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 (정민) ‘육아를 하기로 선택/결심’한다는 문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질문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육아를 더 적극적으로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 것이겠죠?) 업무 때문에 퇴근이 늦어져서 아내와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본 기간이 있었어요. 몇 주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 아내가 ‘이제 나 혼자 키워도 되겠다’ 하는 거에요. ‘그래, 뭣이 중헌디?’의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고, 육아휴직 결심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 (혁진) 사실 이 질문은 좀 낯섭니다 ㅎㅎ 적어도 저나 제 주변에서는 육아는 아빠에게도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 같아요. 필수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어색한, 자연스러운 과업으로 아빠들에게도 자리잡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육아에 대한 자신감과 숙련도가 조금 다르지 않나 싶어요. 제 주변에는 육아에 진심인 아빠들이 많습니다. 비단 썬데이 파더스 클럽 멤버들 뿐만 아니라도 충분히 많습니다. 다만 그런 아빠들이 여러 이유(ex. 상대적으로 엄마보다 덜한 육아 참여)로 ‘나도 육아 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흔한 아빠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육아를 하고 있고요. 때로는 아내보다 덜, 때로는 아내보다 더 육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매일 밤 ‘누구랑 잘래?’라고 물어보면 ‘아빠랑 잘래'라고 말하는 정도가 된 것 같긴 하고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제가 육아에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려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제가 아이를 낳을 때 아이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아이를 낳을 때 본인에게 허락을 받을 수는 없는데요. 저는 그 원죄가 주는 부채감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의 원천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나중에 아이에게 누군가 ‘태어나서 좋았느냐'라고 묻을 때 흔쾌히 ‘좋다. 태어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하려면 최선을 다해 육아를 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 (규성) 부모님 세대는 맞벌이보다 외벌이(대부분 남성에 의한)가 대부분이었고 한 명은 직장에 충실하고 한 명은 육아를 전담하며 가정을 지키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세상은 아빠와 엄마가 함께 경제활동을 하는 게 보다 일반화되었고 더 이상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는 걸 당연시 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2-30대 밀레니얼 양육자들에겐 육아를 선택/결심한다는 개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을 하지 않아요. 마치 그건 왜 아빠가 되기를 선택/결심했다는 질문과 동일한 질문인거죠. 저희 세대 양육자 사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 ‘독박 육아’라는 말인데 이 말에는 육아는 기본적으로 둘 이상이 같이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육아서들에 ‘주’양육자 ‘보조’양육자란 말도 심심찮게 나오는 데 이제는 ‘주’ 양육자라는 말이 사라지거나 모두가 ‘주’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더 건강한 인식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어요.
  
  
• (정우) 육아를 선택/결심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나 되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육아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부부가 함께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현) 질문을 바꿔 보면 좀 더 선택이나 결정이 쉬워지는 것 같아요. 제 경우, ‘한국 사회에서는 왜 여전히 육아하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까?’란 질문이 떠올랐고 딱히 그 답이 상식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먼저 사용한 아내에 이어, 육아휴직 1년을 결심하기도 했고요.

• (정민) 하루 하루 매 시간이 울고 웃는 순간이기는 한데, 어린이집 하원할 때 데리러 가면 ‘아빠~’하고 달려와서 안길 때마다 아 얘가 진심이구나 싶은 마음이 느껴져요. 저도 덩달아 행복해지던 기억이 납니다. 

• (혁진) 아이가 25개월을 갓 지나며 말을 빠르게 배우는 시기인데요. 행복한 순간이 매일 갱신됩니다. 등원하는 아침에 ‘아빠 안아줘요'라고 해서 안아줬더니 ‘안아주는게 제일 좋아'라고 한다던가, 잠자기 전에 같이 누워 있을 때나 잠에서 깬 아침에 ‘아빠'하고 불러서 ‘응?’하고 대답하면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던가.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매일이 감사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 (현) 아이가 18개월일 때, 단둘이 무모한 도전을 한 적이 있어요. 부산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오피스텔에서 한 달 살이를 했습니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다는 사실을 간과한 나머지, 초반 며칠 바깥 음식을 사 먹이다가 바로 장염에 걸린 딸을 간호하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요.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좋았습니다. 10월의 가을 날씨도, 아이와 함께 한 모래놀이도, 틈틈이 놀러 다녔던 부산 주변의 아이 친화적인 공원과 주민들의 친절한 배려 등. 살면서 경험했던 그 어느 여행보다 밀도 높고 충만했던 시간이라, 복직 후에도 종종 생각나요.

