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쉬의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오늘의 에디터 Friday입니다.

 오늘은 구독자 여러분보다 여러분들의 지갑에게 안녕을 묻고 싶네요.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험악한 세상, 자꾸만 소비를 부추기는 11월을 이제 막 보냈습니다. 당신의 지갑은 안녕하십니까...? 분명 블랙 프라이데이는 26일이었는데, 11월 초 아니 10월 말부터 무슨 행사가 많더라구요. 일 년에 한번밖에 없을 것 같은 높은 할인율로 현혹하는 할인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자동으로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 사실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률이 이전 행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싸다는데, 판매자들만 대목인 행사일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여기 핫한 블랙 프라이데이에 폭탄 세일보다 중대한 결정을 내린 기업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LUSH에요.
👋  오늘의 에디터 : Friday
화나면 서럽게 울음이 터져버리는 굴욕적인 포지션의 싸움닭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1. 러쉬의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
2. 기업 철학의 관점에서
3. 마케팅 측면에서
4. 개인으로서 나는 어떤가

👻 러쉬의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

러쉬가 있는 48개국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
각국의 언어는 다르나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른 곳에서 만나요"
 글로벌 코스메틱 기업인 러쉬는 지난 24일 공식 성명문을 통해 2021년 11월 26일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냅챗, 왓츠앱과 틱톡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사람들과 세상에 해를 끼치고 있고, 그 기업들은 이를 해결하려는 자정 노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고 했죠. '사이버 괴롭힘, 가짜 뉴스, 극단주의, FOMO, 유령진동증후군(휴대전화 중독과 의존도과 심해지면서, 실제로는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았는데 휴대 전화벨 소리가 들리거나 진동을 느낀 것 같이 착각하는 현상), 조작된 알고리즘' 등을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보았습니다. 굉장히 확신에 찬 어조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죠.

 일단 러쉬가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9년에도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을 비판하며 한 차례 소통창구들을 닫았었죠.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고 대면 마케팅이 어려워지자 러쉬는 다시 온라인 빗장을 열었습니다. 한 차례 '탈 SNS'를 번복했던 러쉬가 굳은 마음으로 다시 선언문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페이스북(현 메타)의 직원이었던 프란시스 하우겐의 내부 고발'이 트리거가 됐습니다. 저희 어거스트도 페이스북 고발 문건에 대해 다뤘었죠. 짧게 다시 한번 환기시키자면, 페이스북이 유명인들의 게시글에는 특혜를 주고, 인스타그램이 10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내부 조사 결과가 있었음에도 묵인했으며, 알고리즘이 자극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게시글을 더 많이 노출되게 만든다는 점 등을 폭로한 건이었죠.

 사실 페이스북 고발 사건은 꽤나 중요한 문제로 크게 보도는 되었으나, 기대한 것보다 대중적인 관심은 폭발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페이스북이 이미지 쇄신을 하려고 '메타'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시선을 돌리기도 했지만, 더 큰 눈가리개는 우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있고, 개인이나 기업이 모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으면 뒤쳐지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내부 고발자가 폭로에 나서도, 어쩌면 우리도 은연중에 다 알고 있었잖아- 라는 소극적인 태도였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러쉬가 선봉에 나선겁니다. 지금까지 정치,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신념을 내비쳤던 러쉬가 다시 한번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는거죠.

 모두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는 마당에 그 터전을 버리겠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현재 러쉬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는 천만명이 넘습니다. 그동안 홍보 담당자들이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고 소통하면서 쌓아왔을 어드밴티지를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거죠. 거의 천만 파운드의 손해를 감수하고서요. 하지만 러쉬의 창업자 마크 콘스탄틴(Mark Constantine)은 그 돈을 잃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돈을 잃어서 행복하다고 하는 이 남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알려면 러쉬가 어떤 회사인지 봐야 합니다.

