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아시안 엄마를 둔 아시안 딸이기 때문에 좋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의 ‘실패자’로서 말이다.
나는 자라나면서 엄마와 많은 갈등을 겪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는 매우 친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동시에 굉장히 담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의미냐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또 엄마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을 과하게 기대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아빠는 섬세하고 예민한 동시에 아주 다혈질이고, 그래서 종종 폭력적으로 변했고, 정이 많지만 인간 관계에서 자주 어려움과 절망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불행히도 나는 아버지의 성격을 매우 많이 닮았다(알러지와 비염도 물려받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시점부터 부모님은 점점 더 많이 다투고 부딪히기 시작했는데, 아빠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를 때면 내게도 소리를 지르고는 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와 아빠에 대해 불평하며 점점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이제 전부 따로 살고 있다. 엄마는 용인에, 아빠는 홍천에, 나는 고양에. 우리는 지금 아주 괜찮다.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많은 딸들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녀 관계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고 할 때 내게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과연 영화를 본 뒤에도 그 믿음이 깨지지 않았을까?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하여간 나의 개인적인 역사와 상관없이 이 영화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또 멋진 영상물이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시작부터 나를 사로잡았고 끝까지 좋은 긴장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이건 내가 기꺼이 탈 수 있는 종류의 롤러코스터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영화가 웃어!! 하고 말하면 나는 네!! 하고 깔깔 웃어버리고, 영화가 울어!!! 하고 명령하면 나는 엉엉!!! 하고 울어버리게 되는 영화라는 뜻이다. 나는 이런 영화도 아주 좋아한다. 이 영화를 관람하는 감각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영화 중반부까지 깔깔거리며 영화를 보던 나는 섣부르게 흠, 그렇게 눈물 날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생각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 나는 몸이 떨릴 정도로 울고 있었다. 영화관에 아무도 없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 있게 말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다가 처음 마음이 내려앉았던 부분은 조부 투바키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올린 ‘에브리씽 베이글’을 에블린에게 보여주던 장면이다. 조부 투바키는 말한다. “내 기대와 희망들, 내 성적표, 내가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렸던 모든 광고들, 양귀비 씨앗, 그리고 소금까지.” 그리고 그녀는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 베이글은 내게 진실을 알려줬어…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분 좋지 않아? 네가 느끼는 모든 고통과 죄책감이 전부 사라지잖아.”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수많은 에블린을 만났어. 하지만 누구도 당신 같지는 않았지. 너에겐 이루지 못한 목표와 꿈들이 너무나도 많아. 넌 최악의 버젼의 너인거야. 그래서 넌 가능성이 있는거야. 왜냐면 넌…아무것도 잘하는게 없거든.”
저기요! 최근에 매우 심한 패배감과 실패자라는 자기 평가에 절여져 있었던 당사자는 마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영화는 몇 개의 오르내리는 언덕들을 넘어 마침내 에블린이 조부 투파키에게 공감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지점에 이른다. 그녀는 복잡한 세금 신고를 포기하고,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난 단 한번도 이 세탁소를 사랑한 적 없었다며 야구 방망이로 세탁소를 부수기 시작한다. 그 감각은 어딘가…편안해 보인다. 에블린과 조부 투파키가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우주에서 돌이 되어 만났을 때 그 감각은 극대화 된다. 나는 그 기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영원한 도망자로서 나는 언제나 마음 속 한 구석에 돌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한다. 그건 우리가 언제나 모든 우주의 내가 소리치는 모든 가능성의 소음 속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뒤로 한 채 완전한 고요 속에 놓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울까? 조부 투바키-돌은 말한다. “모든 새로운 발견은 그저 우리가 얼마나 작고 멍청한지 알려줄 뿐이야.” 잠깐의 농담이, 그들이 소란스러운 와중에는 결코 나누지 못했던 부드럽고 즐거운 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말한다. “난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엄마가 봐주길 바랬어. 그래서 나를 다른 길로 이끌어주기를.” 그리고 그들은 다시 베이글 앞으로 돌아온다. 조부 투바키는 함께 이 고리를 탈출하자고 말한다. 죽음과도 같은 순간으로 함께 걸어가자고.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끝내자고.
하지만 에블린은 어쩔 수 없이, 여전히 현실의 소음을 듣는다. 아직까지 그녀는 무언가 싸워서 얻어낼 수 있는게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웨이먼드가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국세청 직원과 부드럽게 타협하여 조금의 시간을 더 얻어내자 에블린은 놀란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제시한다. 웨이먼드와 함께 하지 않은 우주의 웨이먼드가 말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투사로 여기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봐.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조부 투바키는 그 말들을 무시하라고 말한다. “우린 그냥 몸을 돌려 베이글로 걸어가기만 하면 돼. 이 모든 걸 무시하고 말야.” 하지만 에블린은 떠올린다. 지금까지 자신이 치열하게 싸우고, 실패하고, 또 싸우고 실패하던 과정 중에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함께 해온-아주 연약하고 쓸모없다고 믿었던 조력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둘의 귀여운 로맨스와 관계도 무척 좋았지만, 모든 사람이(심지어 그녀 자신 조차도)그녀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할 때, 그녀에게 아직 돌이켜 볼만한 일상의 ‘작고 좋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상기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할지 말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렸다. 나는 언제나 ‘가능성의 소음들’에 시달리고 그 소음들과 싸운다. 자주 결연해지고 자주 절박해지고 자주 전투적으로 변한다. 웨이먼드는 “모두가 혼란스럽고 무서워서 싸우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럴 때 일 수록 우린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대상에는 분명히도—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훈육해왔다. 그러니까 난 이 영화에서 에블린이기도 에블린의 딸 조이이기도 했던 것이다. 에블린은 마침내 조부 투파키가 소환한 에브리씽 베이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고 할 때 웨이먼드의 방식으로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돌의 세계에서 움직여 조부 투파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조부 투파키가 당황하면서 “넌 돌이잖아, 움직이면 안돼!” 라고 말할 때 “그런 규칙은 상관 없어!” 라고 말한다.
에블린과 조부 투파키-조이는 비로소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조이는 엄마와 함께 있으면 너무 괴로워. 하고 말한다. 왜냐면 조이는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렇듯이, 엄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깊이 이해해주리라고 믿어왔고, 그래서 매번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엄마를 실망시키는 일에 지쳤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와의 담백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내가 엄마와 나 사이에서 오가는 ‘기대의 고리’를 의식적으로 배제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너무 깊이 사랑하는 일을 멈추려고 언제나 노력해왔다. 내가 온전히 엄마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래서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우리에게 잠깐의 즐거운 순간들만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에블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도 파티 하고 싶어?” 조이가 에블린의 품 속에서 속삭인다. 에블린은 조이에게 이마를 맞대며 말한다.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우리는 다시 소음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방식을 알고 있다. 나를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낸 새로운 사랑의 방식으로 말이다. 영광스럽고 반짝이는 가능성들이 우리에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 속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을 찾아나가며 살 수도 있다. 그게 바보같고 자기를 탓하고 나와 닮은 딸과 함께 사는 것일지라도 해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그걸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린 여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