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학폭 피해자 기숙학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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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응징만큼 바라는 건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4.20. 목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국회에서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학폭)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핵심 증인인 정 변호사와 그의 아들이 출석하지 않은, 반쪽짜리 청문회였지만요.

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 중 하나는 정 변호사 아들에게 학폭을 당한 피해자 A씨가 고등학교에 재학한 2년 동안 정상적으로 수업을 받은 날이 단 이틀뿐이었다는 거예요. 학폭 피해로 생긴 극심한 불안과 우울 증세 때문이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학폭 피해자 문동은이 떠올랐습니다. 동은은 오랜 준비 끝에 가해자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완수하고도, 불안과 고통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어요.

동은의 삶이 복수로 점철되기 전에, 무너진 그의 마음을 보듬어 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와 별개로, 동은은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드라마 밖에도 수많은 문동은들, A씨들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에 신음하는 피해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송윤경 기자가 학폭 피해자들을 위한 기숙형 치유센터를 다녀왔습니다. 기사는 약 4분 분량이에요.
☑️ 2013년 세워진 대전의 해맑음센터는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기숙형 치유센터다.

☑️ 아이들은 해맑음센터 기숙생활을 통해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또래와 관계 맺을 용기를 얻은 후 대부분 학교로 돌아간다.

☑️ 해맑음센터 건물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교육부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폭 가해자 처벌과 단죄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가운데, 여전히 피해 치유 정책에는 소홀한 교육당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현실 속 ‘문동은’ 계속 품어줄 수 있을까
2023.04.11. 송윤경 기자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자 기숙학교인 '해맑음센터'에 비치된 그림 액자. 송윤경 기자
“현실에선 문동은 캐릭터는 없다고 생각해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상대방을 해쳐서 통쾌해할 애들이 아니에요. 그만큼 정말 착하고 여린 친구들이 많아요.”(이동원 해맑음센터 상담지원팀장)

학교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은 자퇴 후 가해자를 찾아간다. 괴롭힘을 당하던 체육관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가해자의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연진아.” 일생을 건 복수의 예고였다. 하지만 현실의 ‘문동은들’은 드라마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극심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상당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 또한 맺지 않으려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서진 피해학생들에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학교에선 대개 학교폭력대책심의위(학폭위)에서 가해자 조치가 내려지면 그것으로 학폭 사안이 ‘종결’됐다고 본다. 피해학생 상담절차가 있긴 하지만 ‘교실 속 공포’를 해결해주진 못할 때가 많다. 피해학생들이 일정기간 기존 교실을 떠나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가질 수는 없을까. 대전엔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기숙형 치유센터가 있다. 2013년 세워진 해맑음센터다.


'문동은들'이 일어서는 법

지난 10년간 해맑음센터엔 335명의 ‘문동은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 동안 이 센터에 머물며 심리상담, 체험활동, 예술치유 등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국어·영어·수학 등 기초교과수업도 진행돼 ‘출석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센터라고 부르지만 실은 학교다. 아이들은 주중에 이곳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 다녀온다.

학교폭력 치유에 특화된 이 학교의 힘은 통계가 입증한다. 해맑음센터에 온 학생들의 95.6%가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심리검사에선 불안·위축 등이 크게 개선됐다(2018~2021년 센터 입교 전·후 아동·청소년 행동평가척도를 검사한 결과). 학생 만족도 조사(2018~2022년)에선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 비해 밝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됐다'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해맑음센터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치유의 힘’을 길러주는 걸까. 이 학교에선 작은 성취감을 반복적으로 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을 유치원의 1일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하고, 탐방 수업 때는 직접 이동경로를 짜게 한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염색기술, 사진기술을 배워 마을 어르신들에게 염색을 해 드리고, 영정사진도 찍어드린다. 성취감이 쌓일수록 아이들은 또래 관계를 다시 맺을 용기가 생긴다. “결국 아이들은 친구들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러려면 당당해져야 합니다. 무너진 자존감을 스스로 다시 세우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죠.”(조정실 해맑음센터장)