 🌴 러쉬가 러쉬했다

출처 : basicarts
 영국의 프레쉬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는 1995년 영국의 풀(Poole)이라는 항구도시에서 탄생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마크 콘스탄틴을 포함해 아내 모 콘스탄틴, 로웨나 버드, 헬렌 앰브로센, 리즈 베네트, 폴 그리브스가 함께 만들었고 그 전신에 '더바디샵'에 납품하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콘스탄틴 앤 위어', 그리고 통신판매 형식으로 화장품을 팔아 큰 인기가 있었던 '코스메틱 투 고' 회사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때는 고객이 응모한 '러쉬(LUSH)'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죠.

 러쉬는 설립 초기부터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자연 항생물질들을 활용한 화장품을 만들어냈고, 과대 포장하지 않고 형형색색 화려함을 고체 형태 그대로 보여주는 Naked 제품들(배쓰밤, 샤워젤리, 샴푸바 등)을 개발했죠. 러쉬의 모든 제품은 베지터리언이자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사용하는 원재료 역시 윤리적인 공정을 거쳐 재배되어야 하죠. 러쉬 제품을 사용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품에는 항상 제조자의 캐리커쳐와 이름, 그리고 만든 날짜를 표기합니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또 환경 보호를 위해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야자수에서 추출한 '팜 오일'이 무분별한 삼림 파괴와 그에 따른 생태계 혼란을 막기 위해 세계 최초 팜 오일을 사용하지 않는 비누를 만든 회사도 러쉬입니다. 그야말로 '착한 기업'을 표방하죠.

출처 : Guardian
 러쉬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018년 웨일스에서 잠복 경찰들이 신분을 숨긴채 첩보원으로 고용된 여성들과 관계를 맺은 스캔들이 있었는데, 러쉬는 이를 비판하며 #spycops 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매장 전면에 'POLICE HAVE CROSSED THE LINE'라고 쓰인 테이프를 붙이는 등 공권력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반국가적이고 반경찰적인 행위'라며 경찰 관계자들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었죠. 또한 호주의 동성 결혼 합법화 투표에서 러쉬는 'Vote YES' 캠페인을 벌인 바 있습니다. 잘 나가다 사고(친 LGBT를 외치던 러쉬가 후원한 한 단체가 트랜스젠더를 배척한다는 것이 밝혀져 사과했던 일)도 있었지만 러쉬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죠.

 이번 소셜 미디어 사용 중단 선언에서도 대표자들의 기업 철학이 돋보입니다. 글로벌 디지털 수장(CDO) 잭 콘스탄틴(Jack Constantine)은 "사람들이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웰빙에 집중할 수 있는 배쓰 밤과 같은 제품을 만드는 우리가 이와 정반대로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진정한 휴식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이자 창립자인 마크 콘스탄틴(Mark Constantine) 역시 "평생 해로운 원재료가 없는 제품을 만들어 온 제가 고객이 소셜 미디어라는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소셜 미디어와 러쉬가 대척점에 있음을 강하게 어필했죠. 마치 러쉬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스냅책, 틱톡에서 도망가는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버린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안티 소셜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며 유튜브와 트위터, 홈페이지, 뉴스레터 등은 창구로 남겨놓았습니다.

🍇 러쉬도 돈을 벌기는 해야 한다

출처 : Mille
 그렇다고 러쉬의 이번 선언이 멋지고 대단한 순례자의 희생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일단 화끈한 행보에도 러쉬의 매출은 짱짱합니다. 전세계 400개 매장을 가지고 있고 2020년에만 4억 38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6900억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이전해 매출(10억 파운드, 약 1조 4700억원)보다 현저히 감소했긴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입니다. 러쉬가 돈을 벌어 꾸준히 환경 단체와 인권 단체에 기부를 해오고 있긴 하지만 어떤 목적이든 간에 러쉬도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행보가 마냥 러쉬에게 손해만 주는 것은 아닐테죠. 한번 러쉬가 소셜 미디어 중단 선언을 한 이유를 돈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일단 러쉬는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 마케팅이 되는 회사입니다.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가 온갖 박스에 리본까지 달아 포장에 공들이는 것과 반대로, 러쉬는 고체 상품은 패키지 없이 진열하다가 구매할때 직원이 툭 집어 칼로 뭉텅 썰어 담아주는 회사입니다. 포장으로 대접받는 기분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의 기분은 오히려 좋아지죠. 또 애초에 액상 제품을 고체화 한 이유도 농축시켜 만들면 제품 자체의 용량과 무게도 줄고 그만큼 운송 비용도 줄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 입니다. 화학보존제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유일한 포장용기 '블랙 팟'은 100% 자연분해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는 기업. 다른 기업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하고 있거나, 비용 절감을 위해 할 수밖에 없던 것들을, 러쉬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잡은거죠.