• (규성) 제가 평소 일 생각을 멈추지 못해 스트레스 받을 때가 많은데 아이를 안고 있거나 같이 놀다보면 생각을 멈출 수 있어서 행복해요. 곧 다가올 겨울에는 아이만큼 따뜻한 핫팩이 없습니다. 아이란 존재는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삶에서 단순한 행복을 되새기게 해주는 것 같아요.
  
  
• (정우) 제가 지독히 물질적인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의류 건조기와 식기 세척기를 샀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이를 돌볼 때 아무래도 신체적/정신적인 여유가 중요한데 이렇게 물질과 돈으로 육아에 큰 짐을 덜 수 있었어요. 물론 육아를 하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 입니다.

• (정민) 시간관리? 얼마 전에 간단히 셈을 해봤더니 부모가 육아를 온전히 담당하게 되면 교육/보육기관에 보내는 시간을 빼더라도 최소 주 40시간 이상의 시간을 기본적으로 육아에 쓰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치면 일하는 시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마치 투잡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기게 되요. 그러니 일도 하면서 육아도 신경쓰려면 아무래도 시간관리에 전보다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부부이자 육아동지(!)로서 아내와 조율하고자 많이 노력합니다. 물론 돌발상황이 많으니 매번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지만요.  

• (혁진) 시간이 매우 부족하긴 합니다. 출퇴근이 왕복 3시간이 넘는 제 경우에는 특히나 더요. 그런데 정민님이 위에 시간을 말씀해주셨으니 전 ‘체력'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이가 18개월쯤 되었을 때 어깨, 등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아이를 잠시도 안고있을 수 없을 정도로요.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자세도 교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아도 육아지만 이렇게 예쁘게 커가는 아이와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PT 트레이닝도 받고 식단 관리도 하면서 3개월 만에 살도 16kg를 감량했고요. 운동 덕분인지 어깨와 등의 통증도 이제 사라졌습니다. 체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ㅎ

• (규성) 시간, 체력 모두 힘든 부분이지만 육아가 저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문제는 아내와의 소통이었어요.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과 의사결정을 두 양육자가 함께 내려야 하는데 서로의 생각이 다르거나 불안과 걱정의 강도가 다를수록 쉽게 다툴 수 있거든요. 특히 그런 아빠 엄마의 민감도가 가장 올라가는 신생아 시절엔 부부싸움을 많이 하게되요. 지나고 보면 왜 싸웠는지도 모르겠는 싸움을요. 지금은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서로가 교훈을 얻고 큰 싸움을 최대한 피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비록 아이가 아직 3살이라 아직 수많은 선택과 의사결정이 남았지만요.
  
  
• (정우) 한 아이의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대한 책임감이 가장 무겁습니다. 너무나 취약한 존재인 신생아 시기를 간신히 지나면 아이가 제 발로 설 수 있는 토양을 천천히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만들도록 돕기 바쁩니다. 오늘이 어제의 반복이고 내일 또한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막연함이 엄습할 때도 있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고립감이 들 때가 힘들더라구요.
  
  
• (현) 다른 아빠들의 의견에도 모두 공감해요.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면, 지금 사회는 아이를 키우는 집단이 소수 집단이 되었어요. 딩크족이든 다자녀가족이든 비혼 1인 가구이든, 사회 구성원끼리 다양한 삶의 양식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한때 ‘아이’나 ‘어린이’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노키즈존으로 영업하는 매장을 보면 여전히 공감하기 어렵고요. 반대로 내 아이에 대한 ‘과잉보육’으로 역으로 피해를 입는 교사들을 보면서는 양육자 집단으로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정민) 양으로나 밀도로나 ‘시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아빠가 육아에 육아를 하게 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양육자로서 동등하거나 그에 준하는 정도로 아이들과 시간을 엄마와 비슷한 비중으로 보낸다는 것이겠죠. 물론 여건이 허락해야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교감한다면, 그 시간들이 모여 아이들의 성장에 더 많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해요. 아이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 (혁진) 가정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 ㅎㅎ 모든 가사에는 ‘총량'이 있는데요. 육아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그나마 일반적으로는 아빠가 엄마보다는 체력이 좋으니까요. 아빠가 육아의 총량에서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상대적으로 엄마의 몫은 줄어듭니다. 육아를 덜한 엄마는 덜 피곤하고 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육아를 덜한 엄마, 그러니까 짜증과 피곤함 보다는 웃음과 건강함이 더 남아있는 아내가 있는 가정이라면 조금 더 화목해질 수 있겠죠. 그런 화목한 가정에 남편인 제가 존재한다는 건 좋은 일이죠. 따지고 보면 육아를 하는 건 화목한 가정에 있고 싶어하는 저를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네요. 

