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a Young by Unsplash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가며 오히려 올해의 시작을 되돌아본다. 보신각 타종 생중계를 함께 지켜보던 연인이 '올해의 순간’을 꼽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새해가 30분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열에 들떠 한 해를 돌이키는 연인과 달리 나는 좀 시무룩했다. 나는 그런 결산을 즐기지 않는다. 삶을 내림차순으로 정리한다면 비(悲)가 앞서고 희(喜)가 맨 뒤에 나열될 거라고 믿기에 우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금방 잊는 편이다. 올해의 음악이나 영화뿐 아니라 올해의 인물, 올해의 축복 같은 카테고리를 짚어나가며 마음이 무지근해졌다. ‘결산할 것이 슬픔뿐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내 차례가 되자 그해의 가장 빛나던 순간과 사람들이 마구 떠올랐다. 후에는 연인보다 내가 더 벅차 없던 카테고리까지 만들어가며 대화를 이었다.
올해의 어린이는 횡단보도에서 만났어. 보행자 신호에 양보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그 목소리가 참 맑고 듣기 좋더라. 올해의 평안은 너랑 우연히 들렀던 가정식 식당에서 누렸어. 날도 덥고 계획도 다 어긋나서 속상했는데, 어쩌다 들어간 그곳의 생선튀김이 맛있었고 주인이나 손님도 다들 친절했잖아. 그 따뜻함에 여독이 다 씻기더라.
추산해 보니 불행은 강도만 높을 뿐 빈도는 적었다. 내 지난날을 버티게 해준 건 억센 불행이 아닌, 잔잔하지만 명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달으며 올해의 첫 종소리를 들었다. 한 해가 반쯤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슬픔을 자주 느끼고 곱씹는다. 떨쳐낼 수 없는 오랜 악습이다. 슬픔의 지층이 두꺼워질 때마다 사진첩을 들춰본다. 작가 후기나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한 적 있지만, 내 사진첩에는 ‘나를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폴더가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진, 가족과 나눈 문자메시지, 독자들이 남겨준 애정 어린 서평이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귀한 마음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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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오브뮤직
“슬픈 일이 있을 때,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곤 해요. 그러면 기분이 나아지고 조금은 덜 슬퍼져요”라는 ‘My favorite things’의 노랫말처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단단해지려던 슬픔이 서서히 부드러워지곤 한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많지만, 결국 나를 치유하는 대상도 사람이다. 그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다행스럽다.
근래에 파주에서 줌 토크를 했다. 48명의 독자와 1시간가량 같은 화면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으나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독자들의 반응과 마음이었다. 그래서 자주 댓글 창을 살폈던 것 같고. 말주변이 없는 나에게 박수 이모지와 하트를 보내며 다들 다정한 마음을 기꺼이 건넸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혐오가 만연하는 시대에 다정을 지켜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생활 속에서도 그러한데 글이라고 다를까. 나부터도 누군가의 글을 뾰족한 시선으로 독해하는 걸 더 쉬운 방식으로 여긴다. 누군가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읽는 건 힘겨운 일이지만 또 누군가는 그 일을 해낸다. 나는 읽는 이들로부터 그것을 배운다. 줌 토크가 끝나기 전, 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보았다. 령윤, 이음, 지혜, 하나, 캔들, 준민, 산타…. 모니터의 안과 밖이 한데 이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그 밤을 갈무리했다.
