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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 모르는 딸 둘이라서

너와 룸메이트가 된 지 올해로 7년 차. 우리의 3번째 집을 함께 구하며 돌아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첫 자취방은 나름 넓은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각자 본가에서 제일 좋은 것들로만 챙겨온 수저와 그릇, 청소기와 밥솥을 비롯한 우리의 살림은 나름 호화로웠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하나뿐인 딸내미가 집을 떠나 타지에서 독립하는 것을 걱정하는 동시에, 생활력이라고는 0에 수렴하는 내 룸메이트가 될 너를 걱정하셨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도 나처럼 집에서는 공주처럼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부모님도 깨달으셨다. 너랑 내가 똑닮은 유형이라는 것을. 둘 다 밖에서야 똑순이처럼 굴어도, 집에서는 학생 시절 집에서의 모습 그대로 야무지지도 부지런하지도 않겠구나 짐작하셨다. 그래서 걱정하시면서도,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다. 누구 하나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부담 줄 일이 없을 테니까. 우리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아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이번에 이사 갈 집을 찾으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우리가 참 비슷하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계속 같이 살 수 있었구나 새삼 느꼈다. 5년 동안 만족하며 살았던 이 집을 비슷한 시기에 떠나자고 생각했고, 다음 집의 조건도 비슷했다. 결론적으로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어 계약하기도 전에 인테리어를 준비하는 것까지. 네가 아닌 누구와 또 이런 결정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라고 한다면, 처음 너와 룸메이트가 되기로 했던 그 날처럼 선뜻 좋다는 대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방식의 모양새가 너무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알아버렸으니까. 나의 성격과 생활방식, 크고 작은 습관까지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공유할 수 있는 룸메이트를 이미 만났으니. 룸메이트 관계의 끝을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거다. 우리가 6년 동안 같이 살 수 있었던 이유.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대개는 오래 된 연인 사이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 지구를 빙빙 도는 달처럼 내 옆에서 9년 동안 자리를 지킨 사람이. 바다를 내 위로 흘렸다, 당기며 영향을 주는 존재가. 그러니까 어느 과학 법칙처럼 당연하게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 말이다. 바로 룸메이트.

정말? 정말 그래? 나도 그랬는데.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생각도, 성격도, 생활습관도, 겪는 일도 어쩜 이리 비슷한지. 타이밍도 신기하다. 내가 불붙은 장작 마냥 활활 타오를 땐 너도 무언가에 잔뜩 몰두하고 있고, 내가 당도를 잃고 시름시름 메마를 땐 너 역시 고민 많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삶에 이렇게도 동일한 파문이 일어날 수 있다니. 똑같은 모양으로 출렁이는 너와 나의 동그라미가 느껴질 때면 나는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잘 이해해가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상상해 본다. 한 10년 뒤에 너의 손을 잡고 모교에, 회기동에 다시 놀러 오는 날이 있다면. 골목 사이로 돌아다니며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조잘거릴 그 장면을. 그리고 아마도 얘기하겠지. 우리 진짜 비슷했다고. 다시 생각해 봐도 한 번도 안 싸우고 오순도순 잘 산 게 신기하다고. 비슷한 경험을 비슷한 시기에 해서 그렇지 않을까, 네가 착하기도 하고. 나는 아마도 이렇게 덧붙여 말하리라.

나는 이제 ‘이유진’이라는 이름을 입속에서 가만 굴리는 것만 해도 괜히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유진이 너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는 내 자식 마냥 칭찬을 늘어놓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유진’은 세상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을 지녔다고. 그러니 우당탕탕 사고뭉치 허아란들과 매 순간 잘 지내준 것이 아닐까,라고.

허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