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 참 다정한 말이다.

자취를 하면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 한 사람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봐야 쓸쓸하게 금방 끝나버리는 식사 시간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보통 아침과 점심은 퉁쳐서 대충 챙겨먹고 저녁 한 끼에 올인하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은 간단히 사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채운다. 엄마가 들으면 등짝을 내려칠지 모르지만, 우리 자취생들 다 그런거 아닌가요?

그런 나에게 좋은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은 오아시스같다.

우선 약속이 잡힌다

“금요일에 바빠?”

그때부터 설렘이 시작된다. 보통은 생각해둔 메뉴가 있다.

“항해 갈래?” (항해는 지금은 없어진 연남동 끝자락에 있던 버드의 단골집이다)

그게 아니라면 날씨와, 기분과, 약속 장소가 있는 동네에 따라 신중하게 후보가 결정된다. 최종 선택은 당일에 이루어진다. 혹시라도 비가 와서 파전이 생각나거나, 전날 TV에서 본 곱창전골이 갑자기 너무 먹고싶어졌거나 하는 경우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메뉴가 나온다.

“김치찌개 먹으러갈래?” (김치찌개가 굉장한 소주 안주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 저녁 약속에 대한 기대로 한 주를 버틴다.

물론 “밥 먹자”고 만난 자리이겠지만, 대부분의 저녁 약속은 암묵적으로 술을 전제한다. 요즘같이 무더운 날에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친구가 이미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첫술을 뜨자마자 서로 눈이 맞는다.

“한 잔 해야지?"

그렇게 식사자리는 술자리가 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슬슬 2차를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머리를 굴린다. 이 타이밍쯤 말하면 될까? 슬쩍 눈치를 보다 겨우 건넨 “2차로 여기 어때?”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친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데워진 흥이 2차를 넘어 3차까지 이끌지도 모른다. 괜찮아, 즐거웠잖아.

버드처럼 단순한 사람에겐 맛있는 걸 먹는 행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맛있음을 온갖 말과 표정과 몸짓을 동원해서 표현하며 그 행복을 함께 나누는 순간, 우린 더 가까워진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또는 약간의 알코올의 도움으로) 2.5배는 높아진 텐션과 함께 끝없이 터져나오는 이야기보따리는 식사 자리에 다채로움과 재미를 더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한층 더 가까운 친구가 된다.

먹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바쁘다 보면 ‘밥 먹기’가 하찮게 생각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만큼 확실한 행복도 없기에, 매일 그 작은 행복을 챙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인이 제일 자주 하는 말 “밥 먹었어?” 또는 “밥 먹자”는 어쩌면 가장 다정한 말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당신의 행복을 물어주고, 챙겨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