나는 결산을 즐기지 않지만, 소설을 탈고하거나 책을 묶을 때면 집필 기간 동안 내가 느낀 것과 남긴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한다. 부지런히 썼으니 성취감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그 짜릿함은 길지 않다. 성취나 업적을 위해 쓰다 보면 집필이 충족이 아닌 결핍이 돼버린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기도 했고. 지적 재산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나를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은 아니다. 결국 글을 쓸 때마다 유일하게 축적되는 건 누군가의 독려와 사랑인 것 같다. 그것이 나를 온전히 채워주고, 살아가게 만든다. 줌 토크를 마치고 사회를 봐준 마케터님이 그날의 댓글을 모음집으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주었다. 이 역시 ‘나를 살게 해주는 것’ 폴더에 담아두고 종종 꺼내 본다. 간혹 그들이 건넨 사랑에 비해 내가 꺼내놓은 사랑이 한없이 작다는 생각이 든다. ‘읽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자주 이 사랑에 관해 언급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내 글을 읽어준 당신께, 내 슬픔까지 기꺼이 끌어안아주는 당신께 귀에 못이 박이도록 전하고 싶다. 내게는 귀해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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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성해나
소설가.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두고 온 여름>을 펴냈다. 깊이 쓰고, 신중히 고치며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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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에도 여전히 미스터리한 여자, 윤여정이 구축한 독창적인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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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터뷰를 준비하며 살아오신 시대를 제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저는 6·25전쟁 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장녀로서 제 삶을 희생했고요.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이 든 사람들한테 너무 뭐라고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정말 다른 세상을 살았답니다(웃음).
Q. <파친코> 시즌 1에서 선자가 손자인 솔로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너는 정말 네가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라는 대사에 괜히 찔렸거든요 A. “니는 참말로 니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나” 이렇게 말하죠. 이민진 작가도 찔리라고 쓴 걸 거예요. 물론 여러분도 우리랑 다른 고생을 하긴 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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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나저나 사람은 도대체 언제쯤 자신에 대해 알게 되나요? 나를 가장 열심히 돌아보는 게 나인 것 같긴 한데요. A. 사람은 자기에 대해 전혀 모르죠! 남이 말하는 나를 들으면 아마 기절할 걸요? 내가 철학자는 아니지만 좀 살아보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 무의식의 내가 있고 나를 넘는 내가 있고 그런 것 같아. 사람은 정말 자기 자신을 몰라요. 뭐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Q. 앞으로는 손자손녀가 있는 할머니보다 사전적 의미의 ‘올드 레이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여성들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살아보시니 여성의 노년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A. 노년의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은 머리털입니다. 돈이 있어야 된다, 뭐가 있어야 된다는데 최화정 씨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선생님, 늙으면 머리숱이 있어야 돼요”라고(웃음). 사람들은 내가 팔순 가까운 나이에 일하고 있는 게 좋아 보이나 봐요. 나도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런데 그냥 연기만 하기에는 부수적인 게 많아요. 일이라는 게 항상 사람과 연결되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요. 그런 일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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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0년 전 <꽃보다 누나>에서 비쳐진 선생님 모습을 시작으로 ‘우아하고 멋진 할머니’에 대해 상상하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A. 일단 난 우아하진 않아요. 그건 오해입니다. 멋있다는 게 나쁜 말은 아니니까 듣고 있지만 정말 먹고살기 위해 일했고, 끔찍하게 아파하고 투쟁하며 살았어요. 나는 열심히 산 사람일 뿐이예요.
Q. 그런 모습까지 포함해 멋있는 거죠. A. 아휴, 여러분이 뭘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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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이하얀, 이마루
Photographer 신선혜
Illustrator 김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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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엿보고 싶어 #4233 마음 전시
*본 콘텐츠는 해당 전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이스 초이스✅
뉴스레터, 브랜드, 서비스, 책, 전시, 공간까지 엘르보이스가 눈여겨보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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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4233 마음센터 포스터
오) 4233 마음센터 전시 입구
3개월 전 ‘연인’ ‘친구’ '가족'과 참여하는 심리 체험형 전시가 있다는 친구의 권유로 4233 티켓팅에 참여했습니다. 체험 인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주말은 3개월 전까지도 예약이 꽉 차 있더라고요. 이렇게까지 전시를 볼 일이야? 툴툴거리면서도 mbti J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대한민국임을 떠올리며 평일 저녁 짬을 내어 전시에 방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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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4233 마음센터 홈페이지
심리 체험형 전시 4233은 ‘나’, ‘상대방’, ‘우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을 대상으로 성격,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관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체험들로 구성 되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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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인’ 관계를 선택해 체험을 진행했습니다. 우연하게도 전시에 참여한 당일이 연인과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였어요. 이맘때쯤 되니 도파민을 왕창 뿜어내는 두근두근함은 많이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마음을 들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인지 설레서인지 떨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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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체험 중 인상적이었던 ‘나의 인생 지표’. 총 70개의 가치 중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7개를 탐색해 보는 과정이었어요. 서로 같은 가치도 있었지만, 다른 가치도 발견하며 상대방은 저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구나 알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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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우리의 심작박동 체험
오) 마음의 거리 체험
가장 설레였던 체험은 ‘우리의 심장박동’과 ‘마음의 거리’였는데요. 서로 심장 박동수를 체크할 수 있도록 손을 올려놓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우리의 심장박동’은 질문에 심장이 안 뛰면 어쩌지 하는 고민 때문에 긴장감에 심장 박동 수 가 더 올랐던 것 같아요.