  또 하나, 러쉬는 향기와 색채로 마케팅을 하는 회사입니다. 러쉬 매장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도 러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향이 있으실겁니다. 길거리에 있는 러쉬 매장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입욕제의 향을 품어내죠. 슬쩍만 봐도 내부는 알록달록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로는 후각을 담아내지 못하죠. 시각적으로도 워낙 자극적인 이미지가 많은 곳에서 그 정도 화려함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봤자 널리고 널렸죠. 한 마디로 러쉬는 그 매장을 직접 지나가봐야, 들어가서 향기와 색감에 압도되어 봐야 사람들을 홀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셜 미디어가 생각보다 러쉬의 마케팅 전략에 부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조향사이기도 했던 창업자 콘스탄틴은 창업 초기부터 향기 마케팅을 주력으로 밀었습니다. 또 "러쉬의 향기가 인공향기였다면 직원 2만 명이 견디지 못했을텐데 자연 향기라 강렬하지만 부담이 없고, 러쉬 직원들은 입욕제를 담은 욕조의 물이 결국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친환경 원료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죠.

 그리고, 솔직히 유튜브랑 트위터는 하는 이유가 뭘까요? 유튜브에도 극단주의 스피커들이 넘치고 알고리즘으로 인한 말초적인 영상들이 가득합니다. 저번 뉴스레터에서 다뤘듯 트위터라고 안전하지는 않죠(자정 노력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굳이 특정 소셜 미디어만 남겨놓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왓츠앱만 탈퇴한 이유는 아마도 이 플랫폼들이 조금 더 광고비가 비싸다는 판단을 내렸을겁니다. 콘스탄틴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광고 도달률을 높이고 검색 엔진 최상위를 선점하기 위해 기업들이 돈을 쓴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모든 소셜 미디어를 닫아 놓지 않고 구멍 두 개 정도는 뚫어놓는 전략이 오히려 더 진정성 있고 솔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정말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유해한 환경을 차단하고 싶다면 일괄적으로 모두 닫아야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될까?

 언젠가부터 기업의 사회적 활동은 이윤 추구의 또 다른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오늘 글이 이를 반영해 너무 냉소적이진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혹시라도 진짜 러쉬가, 보스 콘스탄틴과 직원들이, 정말 순수하게 고심끝에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런 결단을 내려준 것이라면 너무 미안해지겠어요....

 하지만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나서줘서 감사합니다, 러쉬. 물론 소셜 미디어 사용을 중단하는 기업이 러쉬가 최초인 것은 아닙니다만(보테가 베네타와 발렌시아가 등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페이스북 파일즈가 터지고 난 적합한 시기에, 한번 번복해서 돌아왔는데도 다시 용기를 내주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러쉬가 선언문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약속한 '이용자들에게 더욱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 확인될 때'가 올 수 있게, 사용자이자 개인인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겠습니다.

 💭  오늘의 콘텐츠 추천

[온스테이지2.0]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 난 뚱뚱해
에디터 ‹Friday›의 코멘트
어쩌다 듣게 되었는데 갑자기 막 행복해졌어요. 날씨도 추운데 우리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서 나대로 잘 살아요❤
오늘의 레터가 좋았다면
👉 오늘의 레터를 피드백해주세요! 💜
👉  지난 어거스트 보기
💜  어거스트 구독하 어거스트 구독 링크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Friday • 장희수 • SIXTEEN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수신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