부모도 치유받아야 한다

해맑음센터는 피해학생만 교육하지 않는다. 피해학생들의 부모들도 매달 두 차례 ‘집단상담’이나 ‘심리극’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아이들의 회복과 치유에는 부모님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동원 상담지원팀장)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가정에선 불화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학교에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등교를 거부하며 인터넷이나 게임에 과몰입하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끌어내기 위해 실랑이를 벌인다. 가해학생들은 멀쩡히 학교에 다니는데, 피해자인 자신의 아이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부모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이들은 “헤쳐나가라”고 재촉하기만 하는 부모를 힘들어한다. 때로 억눌린 감정을 가족에게 쏟아내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님 대상 수업은 ‘아이들에게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상처가 있기 때문에 위로를 해주는 시간입니다. 부모님 본인들의 얘기를 하면서 울분을 토해내야 아이를 안아줄 여유가 생겨요.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해맑음센터 교육의 종착지는 원래의 학교로 돌아가는 ‘복교’다. 센터와 가정 양쪽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회복하는 듯 보였던 아이들도 막상 복교의 순간이 오면 두려워한다고 한다. 간혹 교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돌아오는 아이도 있다. 또래의 시선이 여전히 버거워서다. 이곳의 선생님들은 복교가 다가오면 “설사 관계 맺기가 잘 안 되더라도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니 자책하지 말고, 힘들면 연락하라”고 당부한다. 복교한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해맑음센터의 선생님이 ‘응원방문’도 한다. ‘내가 힘들 때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고1 때 자퇴를 결심했다가 해맑음센터를 거쳐 복교한 뒤 대학에 진학한 A씨는 해맑음센터를 “나를 웃을 수 있게 해준 곳”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괴롭힘을 당하다 중·고교 진학 후에도 따돌림을 겪었던 그는 “숨을 쉬고 싶어서 자해하던” 아이였다. 그는 이곳에서의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통해 ‘누군가를 잘 돌보는 이’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하면서 “신기하게도 웃음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혼자 두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해맑음센터를 다니며 처음 들었다.

해맑음센터는 50년 전에 지어진 폐교 건물을 사용 중이다. 지난해 가을, 학생 기숙사로 쓰고 있는 건물의 바닥이 갈라지고 한쪽이 꺼지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건물은 기울어 있다. 정밀안전진단을 받았더니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D등급이 나왔다. 임시방편으로 학생들은 교사 관사를 기숙사로 쓰고 있다. “정밀진단을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 건물은 바닥에 나무막대를 대고 그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너무 오래돼 건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조정실 센터장) 노후화된 시설 때문에 상담을 온 부모의 절반 이상은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버스도 뜸하고,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해맑음센터’의 본관 입구. 송윤경 기자

무너져 가는 폐교시설

교육부는 최근 경기, 충남, 경북의 폐교 세 곳을 ‘이전 후보지’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곳들도 지어진 지 60~70년 된 폐교인 데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배차가 드문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다. 조정실 센터장은 “부산이나 광주 등에선 버스나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 최장 7시간까지 걸리는데, 주말마다 집을 오가야 하는 아이들에겐 고역일 것”이라고 했다. 해맑음센터는 이전 장소를 다시 물색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른바 ‘정순신 사태’로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소송 전략이 드러나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까지 겹쳐지면서 학폭 가해자 처벌과 단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현실’은 그러나 통쾌한 응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피해자 치유 기숙학교인 해맑음센터가 열악한 시설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히 피해치유 정책엔 소홀한 교육당국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학생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장소로 이전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이동원 상담지원팀장)

학생들이 오가기 쉽고 시설도 튼튼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해맑음센터의 소박한 꿈을 이뤄줄 수는 없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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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적 응징'으로 삶을 소진한 문동은 대신 직접 칼을 잡겠다는 태세예요. 지난 4월12일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핵심은 '가해자 엄벌'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준비한 '공적 응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26학년도부터 모든 대학의 입학전형에 학폭 관련 기록을 반영하고, 학폭 조치사항을 졸업 후 4년까지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기겠다는 '엄벌'의 주요 내용이 명문대 진학을 노리는 소수의 가해 학생에게만 유효하다는 반론이 나왔거든요.

학폭 전력에도 서울대에 진학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일면서 나온 땜질식 처방으로 보입니다. 당장의 논란을 무마하려 '응징'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다 보니 피해 학생의 회복과 보호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죠.

온 사회가 학폭 이슈로 시끄러운 가운데, 국내 유일의 학폭 피해자 치유 기숙학교인 해맑음센터가 말 그대로 무너져가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씁쓸합니다. 피해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통쾌한 응징보다도 일상의 회복과 진정한 치유일 텐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의 삶과 자리를 먼저 살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폭 가해자가 서울대를 못 갔다는 '사이다 서사'뿐만 아니라, A씨와 동은이가 다시 건강한 삶의 주인공이 됐다는 '회복 서사'가 어디서든 들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폭력의 근절이겠지만, 혹여 운이 나빠 폭력을 겪더라도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직한 안전망이 온 사회에 깔려있길 바라고요.

동은이의 꿈이 연진이가 아닌, 동은이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건 너무 순진한 바람일까요? 학폭 대책에 대한 독자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 "학폭의 최대 문제는 '특권의식' 학부모"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인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최민영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성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학교폭력 문제의 중심에 "특권의식으로 아이들의 따돌림 문화를 조장하고, 해결 가능한 학폭 문제도 변호사를 동원해 사안을 키우는" 학부모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어른들이 결국 문제라는 거예요.

🔗 ‘가해자 엄벌’이 학폭 줄일까

'가해자 엄벌'을 내세운 정부의 학폭 대책의 문제점을 짚은 기사입니다. 학폭 전력의 대입 반영 강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학생들에게 큰 효과가 없는 대책일 뿐만 아니라, 부모가 경제적 여력이 있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가정에서는 학생부 기재와 대입 반영을 막기 위해 조치사항에 불복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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