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가는 길이었던 일본


지난 11년 동안 내게 일본은 그저 회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목에 사원증을 걸고 내 몫을 알차게 해내며 스스로 돈을 벌고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직장인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해도 해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고 쉬는 날에도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타국에서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오기까지 겹쳐 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야근이 길어져 막차가 끊긴 한참 뒤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잦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신주쿠의 거리는 그 시간에도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였지만 그곳을 지나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캄캄하고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그렇게 평일은 온전히 회사에 바쳤고 주말은 그 여파로 앓아눕듯 쉬느라 동네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요즘 일본에서 어디가 유명하고 좋은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으로 여행 오는 친구들이 나보다 현지 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가 태어난 뒤 단축근무를 하면서 물리적인 야근은 줄었지만 유연근무라는 이름 아래 업무는 일상 곳곳을 침범했다. 상사는 새벽 5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출근해서 확인해도 될 메시지를 미련하게 눈을 뜨자마자 열어보곤 했다. 열어보지 않으면 곧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가 아픈 날이었다.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날조차 마음 편히 휴가를 내기 어려웠다. 부부 모두 매일같이 업무가 쌓여 있었고, 멀리 계신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으니 오롯이 우리 둘이서 감당해야만 했다.


휴가를 낼 수 없어 아이를 곁에 두고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빠질 수 없는 회의 시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를 틀어주고 방문을 닫았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며 회의에 임했다.


회의가 한 시간을 훌쩍 넘긴 뒤 거실로 나오면 아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영상을 보느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걸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이 모든 걸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지만,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10여 년의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다 보니 회사 핸드폰의 알림음만 울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타국에서 일하는 부모라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고 나 역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해보고 싶었던 업무였기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가족의 상황 등 여러 여건이 겹쳐 결국 계획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늘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달려온 내게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 찾아왔다. 직장생활 중간에 1년 반의 육아휴직 기간이 있긴 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처음 맡은 엄마 역할에 허둥대느라 진정한 휴식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그러니 아무런 의무 없이 나에게만 주어지는 온전한 여백은 11년 만에 처음인 셈이었다.




멈추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그토록 바라던 휴식이 찾아왔는데 나는 즐기지 못했다.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고, 직장생활 동안 함께해 온 불안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다 그간의 팽팽했던 긴장이 툭 하고 풀린 탓인지, 두 달 사이 독감과 대상포진이 연달아 찾아와 꼼짝없이 앓아누웠다.


처음에는 그저 아픈 몸을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온몸에 힘을 준 채 살아왔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회복은 무언가를 더 채워 넣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당장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차츰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이제는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청소를 마친 뒤 소파에 편안히 눕기도 한다. 확인해야 할 업무 메시지도, 열어봐야 할 메일함도 없다.


집 밖으로 나서는 날이면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들이 보인다.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길가의 작은 꽃과 언제 생겼는지 모를 골목의 파스타 가게, 유모차 안의 귀여운 아기까지 눈에 담긴다.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진다. 출근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오전의 거리는 내가 알던 도쿄와 조금 다른 모습이다.


도시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늘 다음 일을 생각하고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물론 지금도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날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불안이 밀려오면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쐰다.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어둔 채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그렇게 잠시 멈춰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공원을 걸으며 밟히는 낙엽 소리를 듣고, 잔잔한 호수와 푸른 나무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기도 한다.


오늘도 아이를 배웅하고 예전 같으면 회사로 향했을 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방금 내린 커피를 곁에 두고, 읽고 싶었던 책을 펼치고, 글을 쓴다. 때로는 좋아하는 요가원에 가서 수련을 한다. 나는 이 느린 아침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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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다연 

일본 생활 16년 차. 지금은 도쿄에서 나만의 일과 리듬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dayeon_tokyo/


코너 소개 - 회사 밖 도쿄

일본에서의 11년 직장 생활에 쉼표를 찍었습니다. 속도를 늦춘 뒤에야 보이기 시작한 도쿄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날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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