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새해 인사를 나눌 때입니다 새해 첫 날의 절반이 지난 지금은 다시 한 번 새해 인사를 건내야 될 때입니다. 시원섭섭하게 세운 목표들, 계획들은 '2022'라는 숫자에 벌써 익숙해진만큼 빨리 잊히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은 편안함과 안정감, 지루함과 느슨함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익숙함의 좋은 면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축하의 순간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연말, 친구의 추천으로 영상 한 편을 보았습니다. 해당 시리즈 모아보기 영상에서 아무거나 골랐는데 그게 마침 작년 연초에 촬영된 문상훈 님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이하 오당기) - 곰탕' 편이었습니다(여기에서 오지 않는 당신이란 바로 배달음식을 의미합니다). 이번 주에는 제가 해당 영상을 보고 친구에게 보낸 감상문을 조금 수정하여 공유해볼까 합니다. '누구누구에게'로 시작하는 편지글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형식을 바꾸지는 않으렵니다.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는대서 아무거나
누를 수는 없다. 뽀얗고 진하면서도
맑은 느낌을 주는 곰탕. 육회나
피자, 플래터 같은 더 화려한
음식들 속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되지만 이상하리만큼 가장 소박한 음식을 선택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골랐는데 마침 연말 특집인 듯한 영상이었다.
이런 소소한 우연들은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는 대지에 약간의 빗방울을 뿌려 무작위로 싹을 틔운다. 한겨울, 연말 연초의 인심 넘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의 애정어림으로
시작하는 영상은 젊은이들 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클리셰의 다정함과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서도 실컷 웃을 수 있는 소박하지 않은 바램에 대해 이야기한다. 클리셰의 매력을 무시했거나, 이에 대해 무지했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던 내게 올해 하반기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들 중 하나는 클리셰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당당하게 클리셰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아...! 클리셰의 낭만이여... 영상 속에 등장하는 한겨울의
곰탕과 맑은 소주(우동이나 순대국이
조금 더 내 취향이긴 하다)에 입맛을 다시며, 김혼비
작가가 말하는 ‘소주 오르골’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겨울의 낭만은 소주'이기 때문에 냉장고에 ‘겨울’이라는 이름의 소주를 사다놓은 사람이 과연
클리셰를 애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의심은 접어보자.
나이가 들어도 소년/소녀다움을
가지고, 작은 것에도 꺄르르 웃을
수 있는 비결은 어쩌면 클리셰의 매력을 즐기는 데에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 지 안 봐도 뻔하지만 그 뻔함이 주는 편안한 매력이 있고,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아쉬움이 있다. 알리오
올리오 맛집을 찾기 위해서는 파스타 원정대라도 꾸려야되는 것처럼 간단하고, 예상 가능한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에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이를 잘 잊어버린다. 정신 없이 달리다가 클리셰가 주는 충만함을 느꼈을 때, ‘아
그래 이게 그렇게 좋았지. 왜
이런 즐거움을 잊고 살았을까?’라고
말한다. 반일근무의 은혜를 입은 친구와의 1231 런치 연말이다. 울고 싶을 정도로 클리셰가 넘쳐나는 주간이다. 지금 약속이 잡혀서 좋은 것인지, 약속을 잡은 상대방과 시간을 보내서 좋은
것인지, 아님 둘 다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다음에 보면 내년에 보겠다!’라는 작별인사에 스민 시원섭섭함과 진심
어린 애정이 주는 울림이다. 온
몸으로 아쉬움을 표현하고, 진심으로
타인의 평안을 비는 1~2분의 상호작용에는 가슴 속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추운 겨울 날에 혼자 앉아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병을 비운 뒤, 집에 가는 길에 마시는 비릿하고 차가운
공기 같은 느낌이 있다. 다들 새해 복이나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이 겨울을 즐기기 위해 사다놓고 방치해
둔 하얀 무가 냉장고에 있다. 그
무 하나를 잘 먹으면, 이 겨울을
나름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날 우연히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추신)
요즘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읽고 있다. 한참 잘 읽고 있는데 며칠 전,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남편도 이맘때쯤 세상을 떠났고, 갑작스러운 가장 가까운 이의 부재와 함께하는
연말은 감히 타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실’이자 ‘마술적 생각의 해’의 시작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녀의 남편과 비슷한 시기에
지적 활동의 부산물을 잔뜩 남겨놓고 떠났다.
RIP. 약간의 카페인은 발행인의 뇌를 맑게 해줍니다. 카페인샷은 카카오뱅크 3333-16-6984295 김혜지로 받습니다 :) |