• (규성)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짧은 영상 중에 아빠가 많이 놀아준 아이일수록 똑똑해진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정말 제 아이가 더 똑똑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육아를 하면서 아빠인 제 자신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더 똑똑해졌다고 생각해요. 소통하는 능력도,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도 더 높아졌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아빠가’ 육아를 하면 ‘아이’가 좋은 건 당연하고 ‘아빠’에게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 (정우) 아내는 세심하고 규칙적인 성격이고 저는 상대적으로 즉흥적이고 야외 활동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딱히 엄마와 아빠, 다른 두 성별이 함께 육아한다는 관점보다는 두 명의 양육자가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육아를 한다는 면에서 아이들에게 적절한 균형을 제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현) 예전에 지인에게 들은 말을 옮깁니다.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일수록, 외부 세계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하여 더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대요. 특히 여아일수록요. 제가 바로 그걸 경험했거든요.”

• (혁진) 아직 사용전입니다. 프리랜서 시절에 아이가 태어났고, 다시 회사를 다닌지 1년쯤 되었을 때 다시 회사에 들어갔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회사를 다닐 생각이다보니 한번은 꼭 육아휴직을 쓰려고 합니다. 

• (정민) 1년 정도 육아휴직을 사용해본 적이 있어요. 회사가 육아휴직 정책 도입에 적극적이어서 신청 및 복직에 (다행히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쓸 때보다 더 많은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남성의 경우 아직 절대적인 숫자로 본다면 많지는 않지만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더이상 회사나 주위에서 눈치볼 일이 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규성) 6개월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25명정도인데 남녀 통틀어 최초였어요. 그래서 저 자신도 용기가 필요했고 조직에서도 낯설어 했죠. 다행인 건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회사라 대부분 응원을 해줬고 복귀 후 불이익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주변에 남자 중심 조직에 다니는 친구들이 더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아직 자신들은 꿈도 못 꾼다고, 승진에서 밀릴까봐, 경쟁에서 뒤쳐질까봐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 친구들 사례를 보면 환경이 중요하고 때론 그게 전부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빠 육아휴직이 보편화된 스웨덴에선 직원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면 더 성장한다는 기대가 있다고 해요. 저도 육아휴직을 다녀오고 나서 들었던 소리가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보인다였어요. 스웨덴도 과거 2-30년 전에는 우리나라처럼 아빠들은 육아를 하지 않는게 당연시 되었다고 해요. 지금의 명성을 얻게된 데에는 국가적인 노력이 있었다고 하고요. 육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가와 회사가 함께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 (정우) 셋째가 태어났을 때 2달 간 육아휴직을 했고 둘째가 초등학교를 가면서 2023년 7월부터 남은 34개월의 육아휴직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저의 매니저는 ‘가족이 우선’이라며 육아휴직을 응원해줬습니다. 아직 34개월 중 32개월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길게 육아휴직을 신청하니 대부분의 직장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은 제가 복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복직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 (현) 2022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1년 육아휴직했습니다. 재직 중인 남성 직원 중에선 제가 첫 번째 사례이긴 했는데, 운이 좋게도 팀에서도 배려를 많이 해줬고 선례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어느덧 복직 후 5개월이 지났는데요. 복직 후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면, 다음에 육아휴직을 사용할 동료들을 위해 ‘복직 후에도 일을 잘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더 몰아세우는 게 있다는 점이에요. 그냥 휴직을 했다면, 이런 생각은 안 했을 텐데요. 가급적 아이가 돌발적으로 아프지 않길 바라며, 맞벌이 부부로서 아내와 저글링 하듯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혁진) 아이를 낳고 전기요금을 지원해 준다거나,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준다거나 하는 제도 등은 아주 유용하게 썼어요. 보육수당도 나와서 어린이집 비용을 충당하는 것도 좋은 제도라고 생각해요. 산후도우미 고용 비용 지원도 매우 유용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 (정민) ‘가장 도움이 된’ 하나를 고르라면… 어렵네요. 그래도 고르자면 어린이집 비용 지원일 것 같아요. 보통 어린이집을 짧으면 2년, 길면 4년까지도 다니는데, 만 5세까지 비용이 전액 지원되어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어린이집마다 시설 및 환경의 편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부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다른 부모님들이 어린이집을 빨리 보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 (규성)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걸로는 알고 있으나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저에겐 가장 처음으로 피부로 와닿았던 국가 지원 사업이었어요. 장난감 대여는 물론 1시간 단위로 아이를 잠시 보육해주는 시간제보육, 열린놀이방까지 아이를 키우기 가장 힘든 시기에 물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받았던 것 같습니다. ‘출산’ 정책만큼 중요한게 ‘보육’ 관련된 정책들인 것 같아요.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줄게'가 아니라 부모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어려움 없이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사업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정우) 다른 분들께서 이미 말씀해주신 어린이집 비용 지원과 보육수당과 육아종합지원센터 모두 잘 이용했습니다. 오히려 다자녀라서 우선권이 주어져 더 잘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거점형 키움센터’를 간헐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일반형 키움센터’는 동네 기반이라 그런지 대체적으로 인원에 여유가 없어서 몇번 이용해보지 못했지만 종로구와 성북구의 거점형 키움센터는 방학기간 혹은 주말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만족스럽게 이용했습니다.
  
