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ping stone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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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머리말

연구자님은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나요? 맑고 선선한 날씨와 간만의 연휴가 더해져 여러모로 기대가 되었던 추석이었는데요.

저는 그간 도무지 훌쩍 머리를 비울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 따로 하루 시간을 내어 가을의 해변에 가보았습니다. 어차피 가서 대단히 흥미진진한 일을 한 것은 아니고 경치 좋은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졸다가 책을 읽다가 온 정도였습니다만. 단지 어떤 장소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처럼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힐링을 하고 집에와서 일을 좀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작은 아씨들>에 푹 빠져 남은 연휴를 태웠네요👤)

김스피(이하 👤)= 안녕하세요. 인스피아를 쓰고 있는 김스피라고 합니다. 인스피아는 읽고 생각하고 해찰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계십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비원(이하 지)=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는 지비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1년에 출판계에 입문하여 교과서, 청소년 교양도서 문학, 인문학 서적을 편집했습니다. 현재는 주로 일본어 인문교양서들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 우선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제목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책의 제목이 인상적인데요.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제목을 채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지= 엄밀히 말하면 원래는 “왜 (나는) 읽을 수 없는가”입니다. 오래전부터 스스로 마음속에 품어왔던 질문이죠. 어려운 글이 있는데 ‘왜 나는 읽지 못할까?’

한편으로는 ‘왜 나는 읽을 수 없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고민을 남의 고민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문제의식’ 정도만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평소에 많이 했었거든요. 아마 이 ‘질문’에 공감해서 책을 집어드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제목에 대해 한발짝 더 들어가보자면,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것은 일단 독자가 “읽고 싶다!”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렇게 묻지도 않을테니까요. 과연 이 시대의 일반 독자들이 인문교양서를 읽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까요?

지=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식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웹툰 베스트 댓글을 보아도 자신이 본 작품에 대해 깊이 감상하고 논의하고 싶어하는 표현 욕구가 아주 강하고요. <알쓸신잡> 같은 경우도 왜 시청률이 높았을까?하고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설명해주는 잡학 지식들이 아주 재밌는 거예요. 꼭 쓸모가 있어야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가 몰랐던 쓸데없는 지식을 보면 신기하고 재밌어요. 사람들은 뭐든지 많이 알고 싶어하는데, 다만 (그런 지식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 욕구를 충족해주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강의로 많이 몰린다고 생각합니다. 

👤= 있는 독자가 ‘요만큼’ 밖에 안돼요.(조그맣게 원을 그리며)

지= 맞아요. 지금은 ‘없는 독자’도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예요. 저는 항상 그런 관점에서 일을 해왔어요. 청소년 대상의 책을 만들 때도, 청소년들은 모두 미래의 독자들이잖아요. 그들이 ‘아 나도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구나!’라고 용기를 얻는 책,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다음 책을 또 읽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차근차근 청소년 독자가 훌륭한 성인 독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죠.

징검다리도 없이 갑자기 한번에 점프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건 꼭 청소년 독자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책의 후기를 보니까, 제가 지난 레터에서 함께 다루었던 <어른을 위한 국어 수업> 번역을 마치고 나서 독자 강연을 준비하던 차에 <왜 읽을 수 없는가> 책이 기획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어떻게 두 책의 문제의식이 연결이 되었나요?

👤=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어떤 책을 읽으면 좋다든지 어떤 태도로 책을 접하면 좋다든지 하는 팁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지= 우선 갑자기 너무 ‘커다란’ 이야기, ‘그럴듯한’ 내용을 읽어야 된다고 부담을 갖지 않고 일상, 주변에서 느끼는 물음들에 대한 책을 읽어가보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철학 서적을 읽어야겠다 해서 갑자기 뜬금없이 소크라테스, 이런 고전들을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출근하기 싫은데 어떡하지’ ‘그림에 투자하고 싶은데 그림에 대해 궁금하다’ 등 나의 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꼭 철학서적이 아니더라도, 사회 문제를 다룬 르포나 에세이 같은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관심 분야를 갖고서 책을 들고 읽어가기 시작하면, 몇 권 읽다 보면 내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아 내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훨씬 옛날에 살던 사람 혹은 먼 나라에 사는 학자들도 이런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훨씬 더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지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보통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인터넷 게시판이나 지식IN의 답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부족함, 욕구가 생겨서인데요. 이처럼 나의 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이런 생각부터가 충분히 ‘인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의 삶에서의 고민을 놓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 책은 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상상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독서’를 할 때 ‘읽는다’라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애매한 것인지 떠올리게 됩니다. 작가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 경치를 자세히 묘사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 머릿속에서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효과는 모호하며 그렇기에 남과 쉽게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서'에 대한 상식을 깰 수 있는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로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다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을 좋아합니다(웃음).

-저자는 작가로서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온 '맹렬한 독서가'입니다. 그럼에도 인터넷이 생기면서 독서 습관을 점점 잃어버리는데요. ‘도구가 인간의 삶을 좌우해왔다’를 책의 전체 키워드로 삼고 그 ‘도구’가 인터넷이 되었을 때 독서 습관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구'의 역사를 다루는 부분은 읽기 만만치 않습니다만, 인터넷과 독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준다는 점에서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서에 몰입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고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위의 책과 이 책은 이 시대에 긴 글, 책을 읽는 게 결코 당연한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 더 편안하게, 그러나 지극히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