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미의 비빌언덕 첫번째 레터
여기, 비빌언덕이 생겼습니다!

안녕하세요. 단미입니다. 첫 번째 레터의 첫 문장을 적으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요즘 제 머릿속은 온통 비빌언덕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잠들기 직전까지도 일상의 틈새마다 비빌언덕이 읽히는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기꺼이 곁을 내어준 고마운 마음들에게 제가 통과해온 시간을 어떻게 나누고 연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중입니다. 기꺼이 비빌언덕이 되어준 여든일곱 명의 눈동자를 떠올립니다. 이 기록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라 우리 사이를 잇는 단단한 연결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실험과 글이 될 수 있도록 시간과 마음을 쏟겠습니다. 첫 번째 글의 주제는 '집'입니다.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집은 안온한 휴식처이기 이전에,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야 했던 생존의 좌표에 가까웠습니다. 나의 집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지난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나눕니다. 조심스럽고도 단단한 마음을 담아, 비빌언덕의 첫 번째 레터 [내 집을 찾아서]를 시작합니다.

#1  내 집을 찾아서

 어릴 적 독립을 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투명한 유리컵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챙' 하고 부딪히는 스텐컵 말고 컵 안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컵 말이다. 국과 밥, 반찬을 따로 담아 먹을 수 있는 예쁜 그릇들도 사서, 집에다 둘 것이라 덧붙였다. 가끔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갈 때면 친구 부모님이 차려주신 식탁을 보며 개개인 앞에 놓인 밥그릇, 국그릇, 정갈하게 덜어진 반찬들까지, 하나하나 샘을 내보곤 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이룰 수 있을 내 소원을, 바란 적도 없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친구의 집과 식탁을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땡땡, 땡땡'  두꺼운 쇠 종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수십 개의 발걸음 소리가 뒤엉킨다.

“뛰지 마라”

선생님의 호령에 아이들은 잰걸음으로 발소리를 줄인다. 길게 늘어선 줄은 네다섯 살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뒤로 갈수록 나이가 많아지는 식이다. 밥과 국, 세 개의 반찬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수십 개의 철제 식판이 쌓여 있고, 주방 할머니는 각자의 나이를 고려해 밥을 떠준다. 쇠숟가락과 철제 식판이 부딪히는 '챙챙' 소리가 식당을 메운다.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식판을 긁어대다가 혼이 나기도 하고, 먹기 싫은 음식을 옆에 앉은 동생에게 밀어주다 싸움이 나기도 한다. '이놈의 집구석 조용할 날이 없네' 속으로 삼킨 말이지만 집인지 아닌지 모를 이곳이야말로 조용한 날이 단 하루도 없지 않은가. 집이라고 하기엔 벅차고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 살아온 이곳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30여년 간 식사시간을 알리며 생활의 신호가 되어온 쇠종 (철기 시대 유물 같지만 지난해 보육원에 들렀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스무 살, 갖은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듯 보육원을 나와 꿈에 그리던 독립을 시작했다. 자립정착금 300만 원을 들고 상경해 유리컵과 개인 식기를 샀으니, 소원을 이뤘다 말할 수 있을까. 지긋지긋한 가난과 부모 부재의 굴레를 벗어나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오른 서울길이었다. 하지만 연고 하나 없는 서울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역설적이게도 소음 가득했던 보육원을 떠올렸다. 조용히 머물 내 방 한 칸 없던 그곳의 온기와 북적거림이 사무치게 그리워 밥 한술 뜰 때면 짠기가 가득했다.


보육원을 떠나 처음으로 '내 방'이라 부를 만한 곳을 가진 곳은 서울 동작구의 한 자립관이었다. 자립준비청년 여성들을 위한 그곳은 만 18세부터 24세까지 머물 수 있었는데, 2~3평 남짓한 방에는 작은 주방이 딸려 있었고 큼직한 창문이 하나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으로 쓰며 청소 구역을 정해 나누어 관리해야 했지만, 문을 잠그면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 되는 곳 이기도 했다. 그 작은 방 싱크대 선반에 내가 산 유리컵을 올려두었을 때, 비로소 자립의 실감이 났다. 챙챙거리는 식판 소리 대신 작은 냉장고의 낮은 웅웅거림이 방을 채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불빛은 보육원의 쇠 종소리만큼이나 차갑고 엄격했고, 내 방을 가졌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 방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의 무게가 교차하는 밤들이 이어졌다. 


