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구(茶具)다. 다구라 함은 차를 우리는 도구를 총칭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보 다인의 마음을 뺏는 것은 늘 마셔도 질리지 않는 보이차도 아니요, 고요하게 차를 마시는 순간도 아니요, 차를 우려내는 차예사의 수려한 동작도 아니다. 바로 다구다.
모든 취미 활동에는 언제나 도구가 앞서는 법이다. 주위에서 골프와 낚시, 테니스, 자전거, 캠핑, 카메라, 오디오를 취미로 가진 지인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차도 별반 다를 것 없다. 차라는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다구가 중요하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다구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차계의 도화살 같은 존재다. 주변에서 차는 마시지 않아도 다구를 사 모으는 사람을 꽤 많이 보아 왔다.
이들을 비판할 이유도 없고 비판해서도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구를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품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운전은 못 해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예술품을 사 모으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을 알게 되고, 자동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차관에 앉아 있다 보면 차 이야기는 시큰둥하게 듣다가도 진열장에 올려진 자사호(紫砂壺)를 보고서는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을 목도하게 된다. 또 찻잔에 담긴 차의 이야기보다는 단아하고 우아한 맵시를 뽐내는 찻잔에 마음을 뺏긴 모습도 심심찮게 본다. 다구를 보고 그것의 관능적인 매력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들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다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다인의 길로 꼭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다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에 빠질 확률이 월등히 높다. 이것이 바로 다구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이다.
다인들 중 혹자는 이들을 물욕에 빠진 세속적인 이들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손을 들어 그 혹자의 찻장을 가리키겠다. 그곳에 쌓인 값나가는 차들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면 다구에 빠진 사람들을 욕하여도 좋다. 이것은 나의 다구 예찬론이자 다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다구는 다인의 길을 열어주고, 다구는 다인의 길을 떠나지 않도록 잡아주는 도구가 된다.
가끔 집으로 돌아와 차 테이블에 놓인 다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차를 마시려는 게 아니다. 차를 우리지 않고 그저 들여다보기만 한다. 잔 두께가 얇지만 단단한 경덕진(景德鎭) 찻잔과 차향을 더욱 좋게 해주는 흑금강 매화 자사호, 중국에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아끼고 애용하는 녹니(綠泥) 자사호, 허달재 화백님이 선물해준 청색 차호, 옹기종기 장독대의 장독처럼 모여 앉은 차총 자사호 6형제, 연꽃 모양의 차하……. 이 모두는 차를 우리지 않고 바라만 봐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귀한 예술품들이다. 값은 나가지 않지만 나에게는 제일 친한 차우라고나 할까.
차가 담기든 담기지 않든 다구는 그렇게 차 생활의 활력이자 평안이자 지속이다. 다구 따위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부여하나 싶다면 집 근처 차관에 가 진열된 다구를 찬찬히 바라보시라.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채 10분, 아니 10초 정도면 충분한 매력이 그곳에 있다. 봉긋한 서시호(西施壺), 물줄기가 시원한 수평호(水平壺), 영국의 그것과 닮은 홍차 자기 차호까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형형색색을 뽐내며 앉은 폼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구 예찬은 이쯤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색을 밝히는 호색한이 된 것 같아 체면이 서지 않지만 이 정도로 그친 것도 많이 참아 넘긴 거란 걸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