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동절 휴일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는 <일환경건강센터>에서 공익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산업보건사업을 선도하고 계시는 류현철 센터장님의 글을 만나봅니다. 
이제, 위험성 평가가 중요해집니다

중대재해 감축의 첫 번째 전략,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작년 11월 30일 정부에서는 관계부처합동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하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로드맵」을 통해 '기업은 타율적 규제에 길들여져 자체적으로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시스템과 역량이 빈약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 가고 있으나 내실 있는 이행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예방역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로드맵에서는 2021년 0.43수준이던 사고사망만인율을 2026년까지 0.29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내세운 첫 번째 전략이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입니다.


고용노동부는 1월 31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취지를 반영한 「2023년도 산업안전보건감독 종합계획(이하 감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동안 산업안전보건감독은 위반사항을 적발해 처벌하는데 방점을 두고 실시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은 적발된 것만 개선하는 등 소극적 대응을 해왔고, 감독이 현장의 예방역량을 높이는 등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위험성 평가’ 핵심수단으로 판단하여 이를 모든 점검과 감독의 중심에 두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및 관련자료

2023년 산업안전보건감독 종합계획발표

고용노동부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위험요인을 분석하여 고위험사업장 8만 개소
(초고위험사업장 2만 개소 포함) 선별·집중 관리한다고 밝혔다. 위 그림은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 위험경보서」의 예시.

고용노동부에서 말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로드맵」과 「감독계획」에서 나타나는 현실 진단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처방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로드맵」에서도 밝혔듯이 ‘자기규율’은 1972년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의 핵심개념으로 등장하는 ‘Self-regulation’에 대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서는 오이레터 창간준비 2호(로벤스보고서,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을까?)를 참고하시면 된답니다. 고용노동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노·사가 함께 스스로 위험요인을 진단·개선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방 노력에 따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그 핵심에 위험성 평가를 두고 있습니다.



위험성 평가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 왔을까요?


「2019년 작업환경실태조사(안전보건공단)」을 살펴보죠. 조사대상 143,716개 사업장 중 위험성 평가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곳은 23.7%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전체 사업장으로 확장하면 겨우 7.3%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위험성 평가는 2014년부터 본격 시행되었지만, 2010년 시범사업부터 따지면 약 10년입니다. 10년의 성적으로는 초라한 것 아닐까요?

일각에서는 위험성 평가의 낮은 시행률은 미이행에 대한 처벌 조항의 부재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공학적 부담 요인에 대한 ‘위험성 평가’의 일종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미시행에 따른 처벌조항이 있어 실시율은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입니다.

 

위험성 평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에 관하여는 아래 보고서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위험성 평가 실태 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민주노동연구원, 2021

자기규율(Self-regulation)을 뒷받침하는 안전보건 법제와 행정조직 변화

 

영국에서 안전보건에 있어서 자기 규율 체계와 위험성 평가의 도입은 안전보건관련 법률과 행정조직의 변화가 수반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영국은 「1802년 견습생의 건강과 도의적 의무에 관한 법(The Health and Morals of Apprentices Act 1802)」에서부터 출발하여 ‘공장법’으로 총칭되는 유구한 산업안전보건 법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833년 국왕이 '공장 감독관'을 선임한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자긍심 높은 ‘공장 감독관’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산업구조와 위험의 양상 변화를 일일이 개별 법과 규칙에 열거하고 이를 감독관들이 직접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0년대 로벤스 위원회를 중심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성찰적 재검토를 거치게 됩니다. 1972년 로벤스 보고서가 발간되고, 뒤이어 기존의 공장법 체계를 일신하는 일터 보건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etc. Act 1974)이 제정되었습니다. 마침내 1975년 보건안전청(Health and Safety Executive)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법은 기존 법령과 규칙에서 나열하는 안전보건 규제 리스트 대신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안전·보건 배려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의 달성 경로나 방식에는 자율을 부과했습니다. 자율은 선의(善意)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견되는 위험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so far as is reasonably practicable)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강력한 법적 처벌이 부여함으로써 자율을 유지합니다. 능력과 자질을 갖춘 감독관들은 위험의 관리에 대한 조언에서부터 행정제재와 기소까지 실질적인 안전보건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 수행을 통해 노·사의 신뢰를 획득하게 됩니다. 사업주나 의무주체들은 준수해야 할 규제 리스트가 사라졌지만 사업장 여건과 상황 맞는 안전보건 활동을 수행해야 하므로 사업주는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위험과 그 개선책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위험성 평가가 실현되는 방식입니다.