또 가려진 스크린 너머로 우리의 친밀함을 체크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보고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가는 활동인 ‘마음의 거리’도 재밌었어요. 서로의 위치를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올라갈 때 '나를 얼마나 친밀하게 생각할까' '나는 이만큼 나와 있는데 상대방은 아니면 어쩌지' 하는 기대와 걱정이 자연스레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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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너와 나의 역할 체험
오) 너를 채우는 단어 체험
그 밖에 우리 관계 속 서로의 역할은 무엇인지 땅따먹기를 통해 알아보는 ‘너와 나의 역할’은 웃을 일이 많아 좋았습니다. "계획은 내가 더 많이 짜지!" "안부는 내가 더 많이 묻지 않아?" 짧은 시간 안에 관계 블록을 놓아야 해 서로 자신임을 우기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하며 우리의 관계 속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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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결과지
끝으로 채팅룸에서는 결과를 바탕으로 상대방 마음의 방을 본 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개인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일상 속 지나가듯 했던 말이 텍스트 형태로 정리되어 나오니 상대방의 진심은 이랬구나 느껴졌어요.
저는 강아지를 무서워함에도 반려견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는데요. 말로는 하기 어려운 부분을 체험에 기대어 전달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친밀함이 높은 관계의 경우 예상과 크게 벗어나는 부분이 많지 않아, 관계 초기에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해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친구' '가족' '연인'의 마음을 엿보고 싶거나 관계에서 바라는 점을 부드럽게 꺼내고 싶을 때 추천해 주고 싶은 6월의 전시, 4233이었습니다.
🍋담당자 노라
각종 아카이빙이 취미인 소비요정 마케터이자 엘르보이스 고인물. 일이 힘들 때마다 구독자 후기를 읽으며 힐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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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구독자 보이스🔊
매주 여러분의 목소리 중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모든 분의 소중한 피드백 하나하나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의 <엘르보이스>가 어땠는지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여태까진 아무도, 그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 내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쳐 본 적 없었다.' 라는 말에 눈가가 붉어집니다. 의외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은 드물지도 모르겠네요. 자기 자신은 정말 소중한데, 그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쳐 본 적이 없다니.. 우리 사회는 점점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합니다. 가족은 1차 사회적 환경이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가족이 누구보다 더 애틋한 것 같아요. 그게 동물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오늘 레터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발적으로 가서 갇히는 감옥이라고 학교를 표현해 준 작가님 글이 인상 깊었어요.
- 지금 아이들 학교는 예전보단 덜하겠지만 그래도 순위를 매기고 줄을 세우고 협동이 아닌 혼자 이겨야 하는 학교 교육을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는 글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도 새기며 오늘 하루도 더 아이들에게 예쁜말 힘이 되는 말 해줘야지도 다짐합니다~
- 김대감 처럼 미쳐 날뛰는 나를 알아봐 주신 선생님이 떠올랐네요. 지갑자기 어릴 때 내가 만난 스승님이 생각나서 연락드렸어요.
- 스승 김대감 글이 좋았어요. 분노에 차서 써내려간 반성문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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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 <엘르보이스> 106번째 레터 어떠셨나요?
님의 감상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아래 링크에 남겨주시면 정성껏 읽고 다음 레터 준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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