  
• (현) 저도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어린이집 보육 비용 지원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 (혁진) 얼마 전,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왜 쇼핑몰에 가면 유모차를 끄는 부모가 많을까?’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다들 돈이 많아서 애도 낳고 쇼핑몰도 오는건가 했다는 건데요. 아이가 있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비오는 주말이면 정말 쇼핑몰이나 백화점 말고는 수유실이 있는 넓은 실내 공간이 전혀 없으니까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공공기관이나 쇼핑몰, 식당 등에 가면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있더라도 여자화장실에만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어쩔수없이 아이 기저귀를 가는 일이 여자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모든 화장실에, 여자 화장실이 아닌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갈이대가 의무적으로 설치되면 좋겠습니다. 건축을 할 때에는 화장실이 있는 모든 공간에는 수유공간을 마련하는 제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유공간만을 별도로 만들기 어렵다면 다목적 공간인 장애인 화장실 등에 아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구축해두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아이와 찾은 일본 도쿄에서는 대부분의 공간에 다목적 화장실이 있었고, 아이 기저귀를 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거든요.
  
  또 다른 점은 일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북토크에서 저자분이 소개해준 논문이 있었는데요. 논문에 따르면 GDP 대비 육아/출산에 쓰는 예산의 비율이 높은 순과 출산율은 정비례하지 않고 상관관계도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남성의 육아/가사 참여시간과 출산율은 정비례 관계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단축근무 그리고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등이겠지요. 일견 이런 정책들은 당장의 성장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지속되지 않아 출산율이 앞으로도 지속 감소한다면 우리 나라는 성장이 아니라 소멸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민) 출산/육아와 관련성이 낮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거 문제가 실질적으로는 제일 큰 장애물인 것 같아요. 결혼 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있는데, 안정적인 주거지 마련과도 관련성이 적지 않다고 보이거든요. 신혼부부들에게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더욱 힘써준다면 조금 더 일찍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결정하는 청년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가능한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부모가 되려는 분들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테니까요. 

• (규성) 출산+육아의 문제를 풀 때 그 목적어가 ‘출산+육아’로만 되었을 때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걱정없이 낳는다는 건 결국 그 아빠 엄마의 미래에 대한 걱정 또는 아이가 자라난 환경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어야 가능한 거고, 결국 출산 문제는 어른들의 삶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전 한국사회의 출산율이 때로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측정한 지표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세먼지 부동산 교육 취업 등 어른들의 삶을 괴롭히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출산율의 증가도 요원할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낳을까?’라는 질문 이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살기 좋을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근본적으로 더 좋은 정책이 나올 것 같아요.
  
  
• (정우) 길거리를 걷다보면 쓰레기통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곳곳에 많이 있었던 기억인데 말이죠. 쓰레기를 당장 버려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급한 사람은 쓰레기를 몰래 버리기도 하고 그러면 근처 건물 관리인이나 청소하시는 분들과 다툼이 생기는 걸 많이 봅니다. 이럴 때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쓰레기를 몰래 버리지 말자’는 계도성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통의 부재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아 정책을 쓰레기통에 비교하게 되어 아쉽습니다만 정부의 역할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어린이집과 육아지원 서비스를 촘촘히 늘리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다만 잊을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학대 문제와 학교에서의 교권문제는 정부의 방관 혹은 사후적인 대처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 조금 급진적인 제안입니다만, 저는 기존의 현금 복지성 출산•육아 지원 대신 가정의 일터 쪽으로도 정부가 적절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유명무실한 일터가 많은데요. 현실적으로 남성이 최소 1달에서 석 달이라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한다면, 우선 남성의 경험과 인식부터 크게 개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풀타임 육아를 경험한 남성들이 많아지면, 일단 가정에서의 육아와 가사 분담 균형이 조금 더 맞춰질 것 같고 그 사례가 미래 세대에게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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