 

아래는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의 전규찬 교수가 영국보건안전청이 어떤 철학, 정책, 방식으로 산업안전을 개선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사례를 포함하여 정리한 연구보고서(한국경영자총협회)에 관한 기사링크 참고

영국의 산업안전보건 접근법과 보건안전청의 역할정책보고서,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법도 노동부도 그대로인 한국? 

 

여전히 한국은 산업안전보건법체계는 지시 규제적입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열거된 특정 유해·위험 요인에 대한 조치를 조문대로 수행했는지가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수행에 대한 판단과 처벌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규칙상의 조문만을 지키면 처벌되지 않고, 적극적인 예방개선 활동을 했더라도 조문의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사업장의 구체적인 위험에 대해서 스스로 찾아내고 드러내서 개선을 수행하는 - 높은 수준의 자기규율이나 위험성평가는 어렵겠지요. 노동조합도 산재예방활동에 대한 주체적 참여보다는 사업주들의 법규 불이행 여부 감시활동에 급급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위험성 평가의 주체가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만 전락하게 됩니다.



변화의 조짐과 중요해지는 위험성 평가!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여부에 따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결정되는 포괄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붕괴 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서 “해당 안전 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하면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형식적 준수를 넘어서 실질적 예방 조치를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도, 실질적인 안전보건 조치도 모두 위험성 평가의 적정성 여부로 판가름 될 수 있습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붕괴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링크 참고

당연한 해석, 당연하지 않은 안녕. 박다혜 변호사. 매일노동뉴스

 


근로감독관의 역량 향상은?


앞으로 근로감독관은 규제 중심적 감독에서 벗어나 목표기반의 철학에 따라 현장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제 근로감독관은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보장하기 위해 목표를 합리적으로 달성하고 있는지 각 현장 사례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앞으로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이 요구되고 있지만, 한국의 근로감독관들은 이것을 갖추어 나가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는 「감독계획」을 통해 근로감독관이 중대재해 발생한 장소나 작업에 대해서 ‘위험성평가’를 직접 실시하는 것을 포함하여 감독 관행의 변화와 내실화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지레짐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과거에 ‘자율규제’로 표현되었고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집권초 국정과제에서는 ‘기업자율’의 안전관리체계라는 표현이 이번 「로드맵」에서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바꾸어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규제완화를 연상시키던 표현이나 기업만이 주체로 비쳐지던 것이 주체(Self)로서의 관리(regulation)로 개선된 느낌입니다.


일터 위험성 평가 정상화는 국가 안전보건체계 위험성 평가를 통해서만 성취될지도

 

과거 위험성 평가 제도화는 법으로 규정될 사항을 지켜야 할 사업주, 규제해야 할 일선 근로감독관, 주체로 참여해야 할 노동자, 지원해야 할 안전보건공단 직원 어느 누구도 제도의 연원과 취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이식된 외국의 제도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제는 산업안전보건 법제와 집행조직의 장기 개조 전망을 포함한 이행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외국의 법과 제도를 그 연원에 대한 통찰없이 수용하거나 기존의 관행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수용이나 새로운 제도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하수상하여 어려움이 많겠습니다만, 노·사·정·전 모두의 소통을 전제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통 과정에 걸리는 시간 동안에는 생명과 안전에 대해 높아진 공감대를 바탕으로 재래형 재해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도록 사회적 압력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후적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에 있어서는 감독을 통해 위험성 평가 실시여부만을 따져 처벌하기보다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구체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확인된 위험에 대해서는 이미 법에서 주어져 있는 행정권한을 발휘하여 신속하게 시정 조치를 내리고, 미이행시 적극적인 작업중지 명령을 통해 실제 개선을 유도·강제하는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터의 위험성 평가의 정상화는 정부가 법과 제도를 포함한 안전보건 시스템 전반에 대해 위험성 평가를 해야 성취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글쓴이: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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