자립관에서 5년을 채우고 정말로 ‘찐 독립’을 했다. 스무 살, 이불 한 채 없이 상경했는데 그간 세간살이도 꽤 생겼다. 운 좋게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되어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이자 붕세권(붕어빵)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내 공간, 내 집이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첫 집이었다. 복도식 아파트지만 1층이라 접근성이 좋았고, 작지만 방도 두 개나 있었다. 욕실과 주방이 분리된 나의 집. 내게도 비로소 ‘집’이 생겼다. 얼마나 좋던지,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밥을 해먹였다.    

어느덧 15년째 살고 있는 나의 집

첫 번째 이웃도 생겼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먹을 것이 생기거나, 좋은 물건이 생기면 반으로 나눠 드리곤 했다. 불쑥 집에 들어오거나, 이런저런 말을 붙이며 진을 빼놓을 때도 있었지만, 주변에 관심이 많은 분이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여름 더위보다 먼저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아무리 음식물을 치워도 부엌 어디선가 한두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는 바퀴벌레다. 마침 옆집 아주머니가 아는 업체가 있다며 공동 방역을 제안했고, 나는 의심 없이 8만 원을 건넸다. 이듬해까지 그렇게 함께 방역을 진행하다가, 약만 대충 찍어 바르고 가는 기사님의 모습을 보고 다음 해부턴 따로 하겠노라 정중히 거절했다. 별말이 없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복도에 모여 있던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찰나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잖아, 쟤 때문에 여기 다 바퀴 나오는 거야.”


이후로도 택배를 훔쳐 가거나 친구가 집 문고리에 걸어둔 선물이 사라지는 등, 누군가를 계속 의심하고 미워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심증은 가득한데 물증은 없는 소모적인 나날이었다. 하루는 아침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욕설에 문을 열어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의족을 한 장애인 이웃의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냄새나서 못 살겠다. 우리를 다 다른 곳으로 이사 보내주든가, 아니면 너네가 나가라!”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막무가내인 옆집 아주머니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의 집, 나의 휴식 공간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소중한 첫 보금자리는 영세한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영구임대 아파트였고, 그곳에서 나는 물질의 빈곤과 정서적 가난의 상관관계를 누차 확인해야만 했다. 아주머니의 욕설로 하루를 시작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곳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찬장에는 그토록 원했던 투명한 유리컵도 많고 푸른빛의 도자기 그릇도 가득한데, 나는 왜 여전히 나의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걸까.

자기 돌봄이 필요할 때면 꺼내는 애정하는 청자 찻잔, 

어쩌면 집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빈곤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미워하고 의심하는 과정이 가끔 통증처럼 찌를 때면 스르르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 저녁은 내가 고른 예쁜 그릇에 담아 먹는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환대이자, 나의 집을 지키는 일상의 방식이다.
비빌언덕의 한 마디
단미의 비빌언덕이 되어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요 𓂅𓂅︎︎︎︎︎︎︎︎︎︎︎︎︎︎
 💭 은진 
이미 많은 이들의 '비빌언덕'이 되어주고 있는 단미의 '비빌언덕'이 되는 일은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지요! 저는 이 시간이 단미에게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지지받는' 시간이 되었음 합니다. 단미의 용기를 시작으로, 서로서로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미더운 대상'이 되어주는 그런 시공간을 잘 구축해가요, 우리!
_경남 함양 빈둥협동조합(bindoong.com) 은진

 🪼 이성민 
학교에서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사이이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은지쌤은 저에게 인생 선배님 같은 존재입니다. 왜일까요..? 학교에서 배웠던 가치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은지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은지쌤이 해주는 살아왔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살아갈 이야기가 궁금해서 비빌언덕 프로젝트에 구독으로 함께 했습니다. 누군가의 삶과 생각에 관해 들을 기회는 참 귀합니다. 심지어 이 구독은 비빌언덕을 만들어낸다니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 메일함으로 날아올 은지쌤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후하하 

 🧤 오행복 
어린 시절 기댈 곳이 필요했던 당신, 기꺼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려 하는군요. 참 멋지십니다. 저 또한 단미가 만들 언덕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비빌언덕과 함께 일 년이 지나 우리가 만날 동산에는 여전히 험한 비탈과 뾰족한 돌멩이가 가득하겠지요. 하지만 저기 한편 보이지 않는 어딘가 희망을 품은 새싹이 반드시 움틀 것만 같아요. _세대통합 플레이리스트 구축을 위한 리스너 연합 오행복
첫번째 비빌언덕 레터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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