는 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모나미를 알릴 매거진을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본 적 있는데, 공간으로도 충분히 모나미를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공간은 쌍방향적이지 않나. 간판이 매거진의 표지고, 들어가면 목차가 보이고, 이번 시즌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파트가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신제품과 관련한 파트에서는 고객들이 직접 체험도 해보는 모습도 있었다. 물건을 많이 파는 것보다는 고객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스토어의 1차 목적이었다.

모나미 볼펜이라는 하나의 원형을 두고 공간, 체험, 한정판 등의 다양한 시도를 이어 갔다. 최근에는 의류 분야와의 협업도 준비 중이다. 리브랜딩 과정 중 모나미 볼펜이 쌓아 온 역사와 본질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모나미는 모두의 삶에 녹아 있는, 일종의 국민 브랜드다. 그래서 이제는 모나미가 삶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모나미가 패션 상품들을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패션은 삶과 가장 직접적인 분야다. 화려하지 않고, 담백한, 그리고 언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변화하려는 모나미의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모나미룩이라는 것도 이미 있지 않나. (웃음) 다양한 시도가 모나미가 지향하는 본질을 담고 있다면, 그건 아이템, 도구의 변화일 뿐이지 결국은 같다고 본다.

리브랜딩을 해나가면서 배운 게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에도, 지금도 똑같이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 진정성이다. 어떤 시도에 진정성이 있다면,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에는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진정성이 충분하다면, 실패는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고객의 숨은 니즈를 찾아서 계속 발전시키면 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마케팅 활동을 하다 보면 일관성을 갖고 진화하게 된다. 다른 사례를 무작정 베끼기만 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더라.

모나미가 꿈꾸는 다음 모습은 무엇인가?

많은 소비자, 모나미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언제나 모나미를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미래의 모나미가 어떤 기업이 될지는 모른다.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니, 호텔 사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웃음)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나갈 테지만 고객에게 필요한 것을 만든다는 본질, 일상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변화를 보고, 또 본질을 기억하며 사람들이 내일의 모나미를 궁금해했으면 한다. 모나미의 미래는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